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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23. 2020

영어냐 중국어냐 그것이 문제로다

크루즈 승무원의 선내 공용어


니 하오!


스타 크루즈에 입사한 후 한동안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말이 있다. 바로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신 있게 말하는, 중국인들이 인사를 나눌 때 사용하는 말인 '니 하오(你好)'이다.


크루즈승무원인 내가 중국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왜 영어인 'Hello'나 'Hi'가 아니라 중국어인 '니하오(你好)'일까? 그 이유는 바로 스타 크루즈라는 선사가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제 선사에서 근무하는 승무원들의 국적은 실로 다양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크루즈의 특성상 많게는 수십 개국의 승무원들이 한 공간에서 근무를 한다. 그러나 아시아 리딩 크루즈 선사인 스타 크루즈는 중화권 승객의 수요가 많은 탓에 승무원의 비율 또한 그에 맞게 구성이 되어 있다. 따라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차이니즈 크루만 눈에 들어오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일상에서 한중일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만큼 중국은 우리나라와 지리적, 그리고 사회, 문화, 경제적인 면에서 매우 가까운 이웃 나라이다. 중국에 무지하다 한들 전혀 생뚱맞은 먼 나라라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중국을 그다지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자처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던, 그저 그런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을 피부로 느꼈던 건 바로 크루즈라는 특수성을 가진 공간에서 중국어가 구사 가능한 친구들과 온종일 어울리면서 귀가 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승선했던 이 6명의 중국인 친구들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몇 마디씩 주고받았을 뿐인데 점차 늘어가는 어휘력에 절로 입이 떠 억 하니 벌어졌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 맞는구나를 다시금 느끼면서.


실제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초급 수준의 기본 단어들을 여러 번 접하면서 나는 중국어에 꽤 재미를 느꼈다. 학교에서 중국어 수업을 청강할 때 성조를 배우는 시간은 그렇게 더디게 흘러가더니 어느덧 안부를 묻는 표현을 너머 숫자를 세고 싶은 욕심까지 나는 게 아니던가.


중국어는 생소한 분야인 만큼 무척 어려웠지만 배울수록 흥미로웠다. 발음 때문에 고생했던 때를 제외하면 그들 특유의 웅얼거리는 발음은 언제나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옹기종기 크루 메스 식탁에 모여 앉아 폭풍 수다타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얼마 가지 않아 딜레마에 빠졌다. 차이니즈 크루들이 삼삼오오 모일 때면 특히나 그랬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영어가 아닌 제 나라말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종종 무안하게 만들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그 친구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잘 모르던 그 당시에는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만 아니면 어디든 좋았던 나는 끊임없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꿈꿔왔다. 그런 독특한 환경에서 성장하고픈 열망은 감사하게도 비교적 일찍 이루어졌고, 내 앞에는 주어진 이정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 뻗어있었다.


그런데, 왜? 왜 자꾸만 아니라는 기분이 드는 걸까.




시시때때로 귓바퀴를 맴돌며 흥미롭게 들려오던 초기의 그 소리는 점차 아웅다웅 다투는 듯한 소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 서 있을 때면 좀처럼 작아지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고, 죄지은 사람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대화를 알아듣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면 나는 영어로 되묻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영어를 잘 못해서'라는 시들한 대답만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근무를 할 때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격상되었다. 승객들 중 절반 이상은 영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탓에 나는 그들을, 그들은 나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사실은 스타 크루즈 카지노는 가급적이면 승객과 대화를 삼가야 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꽉 막힌 듯한 답답한 이 마음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그들도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데다 대부분이 사회경험이 전무한 이십 대 초반인 만큼 영어보다는 본인들의 모국어가 편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그들이 특별한 악의를 갖고 그랬을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당시 내가 처했던 환경에서는 그 어떠한 말도 귀에 들리지가 않았다.


선내 공용어인 영어조차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해 밤 잠을 설치던 내게 중국어는 정말이지 능력 밖의 문제였다. 물론 마음씨가 따뜻한 몇몇 친구들은 어려움을 겪는 내 모습에 최선을 다해 이해를 도왔는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파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던 그런 좋은 기억도 남아있다.



영어냐 중국어냐, 정말 그것이 문제였다.


주객이 전도돼버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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