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섬을 회상하다
나오시마를 방문했던 건 2016년에서 연말이었다. 당시 나는 앞으로의 일본 생활이 1년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현재 6년 차이나..ㅎ)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타지에서의 연말을 꽤 의미 있는 곳에서 보내고 싶었다. 그 당시 나오시마가 꽤나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던 시기였던 것 같은데 마침 나오시마와 꽤 가까운 오카야마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 언니가 자신의 집에 초대한 덕분에 겸사겸사 16년의 마지막 연말을 나오시마, 오카야마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특히 일본 생활 1년 차였던 나에게 당시 현지인 친구 고향 집에 방문한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이벤트였고 그래서인지 나오시마 관광보다는 아직도 친구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어렴풋이 좀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오카야마는 도쿄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복숭아가 유명하다. 아마 전참시에서 김동완이 오카야마의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여행하면서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졌는데 구라시키 미관지구 옆동네가 바로 예술의 섬으로 불리는 나오시마이다.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미관지구는 도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교토로 불리는 거리의 모습 (한가운데 강을 중심으로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었으나 색감이 기가 막혔다. 미관지구는 마치 흑백사진의 실사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미관지구에서만큼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색이라곤 하얀색과 검은색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체적으로 블랙과 화이트의 색감이 조화롭고 신비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구라사키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코지마도 방문했다. 청으로 만든 옷/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밀집한 진 스트리트를 방문했는데 모모타로라는 브랜드가 유명하다고 했다. 기무라 타쿠야로 유명한 SMAP가 방문할 만큼 꽤 유명하다고 했다. 예상외의 가격에 깜짝 놀랐지만...
그 다음날 아침부터 일찍 나오시마로 향했다 나오시마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작품은 이에 프로젝트였다. 이에프로젝트는 누군가 살았던 옛 건물을 개조하여 기존에 살던 이들의 기억과 시간을 한 공간에 표현한 작품인데 1998년 카도야를 시작으로 당시 최근에 리뉴얼 완성한 킨자라는 작품까지 총 7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있었다. (2022년 현재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재창조되었을까 꽤 궁금하다) 친구와 함께 7개의 작품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각 작품 별 특색이 분명한 작품도 있었지만 의미가 불분명하고 난해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품 자체에 대한 매력도나 신선함보다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까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혼무라 일대를 걸어 다니며 느꼈던 나오시마의 평화로운 풍경들이 좀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나오시마 전체가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지도.. 나오시마에서 가장 큰 항구인 미아노우라항에서 그 유명한 쿠사마 야오이의 빨간 호박을 만날 수 있었다. 노을빛과 더해져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 빨간 호박 작품이 미아노우라항을 지키고 있는 대표 조형물이라면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변화시킨 선구자 베네세 가문이 세운 베네세 미술관을 지키고 있는 대표 작품은 바로 노란 호박이다. 이 역시 쿠사마 야오이의 작품으로 빨간 호박과는 다르게 왠지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이 좀 더 강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노란 호박이 좀 더 정감이 갔다. ㅎ
베네세 미술관의 경우 실내보다 실외 조형물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상당히 컸다. 작품과 내가 숨바꼭질하는 기분이었는데 하나하나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마치 보물을 찾은 듯한 묘한 성취감과 쾌감이 들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군데군데 놓여있는 작품들, 그 모습도 형태도 제각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나오시마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 생동감을 더욱 살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추 미술관은 섬 고유의 지형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미술작품, 건축물이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땅 속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작품은 단지 4개뿐이었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주는 신비감과 압도적인 아우라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즐기는 작품에서 더 나아가 작품이 놓여있는 공간이 함께 주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더욱 그 감동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6년 만에 다시 한번 더 나오시마, 찾아가고 싶다. 6년 간 타지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은 달라진 내 모습처럼 아마 20대 후반에 느꼈던 감동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