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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Feb 13. 2023

대학교 후배님

비만인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무례함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지쳤던 몸이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20대 초반에 했던 공부와는 다른 깊이 있는 공부가 고팠다.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만난 육아의 세상은 낯설고도 험난했다. 

 아이 덕분에 기쁘기도, 즐겁기도 했지만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우울감은 가끔씩 무섭게 나를 덮쳐왔다. 

 그 우울감의 이유가 나의 서툰 육아 혹은 유아기에 대한 나의 무지 때문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래서 더 공부가 고팠다. 

 당장 나의 유아기 시절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판이어서 대체 아이가 이 타이밍에 왜 우는지, 대체 이 상황에서 왜 저런 말을 하는지 하나에서 열 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내가 조금 더 유아기에 대한 이해도를 갖춘다면 육아가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고 아이에게도 분명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첫 돌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매일 학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고, 한 학기에 4번 정도의 출석만을 하는데 그 일정이 주말이라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내가 너무 공부를 만만하게 봤던 건지, 아니면 내 뇌도 나이가 든 건지 20대 때의 공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공부였다. 

 유아기 아이들의 심리, 지적능력의 발달 과정은 생각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연구되어 오고 있었고, 그만큼 학자들의 이름과 각 이론들이 넘쳐났다. 

 힘든 공부이긴 했지만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 그 재미로 버텨냈었다. 

 1학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같이 공부하는 스터디원들을 따라 열심히 했고, 그러다 보니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쭉 과대표를 하게 됐었고, 4학년에는 유아교육학과 학생회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학과에서 임원직을 맡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졌고, 매일 밤 육아와 집안일에 지쳐 쓰러지면서도 그 만남들과 공부는 내게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그분은 나보다 1년 늦게 학교에 입학한 후배님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5살 정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전업주부였던 나와는 달리 그분은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시원시원한 성격과 더불어 뛰어난 리더십으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참 잘 이끄는 사람이었다.

 

 아마 그때 즈음, 학과에 큰 행사가 있었다. 

 그래서 임원진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였고 한 명의 임원도 빠지지 않고 모두 출석한 날이었다. 

 회의장소는 학교 앞 작은 카페였다. 

 난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었다. 

 커피를 마신 날에는 꼭 속이 불편해 일부러 찾아마시지는 않았다. (훗날 어떤 계기로 취향이 바뀌어 지금은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그래서 카페에 가면 커피가 아닌 티 종류나 셰이크 종류를 시켜 먹곤 했었다. 

 그때는 1학기 종강을 앞두고 있었기에 무더운 여름이었고, 난 밀크셰이크를 시켰다. 

 음료가 나와서 각자 주문한 음료를 나누어 갖는데 그 후배님이 내 밀크셰이크를 보더니 한 마디 하시더라. 


 으이그..... 꼭 살찌는 것만 먹네요.


 내 귀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뭘 주문했나 보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거나 모카라테, 캐러멜 마키아또 등 다양했다.

 어떤 분은 식사를 못하고 왔다며 생크림을 듬뿍 얹은 와플을 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굳이 나를 콕 집어 살찌는 것만 먹는다며 한 소리를 한 것이다. 

 그 말을 들어야 했던 이유도 내가 비만인이기 때문이었겠지.

 내가 뭘 먹든 그건 내 개인 음료취향일 뿐이다.

 물론 내가 마시는 음료와 내 체형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 것이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나에게 그리 이야기하는 심리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감정이 표정에 잘 드러나는 나였기 때문에 그때도 얼굴에서 언짢음이 팍팍 티가 났을 것이다. 

 그러자 그분은 멋쩍게 웃으며 한마디 더 했다. 


 제가 원래 성격이 이래요. 그래도 뒷말하는 것보다는 낫죠. 전 앞에서 이야기하는 성격이라...






 주변으로부터 성격이 시원시원하다, 쿨하다, 솔직하다, 뒤끝 없다와 같은 종류의 평가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분도 자신의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란다. 솔직하게 본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 감정을 못 숨기는 사람. 하지만 뒷말은 절대 안 하는 멋진 사람. 남들은 사람 면전에 대놓고 하기 힘든 이야기를 앞에서 시원하게 하는 쿨한 사람. 

 모두 표현만 다를 뿐이지 사실 그것들을 종합하면 '무례한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

 언제부터 사람 면전에 대고 하기 힘든 말을 대놓고 하는 게 쿨하고 멋진 것이라고 하기 시작했나.

 무례한 말은 앞에서도, 뒤에서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임을 세상 살 만큼 산 성인이 몰랐을 리는 없을 텐데 뒤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당사자 면전에서 이야기하니까 그게 쿨한 거고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솔직함과 무례함은 동의어가 아니다. 

 내가 만난 수많은 무례한 사람들이 대부분 본인이 솔직한 성격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솔직함과 쿨함을 가장한 무례함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나 그런 사람들은 상대방을 빠르게 파악해 뭐 하나 상대방이 자기보다 못하다 생각되면 무례함을 시전 하기 바쁘다.

 30대의 여성이 비만체형을 갖고 있는 것 만으로 날 실패자 혹은 본인보다 못한 사람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날 그렇게 여기기에 그들이 나에게 그리 쉽게 하지 않아도 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쉽게 던져댔던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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