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택을 믿어!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심지어 자전거도 잘 못 탄다. 그러다 보니 나의 여행은 늘 내 튼튼한 다리와 대중교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운동삼아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뚜벅이 여행이 나쁘지는 않다. 아이폰의 탄생으로 뚜벅이 여행은 10년 전에 비해 매우 편해졌다. 사서 고생을 해야 배우는 것도 많다는 걸 철석같이 믿고있는터라, 일부러 외진 곳 시골길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확실히 몸이 편한 여행보단 몸을 혹사시켰던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일본 시코쿠에 있는 오구치 섬을 여행했을 때다. 예전부터 오구치 섬에 있는 미라이신노오카를 꼭 가보고 싶어 구글맵에 표시해두었다. 웬만한 일본 소도시는 여행한 터라 마츠야마 관광지가 생각보다 별로 없어 당황하며 구글맵으로 주변 지역을 둘러보다 마침 오구치 섬이 차로 한 시간 이내라는 것을 발견했고 이거다 싶었다. 또 언젠가 마케팅 수업시간에 배웠던 타월계의 에르메스 이마바리의 본점이 있는 이마바리 시도 가보기로 결정하면서 나의 뚜벅이 여행의 고생길이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당장 버스 노선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1800엔부터 5000엔까지 다양한 옵션이 나왔는데 시간을 보니 1시간 내외 차이였다.
몸은 조금 힘들지라도 가장 저렴한 1800엔 옵션을 선택하였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 빼면 두 번 갈아타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였다. 버스는 지하철과 다르게 딱 맞는 정류장을 찾는 것도 일이다. 특히 이 방향이 맞는지 건너편인지 지도를 봐도 헷갈리는 경우도 많고 정거장이 여러 개일 때는 어느 게 맞는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스타트부터 위기였다. 아침 일곱 시 오분에 타야 할 버스 정류장의 위치가 헷갈린 것이다. 서둘러 나왔건만 두리번거리다 결국 이곳이겠지 싶은 곳에 서서 기다렸다. 다행히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었다. 무사히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정을 시작하고 약 한 시간 즈음 중간 도착지인 이마바리에 내렸다. 아쉽게도 당연히 거스름돈을 받을 줄 알았건만 잔돈은 주지 않는다는 버스기사의 말에 당황하며 50엔을 날렸다… 그나마 50엔이라 다행이다라고 애써 위로하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오구치 섬을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두 번 더 갈아타야 했는데 두 번째 탄 버스에서 내려야 할 정류장은 세토다 PA (버스)라는 곳이었다. (구글맵 선생님이 그렇게 알려준 바는 그랬다.) 잠깐 한눈팔다 급하게 세토다 PA라는 곳인 듯하여 내리려고 했는데 버스 기사님이 이곳은 주차장이라며 세토다 버스 정류장은 그다음 역이라고 해 주셨다. 급히 짐을 챙기느라 구글맵 위치 확인은 못하고 기사님 말만 철석같이 믿으며 그다음 역에서 내렸는데… 아뿔싸, 웬 고속도로 한가운데 있는 작은 버스정거장이 아닌가. 바로 전 역에 있던 정거장은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것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에, 정말 고속도로 한가운데 떨어진 기분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구글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구글 선생님이 알려준 지도에서 한 정거장을 더와버렸다… 기사님 말을 듣지 말 걸 그랬다..
다시 한번 현 위치에서 미라이신노오카까지 가는 방법을 구글 맵으로 돌려봤다. 다행히 원래 타려던 버스에서 약 10분 정도 늦긴 하지만 목적지 도착시간은 얼추 비슷한 버스를 타면 갈 수는 있었다.
아까 내렸다면 약 15분 정도 기다려 다음 차를 탈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고속도로 위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정말 괜찮을까 반신반의하며 구글맵에 내 위치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나는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런데 내가 타야 할 버스 정거장 위치는 이상하게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좀 이상했다. 구글맵이 똑똑하지만 가끔 버스정거장 표시가 이상할 때가 있기 때문에 무시하고 이를 기다릴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다음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마을 주변을 도는 시내버스였다. 그러므로 국도로 달리는 버스겠구나 싶었다. 고속도로로 올 리가 없었다. 다만 더 답답한 것은 바로 앞이 터널이라 이 길을 지나면 무엇이 나올지 보이질 않았다.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서 가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다만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어디론가 통하는 것 같은 낮은 철조망과 문이 있었다. 문은 잠겨져 있었지만 누구나 열 수 있었다. 다만 멧돼지가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쓰여있었다.
국도로 통하는 길은 이 문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는 듯싶었다. 문을 열고 약 2분 정도 걸어가니 다행히 제대로 된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내가 타야 할 버스의 시간표까지 정확히 적혀있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버스는 10시 10분 차였고 도착하니 10시가 막 지날 무렵이었다.
그 이후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미라이신노오카는 생각보다 꽤나 장관이었고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머물며 혼자여도 둘이 온 듯 많은 사진을 남겼다. 혼자 사진 찍는 데는 이제 도가 텄다.
사실 아침은 버스 안에서 오니기리 하나를 먹고 점심도 시간이 애매하여 크로켓 하나로 간단히 때웠더니 집에 갈 무렵엔 배가 무척 고팠다. 세시반에 세토다 PA로 가는 버스를 탔고 거기서 이마바리 시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엔 약 50분 정도 여유시간이 있었다. 아까 봤던 제대로 된 정거장은 휴게소 같은 곳이었으므로 대충 요기를 해야지 생각했다.
세토다 PA까지는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여유시간도 충분했고 마침 내린 곳이 오구치 섬과 오시마섬을 잇는 큰 다리(?) 가 대단히 잘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한 10분 정도 감상했던 듯싶다.
이제 구글맵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됐다. 가서 밥 먹어야지. 배가 너무 고팠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구글맵이 가르쳐준 곳이 길이 없었다. 돌아가야 했는데 방향 안내가 없었다. 구글맵대로 한다면 나는 국도에서 저 높은 돌담을 넘어 고속도로 휴게소로 넘어가야 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 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도가 아니라 여긴 틀림없이 도로구나 싶은 길을 걸어,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이질 않았다.
높고 낮은 철문들 너머로 아까 봤던 휴게소보다 허접한, 쉼터 같은 공간이 보였다 화장실과 자판기뿐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단 낮은 철문을 넘어가 보기로 했다. 한 번도 담장을 넘어본 적 없던 나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람이 많이 없는 틈을 타 담을 넘었다.
그런데, 역시 좀 이상했다 그냥 이곳은 쉼터였다. 고속도로에 있는 쉼터였다. 반대편을 보니 아침에 봤던 세토다 PA 가 있었다. 그리고 구글맵도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내가 서있는 곳이 맞는 방향인 것 같았지만 버스 정거장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래도 아까 봤던 정거장이 더 컸기 때문에 뭔가 버스의 집결지와도 같은 느낌인지라 반대편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신호인 것 같았다. 하다못해 아까와 같이 산돼지를 조심하라는 표시가 붙어있는 철문이 있어야 제대로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방이 막혀있던 이곳은 아니라는 확신이 두는 순간이었다.
고속도로였기 때문에 반대방향으로 건너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순간 차를 얻어 타야 하나 왜 나는 운전을 못하는가 여기서 버스를 못 타면 나는 고속도로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음 버스를 타기까지 25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뛰기로 했다. 구글맵을 보니 8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애써 넘었던 담벼락을 다시 넘었다.
원래 왔던 길을 돌아 반대방향으로 뛰며 혼자 별 생각을 다했다. 혼잣말을 하며 아직 늦지 않았다며 중얼거리면서 뛰고 또 뛰었다. 아까 왔던 갈림길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가면 터널을 지나 반대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순간적인 판단에서 나는 왼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터널은 꽤나 길었고 오르막길이었다. 처음으로 무서웠다. 어두운 터널을 혼자 지난다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경험이었다 심지어 오르막 길이라 뛰어도 속도가 나지 않았고 힘은 배로 들었다.
인생도 이와 같겠지?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그 상황이 내가 현재 처한 상황과도 같았다. 어두운 터널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야.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에서 무섭고 두려웠던 그 시간도 끝이 보였다.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워졌다.
드디어 도착, 제대로 왔다는 신호인 듯 멧돼지 조심 표시가 있는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약 15분 남짓 남았다. 방심할 수 없었으므로 버스시간표를 살펴보는데 아뿔싸, 시간이 다르다.
다른 정류장에 또 있나 찾아봤다. 근데 없었다. 분명 정거장은 이거 하난데, 하는 수 없이 휴게소에 들어가 점원분께 물어봤다. 제발 여기가 맞길 바라면서… 아쉽게도 그곳이 아니었다. 점원분은 여기가 아니라 반대편이라며 지도를 들고 나와주셨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다. 다시 터널을 지나 오른쪽으로 쭉 가면 된다고 했다. 설명을 들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구글맵도 제대로 설명을 안 해줬기 때문에.
문제는 10분 만에 갈 수 있을까였다. 뛰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지나기 싫은 터널을 또 지나야 했다. 다행히 이번엔 수월했다 내리막길이기도 했고 한번 경험해서 그런지 덜 무서웠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성이라도 생긴 걸까. 터널을 나와 오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지나 온 길은 터널에서 왼쪽이었다. 거긴 아닌 것이 확실했으므로 선택지는 이 길 밖에 없었다. 일단 가보자 가면 뭔가 나오겠지.
멧돼지 조심 경고가 있는 철문이 보였다. 이거다!
한줄기 희망이 보였다. 당당히 철문을 열고 뛰었다. 낯익은 자판기와 화장실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 저 멀리 붉은색 낮은 철조망이 보였다.
익숙하다 싶었던 이 공간은 내가 담을 넘고 들어온 쉼터였다. 안쪽까지 들어왔다면 버스시간표가 제대로 쓰여있는 푯말을 봤을 텐데 아닐 거라 지레짐작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간 게 화근이었다.
길을 잘 못 들어 반대편을 통해 오긴 했지만 그래서 담을 넘을 수밖에 없었지만 목적지 자체는 내 처음 선택이 맞았던 것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약 3분의 시간이 남았다. 20분 남짓 찰나 했던 그 시간이 잊히지 않는다. 만약 담을 넘고 제대로 버스정류장을 확인했다면 20분간 편안하게 버스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런 다이나믹 스릴러 영화는 찍지 않았겠지만 그 20분이 이번 영화에 하이라이트였다.
불안, 안도, 공포, 행복, 허무한 감정을 지나 결국 깨달은 한 가지는 나를 믿는 것이었다.
어떠한 형태의 선택이든 내가 한 모든 선택과 결정은 맞다는 그 믿음과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요사이 고민이 많았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나에게 갑자기 닥쳐온 시련과 어려움을 홀로 맞서서 이겨내며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행복하고 싶었고 행복해질 선택을 하고 싶었다. 이 선택을 하면 행복할까? 저 선택이 맞을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만큼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20분간 결국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된 이 사건에서 결국 나는 내가 한 선택이 맞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선택이든 내가 결정한 선택은 결국 나를 행복한 길로 이끌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용기가 생겼다.
아직도 무수히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있지만 그 모든 결정이 나를 결국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물론 중간중간 아까 지나왔던 터널처럼 어둡고 두려운 순간도 있을 것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 것처럼 지루하고 지루한 순간들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무사히 버스에 탄 것처럼, 그리고 그 어떤 기억보다 단단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된 것처럼, 더 행복하고 단단한 나를 만드는 재료들로 쓰일 것이란 걸
이번 여행을 통해 깊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