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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16. 2020

19세 미만 출입 금지

스타 크루즈 선상 카지노


쿠쿵 -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브리지(bridge; 선교)로부터 콜을 받은 핏 매니저(pit manager; 담당 구역 매니저)의 OK사인 아래에 시큐러티의 근엄한 손짓으로 굳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린다. 본격적으로 카지노 업장이 개시되는 순간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과 동시에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날아오는 화살처럼 귀에 꽂힌다. 오늘 밤을 지새울 카지노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해 승객들은 입구에서부터 몸싸움을 벌이며 헐레벌떡 업장 내부로 뛰어들어온다. 그 광경에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한 동료들,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도 질서를 잊지 않는 무게 있는 재빠름은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곧이어 벽면에 일렬로 위치해있는 슬롯머신의 영문모를 소음과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형형색색의 삐까뻔쩍함에 내 시선과 고막이 동시에 사로잡혔다. 가지각색의 슬롯머신들은 스크린이 정지됐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한 방. 다양한 음역대로 소리인지 소음인지 구분 불가한 그들이 구사하고 있는 언어, 중국어까지.



크루즈가 망망대해에 가까워질수록 카지노 업장의 분위기는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어떤 승객은 겜블에 미쳐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또 어떤 이는 게임에서 이기지 못해 분했는지 여기저기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다. 이렇게 우악스러운 승객들과는 반대로 어떤 승객들은 그 테이블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모두의 웃음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단 몇 초 만에 뇌리에 각인된 이 상황 속에서 쏙 빠져나가버린 영혼.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이 소란스러운 광경에 나는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승선 첫날, 쉽 투어차 출항 전에 보았던 카지노 업장의 분위기와는 천차만별이었다.






대부분의 국제 선사가 풍기는 선상 카지노의 분위기는 이와 같지 않다. 이들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선내 승객들의 위락시설을 담당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겐팅 그룹(Genting group) 소속인 스타 크루즈의 카지노 업장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이름 있는 선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유는 카지노가 그 선박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리딩 크루즈 선사인 스타 크루즈는 겜블링 쉽(gambling ship)의 대표주자이다. 그래서인지 선내 98%에 해당하는 승객들, 그중에서도 중화권 나라의 승객들의 비중이 크다.


그래서일까? 상당수의 승객들은 여행과 휴식보다는 겜블에 목적을 두고 크루즈에 탑승하는 패턴을 주로 이루고 있다. 이처럼 카지노 부서의 입지가 높은 만큼 업장의 규모, 그리고 그를 충당하는 인력의 수는 상당하다.



cabin #4539 살던 시절, 캐빈 메이트이자 인스펙터 제시와
중국인 인스펙터 리 유엔과 캐빈 밖 복도에서






사진 촬영은 물론 카메라 소유를 일절 금지하고 있는 스타 크루즈의 카지노 업장, 이는 승무원 그리고 승객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엄격한 선내 규율은 아쉽게도 업장 내에서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단 한 장도 남기게 허락하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스타 크루즈의 선상 카지노는 고전적이면서도 퇴폐적이고, 때론 음침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생기가 도는 그런 형연할 수 없는 기운들이 서로 맞물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라스베이거스를 제외한 여러 카지노를 경험해보았지만 다른 어떤 곳도 스타 크루즈의 카지노만이 가진 본연의 분위기와는 견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모든 걸 쏟아부었기에 더없이 값진, 그래서 사무치게 그립지만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 그 시절은 오롯이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이쯤 되면 희미해질 법만도 한데 이따금 제멋대로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질 때면 어느샌가 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청승맞은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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