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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Feb 05. 2023

길 가던 어떤 할아버지

비만인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무례함들

 2009년 12월 즈음이었다.

 난 그때, 첫 아이 출산을 코 앞에 둔 임산부였다.

 출산예정일이 2010년 1월이었으니 한참 무거워진 배 때문에 잠도 잘 못 자던 때였다.

 출산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배는 커질 만큼 커진 상태였기 때문에, 밤에 자려고 누우면

바로 누울 수가 없었다. 바른 자세로 천장을 보며 누우면 숨이 턱턱 막혀왔기 때문이다.

 옆으로 누워서 무거운 배를 손으로 조심히 감싸 안으며 받쳐 들어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마저도 방광을 압박해 대는 만삭의 배 때문에 수시로 깨어야 했기에 편히 잠들 수가 없었다.

 어디 잠만 잘 못 자는 정도였던가.

 바지를 갈아입으려고 발 한쪽을 들면 그렇게 골반 밑 쪽이 아팠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바닥에 앉아서 겨우 갈아입곤 했었다.

 밥을 평소의 양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즐기고, 요리하는 걸 즐기는 내가 임신을 하고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음식 냄새를 맡으면 속이 니글니글 거리는 데다가 수시로 쏟아지는 잠 때문에 몸이 늘 피곤해서 부엌에 들어가 서서 요리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겨우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한다 해도 몇 숟갈 뜨지도 않았는데 위를 압박해 대는 만삭의 배 때문에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체중도 임신 전과 비교했을 때 12kg이나 불어나 있었다.

 아이의 체중에 3kg ~ 3.5kg 남짓인걸 고려해 보면 양수 무게를 감안하더라도 나의 체중이 정말 많이 불어난 것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그렇게 몸이 더 무거웠었나 보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남편이 퇴근하기 1시간 전, 따뜻한 저녁밥상을 간단하게라도 준비해주고 싶어 장을 보러 집을 나섰다.

 마트를 가려면 집 앞 골목을 빠져나가야 했다.

 초저녁의 한가롭고 조용한 동네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뒤에서 사람이 오는가 보다 하고서는 내 갈길을 재촉하는데 내 등 뒤 쪽에서 어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저 여자 근(斤) 수 좀 나가겠는데?

 

 내 귀를 의심했다.

 설마 그게 나에게 던지는 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시하고 계속 걷는 내 귀에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이고, 저 여자 근(斤) 수가 꽤 나가겠네.



 그 조용한 골목길에 사람이라고는 나 밖에 없었다.

 그건 분명 나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심지어 일부러 들으라고 빨리 걷는 내 뒤를 쫓아오며 내 머리 뒤쪽에서 말이다.

 순간 너무 화가 치밀어올라 뒤를 돌아보니 체구가 작고 얼굴이 새카만 할아버지였다.

 그런 무례한 말을 뱉은 장본인이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임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임산부인지라 태교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겠어서 앞에 가만히 서서 그 할아버지를 조용히 째려봤다.

 두 눈 크게 뜨고 미간에 주름을 크게 잡고 경멸하는 눈빛과 함께 "당신 나 알아?"라는 의미가 담긴 레이저를 눈으로 마구 쏘아대며 그 할아버지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할아버지는 내 반응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적잖이 당황하신 듯 귀까지 빨개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가만히 자신을 노려보는 내 옆을 지나가며 할아버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시고 땅을 보며, 헛기침을 해대셨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얼른 골목을 빠져나가셨다.

 내 뒤에서는 무례한 말을 두 번이나 잘도 내뱉던 분이 내 눈을 보면서는 차마 그 이야기를 못하시는 걸 보니 분명 그분도 본인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난 고기다 아니다.

 '근'이라는 말은 고기의 무게를 잴 때 사용하는 단위다.

 난 고기가 아닌데도 세상 살아오며 일면식도 없던 할아버지에게 고기 취급을 당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살이 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살이 쪘다고 그런 무례한 말을 내뱉을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겉모습을 하고 있었어도 또 다른 무례한 말을 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비만'은 이렇게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기가 참 쉬운 가십거리다.

 인기 개그프로그램에서도 늘 비만인 사람은 조롱의 대상, 웃음을 위한 희생양이다.

 사람들은 '비만'인 사람을 향해 너무나 쉽게 무례한 농담을 던진다.

 대한민국에서 고도비만의 여성으로 산다는 건 늘 이런 무례함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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