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의 이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부럽다. 유럽에서 2년이나 살다 오다니.”
“좋았겠다. 여행도 많이 하고.”
맞다.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휴가의 빛이 아니라, 책임의 빛이었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었다.
한 반도체 회사를 대표해
글로벌 연구 현장에서 두 해를 버텨야 했던 사람이다.
성과와 일정, 협력과 문제해결 —
어느 것 하나 내려놓을 수 없던 자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회’의 시작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당시 장모님은 암 투병 중이었고, 나는 그 제안을 처음에 고사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은 다시 없을 것”이라며
아픈 몸으로 우리 등을 떠밀어주셨다.
그렇게 떠난 길은 낭만이 아니었다.
비자는 기약이 없었고,
배로 보낸 짐은 두 달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낯선 시스템, 가족의 생활 정착, 학교, 의료, 서류, 언어, 행정 —
하루가 문제이자 숙제였다.
그래서 기록했다.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든 사람’이 아니라 ‘남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두려움이기도 했다.
치열한 현장을 떠나는 일이었고,
기술자의 시간에 ‘공백’이란 없다.
나는 쉬러 간 것이 아니다.
단단해지기 위해, 그리고 다시 더 깊이 일하기 위해 갔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다시 속도가 시작된다.
다시 회의가 이어지고,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을 지나며,
속도와 의미 사이에서 나를 조율한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
나는 안다.
속도에 모든 것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천천히 살아본 사람이 다시 달릴 때,
그것을 선택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속도가 그대로인데,
내가 다르게 걷기 시작했을 뿐이다.
유럽에서 배운 건 ‘여유’가 아니다.
여유가 있어야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깨달음이다.
어떤 이는 말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아니다.
나는 하나의 토끼에 두 개의 다리를 쓴다.
경험이 걷고, 글이 해석한다.
둘 중 하나도 놓지 않을 것이다.
이 길이 외로운 사람에게,
이 기록이 작은 등불이 되길 바란다.
나는 다녀왔고,
이제 다시 시작한다.
— JP 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