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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Apr 15. 2021

아빠의 기억과 아들의 다짐

지금 나의 기억엔 없지만 난 미국에서도 2년이란 시간을 살았었다. 기억이 안 날 만도 하다. 내가 4살 때 가서, 6살 때 돌아왔으니 말이다. 

나보다 두 살 위인 누나는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하던데, 내가 기억하는 건 어느 광활한 벌판에서 배트맨 연을 날리다 배트맨이 너무 멀어진다며 아빠를 부르며 엉엉 울었던 기억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난 아직도 히어로 중엔 배트맨을 가장 좋아한다.

1996년 4월, 배트맨 연을 날리며 울고 있는 내가 귀여웠는지 아빠가 사진으로도 남겨두셨다.

아빠는 거의 평생을 ‘제일은행’에서 근무하셨다. 지금은 ‘SC 제일은행’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냥 ‘제일은행’이었다.

은행에서 아빠에게 미국으로 가 2년간 공부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빠는 듀크대학교라는 곳에서 공부하시게 된 것이다.


듀크대학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중북부 도시 더럼(Durham)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다.

난 미국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빠가 다녔던 대학, '듀크 대학교'라는 이름은 정확히 기억한다. 내가 듀크대학교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건 나도 커서 그 학교에 다닐 줄 알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난 듀크대학교를 갈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은 똑똑히 기억한다. 무엇이든지 꿈꿀 수 있는 순수했던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그 순수했기에 원대했던 초등학생의 꿈은 중학교에 들어가며 자연스레 사라졌다.


아빤 가끔 미국에서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마다 꼭 하시는 말이 있었는데, 내가 한국말을 못 하고, 영어만 해서 걱정이셨다고 한다. 그런데 난 영어는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기억도 없고, 영어를 유창하게 못하니 살짝 웃을 뿐이다.


미국에 대한 기억은 배트맨 연 뿐이지만, 내가 미국에서 살았던 사실을 대변이라도 하듯, 아빠 서재 한쪽에 빼곡히 꽂혀있는 사진첩엔 미국에서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한가득이다.


한 번은 가족들이 모여 그 미국에서의 추억을 모아둔 사진첩을 같이 본 적이 있다.

그때 아빠가 해주는 미국에서의 옛날이야기는 정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국적인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아빠와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랬었지, 하며 웃기도 하시고 하이고! 하면서도 웃으셨다.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아빠가 온 가족을 태우고 미국 그 넓은 땅을 자동차로 여행하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려 한 치 앞도 안 보여 아빤 한껏 긴장해서 운전하고 있는데, 뒷좌석에서 누나와 난 번개가 칠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고. 얼마나 상세히 묘사하시던지 내 기억 속엔 없었지만, 그 장면이 저절로 상상이 갔다. 그때 이야기하며 아빠의 눈이 얼마나 빛나시는지 그 추억이 아빠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단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


아빠 역시 아빠 인생에서 미국에서의 2년이 정말로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도 아빤 출장 차 미국에 갔다 오실 일이 몇 번 있었다. 가족들에게 사 온 선물을 전달하시며, 어릴 적 사진 찍었던 장소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하며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빤, 지금도 가끔은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곤 하신다. 이젠 그 대상이 나와 누나가 아닌 늦둥이 동생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동생은 나도 가고 싶다며. 다시 한번 가자고 세상 편한 순수한 말을 내뱉는다. 


사실 나도 다시 한번 가고 싶다.

기억하든 못하든 모두가 더없이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그곳으로.

그곳에서 추억을 따라 여행하며, 새로운 추억을 기억으로 간직한 채 오고 싶다.


가끔은 상상하기도 한다.

이젠 내가 운전하고, 부모님을 널찍한 뒷좌석에 모신다. 옆에 동생을 앉히고, 누나 부부까지 동반하며 추억 곳곳을 다시 드라이브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함께 미국을 여행하며 흐뭇해하시는 부모님의 미소를 그려본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도 그려본다.

다만, 내 상상 속의 모습보다 부모님이 너무 빨리 늙어가시는 것 같을 땐 맘 한편이 저리다.

요즘 들어 자꾸 다리가 아프다는 엄마의 말과 아빠의 습관적인 한숨 소리를 들을 때면 여행에 필요한 것은 돈뿐만이 아님을 너무나 깊게 절감한다.


너무 늦지 않게 갈 수 있을까?

복잡해진 기분에 괜히 산책을 나온 길, 내 머리 위로 비행기가 이륙하며 지나간다. 파도를 타고 몰려오는 죄송한 맘에 괜히 부모님에게 전화해 잘 있다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너무 늦지 않게 여기 제주에서라도 함께 여행하겠노라.


제주 바다를 보며 아빠가 해주는 미국 이야기를 듣고, 함께 또 웃는 건 비교적 가까운 낭만이었다. 미국이든, 제주든, 그 어떤 곳이라도 추억을 만들러 가족과 함께 가겠노라 불끈 다짐하는 수줍은 아들의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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