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소 : 지금 여기 살아있다.
비엔날레가 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미술 전람회라고 한다면, 트리엔날레는 3년에 한번 개최되는 전람회인데, 올해 8번째를 맞이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를 지난 번 친구랑 얘기하다 우연히 알게된 덕분에 다녀왔다.
이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테마이자 주제는 < 야소 (야생화) : 지금 여기 살아있다.> 로 요코하마 미술관과, 구제일은행 요코하마지점(현재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뱅크아트 카이코 총 3군데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시만 다녀왔다. (입장권은 셋트로 2300엔) 이 외에도 다른 테마인 전시도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패스!
이런 미술 전람회가 처음이기 때문에, 이미지 상 엑스포처럼, 여러 부스가 설치되어있고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형태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번잡스러운 형태는 아니었고, 일반적인 미술관의 형식을 따르는 느낌이었다. 다만 전시된 작품들이 대부분 설치미술이나 미디어 아트 중심으로 이루어졌었고, 일반적인 미술관에 비해 그 수도 적었으며 이게 예술작품인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난해한 작품이 대부분이었지만, 오히려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는 작가가 의도를 찾아다는 과정에서 현대미술의 재미와 묘미를 느낄 수 있음은 분명했다.
동선 상 제일 처음에 입장한 곳은 구제일은행 요코하마지점이었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한 전시는 심지어 한국인 예술가 - 한받 -의 전시였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활동명도 갖고 있는 그는 (야마가타라는 성만 보고 일본인이거나 재일교포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순수 한국인이었다) 자칭 민중엔터테이너로 소외계층의 편에 서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다양한 행위예술과 게릴라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과거 시부야에서 진행했던 퍼포먼스 영상이 음악과 함께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왔는데, 그 소음 때문인지 영상 때문인지 첫 인상이 상당히 강렬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한받 작가가 실제 사용하던 메모 수첩이었다. 꽤나 닳아있는 노트였는데 그만큼 작가의 고민을 십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책도 여러 권 출간한 것 같았고 음반도 많이 냈던 것 같다.
투쟁, 혁명과 같은 단어가 사실은 개인적으로 조금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화려하고 다채로운 (정신사나운) 의상을 입고 흥겹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며 현란한 춤사위 뒤로 사실은 소외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사회에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이러한 자극적인 퍼포먼스로 승화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전시된 작품들이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점이나 부조리함에 대해 표현한 주제들이 많았는데, 그 형태가 회화로 사진으로 설치미술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각각 작가의 개성과 사상에 의해 다르게 표현된다는 점이,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특히 현대미술은 이 시대에 변화를 촉구하는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반드시 작품 속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유추하며, 결국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깨달음을 얻는 과정들 총체적으로 현대미술 감상의 즐거움 아닐까.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프레임에서 벗어나 작가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들
야마시타라는 작가가 전시한 설치미술도 나름 재밌었는데, "미래의 상점"이라는 컨셉으로 온갖 잡동사니들을 모아놓고 전시를 하였는데 물건 하나하나마다 작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마구 휘갈겨 쓴) 메모를 읽다보면 작가가 이 물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와사비를 찾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였지만 도쿄로 이사한 이후 와사비 찾기가 어려워지면서, 대충 시장에서 500엔짜리 그림을 사다가 여기에 와사비 그림을 붙여 넣은 후 그 그림을 3000엔으로 되파는 구조라고 설명을 덧붙였는데 창작예술과 작가의 독창성이 가미된 점을 값을 매길 수 있다는 논리에서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두번째 방문한 전시관은 뱅크아트 카이코였다. 미디어 아트 중심으로 전시되었는데 작품 수는 3-4개로 많지 않았다. 입구에 있는 비디오 영상은 상영시간이 정해져있을 정도로 러닝타임이 긴 다큐멘터리였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ㅎ
일본에서도 자주 보던 이미 단종된 페퍼 3대가 놓여진 전시, 젠더리스 /LGBT 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페퍼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친근하고 귀여운 매체를 활용했다는 점이 특징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작품 역시 영상이었는데, 본인이 구매한 물건을 매점에서 구매한다는? 난해한 제목이었는데 영상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키오스크, 서점, 슈퍼마켓 크게 3군데에서 작가가 진행한 퍼포먼스가 녹화된 영상이었는데 요는, 작가가 A라는 키오스크에서 잡지를 산 후, 똑같은 잡지를 B라는 키오스크에서 또 돈을 주고 사는 행위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매한 물건을 다른 장소에서 다시 돈 주고 사는,,) 가 반복되는 영상이었는데 점원도 아무런 의심없이 어쩌면 기계적으로 계산을 하고 응대를 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인 현대사회의 노동을 풍자하는 영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그런 짓을 할까 하지만, 다시한번 현대 미술 작가들은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해석, 기존에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것을 비틀고 해집어 보는게 주요 업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대마의 요코하마 미술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엄청 컸다. 1층 로비에도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유료 티켓을 구매한 관계로 미리 유료 전시관을 입장하였다.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 그러나 생각보다 전시관이 상당히 많았고 작품 수도 많았기 때문에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며 즐기기엔 나중에 시간이 촉박했다..
인상 깊었던 작품만 고르자면 크게 세 네가지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 토미야마 타에코 (冨山妙子) 작가의 작품 특히 광주항쟁에 대한 판화가 다수 전시되어있어 상당히 놀랐었다. 뭐지? 재일교포인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 일본인이 그것도 한국의 역사를, 민감한 역사를 주제로 다뤘다는 점이 놀라워 찾아보니, 그녀는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화가라고.. 100세까지 장수하셨다고 하는데 21년에 서거하셨다.. <타는 목마름으로>로 유명한 김지하 시인과 연이 있는지, 그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다수 남겼고 그 그림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광주항쟁 뿐만 아니라, 원전에도 반대하는 느낌의 회화도 다수 전시되었는데 그녀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지, 그림을 통해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일본이 전쟁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을 항상 부끄럽게 생각하며, 평생에 걸쳐 전쟁에 대한 일본의 참회와 반성을 촉구하는 그림을 그렸고, 강제 연행된 조선인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주제로 작업해 왔습니다.출처: https://kistoryblog.tistory.com/entry/518민중항쟁-40주년-기획-광주를-그린-화가-토미야마-타에코 [역사문제연구소 블로그:티스토리]
2. 비닐에 쌓여진 마네킹이 네 개정도 전시되어있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AI 발달로 인해 더 이상 무용지물이 된 변호사, 판사, 비서 등이 쓰레기 봉투에 담겨 버려진 3D프린팅으로 제작된 전시였다. 제목이 먹먹하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미스 제인양!
3. 스위스 작가인 리타 시에그프리에드 (Rita Siegfried) 의 아크릴 작품. 너무 정교하고 예뻐서 사진인 줄 알았는데 아크릴 작품이었다. 정밀하고 세밀함에 감탄한 작품.!
https://www.yokohamatriennale.jp/2024/en/artists/rita-siegfried
4. 작가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디오 아트였는데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의 변화를 작가의 퍼포먼스와 함께 담은 영상이었다. 일본인 작가였는데 폐허가 된 후쿠시마의 풍경도, 이를 절절한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다양한 사진 작품들이 슬라이드로 넘겨지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내후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