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에 무례한 세상
외모가 중요한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다.
매체에 나오는 인기 연예인들은 모두 훤칠한 외모와 몸매를 갖고 있다.
심지어 SNS 세상에는 연예인이 아니어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에 환호한다. 동경한다. 닮고 싶어 하고 그들이 입는 옷, 먹는 것, 바르는 화장품들을 궁금해한다.
심지어 애완동물을 고르는 데 있어서도 외모는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외모지상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가치의 중심을 외모에 두는 것'이라고 나온다.
보기 좋은 겉모습에 끌리는 건 당연하다.
나보다 훨씬 좋은 피부, 훨씬 예쁜 눈과 오뚝한 코, 늘씬한 각선미, 우람한 근육을 보면 그들이 먹는 음식이 궁금한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하는 운동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보기 좋은 것에 끌리는 건 본능이다. 예쁘고 귀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TV에 나오는 일반 주부들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는데도 여리한 몸매와 반짝거리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
아침방송에는 그런 분들이 나와 본인들이 무엇을 먹고 그런 몸매와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한다. 심지어 단기간에 몇십 kg의 체중을 감량한 사람들이 출연하기도 한다.
보기 좋은 것에 끌리는 우리들은 그런 방송을 보며 열심히 정보를 습득한다.
이상형이 뭐냐 물었을 때, '난 외모는 안 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묻고 싶다. 정녕 그대의 애인이 어떤 외모여도 상관없느냐고 말이다.
이성을 볼 때 말투, 성격, 외모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주의 깊게 살필 텐데, 외모의 순위가 다른 요소들보다 낮을 수는 있어도 외모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난 이런 현상들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까지 하는데 남편의 외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니까.
예쁜 사람, 멋진 사람을 보며 그들을 동경하고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가 정말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위에서 말한 '가치의 중심을 외모에 두는 것'이다.
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보통 체격이었다.
하지만 2학년으로 올라가는 해부터 급격히 살이 찌더니 통통한 체격이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살은 점점 찌기만 하고 빠질 줄을 몰랐다.
" 너만 공부하니? 너보다 더 오래 앉아있는 애들도 너처럼 살 안 쪄."
라고 말한다면 글쎄... 나도 그 점이 억울하기 때문에 내가 더 따져 묻고 싶다. 왜 난 이렇게 살이 찐 거냐고.
하지만 나도 안다. 절대 이유 없이 찌는 살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난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음식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 자체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떡볶이를 먹으러 갈 때면 빠지는 법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통통과 뚱뚱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가 29살 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동네길을 달리거나 걸었다. 식사는 두부나 샐러드로 때웠다.
살은 쭉쭉 잘 빠졌고 지금의 남편을 그때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첫 아이가 바로 생겼다. 살이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살이 너무 찐 탓이었을까.
당초 계획했던 둘째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첫 아이를 낳고 7년 후 갑자기 둘째가 축복처럼 찾아왔다.
두 번째 출산을 한 후, 살은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무섭고 두려워서 체중을 절대 재지 않으며 현실도피를 하기 바빴다.
결국 난 내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고 말았다.
초고도비만이었다. 그럼에도 난 외향성 인간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특별히 볼 일이 없더라도 외출하는 걸 좋아하던 나였는데 세상은 그런 나를 싫어하고 경멸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난 초고도비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TV만 틀면 동안의 아름다운 40~50 대 여성들이 나온다. 그런 분들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씬하고 심지어 외모까지 동안이다. 나와는 다르게.
TV 속 그녀들은 설거지하면서도 다리운동을 한다며 싱크대 앞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본인들이 먹는 식단이라며 각종 샐러드나 각종 즙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나에게 " 야. 난 이런데 넌 그게 뭐야? "라고 하는 듯...
세상은 초고도비만인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스쳐 지나가던 모르는 행인에게 인신공격도 당해보았고, 초면인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내 체형을 노골적으로 지적하던 상사도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기에 카페에 가면 스무디 종류나 과일주스를 시키는 편인데 그걸 보고서 어쩜 그렇게 살찌는 것만 잘 골라먹냐는 핀잔을 들어보기도 했고, 같이 다니는 사람 생각해서 살 좀 빼라는 말도 들어봤다.
등에 센서가 달린 듯 눕히면 우는 데다가 새벽잠을 잘 자지 않던 둘째 때문에 그나마 둘째가 곤히 자는 시간인 아침과 낮시간에 쪽잠자는 나에게 넌 어쩜 그렇게 게으르냐고, 아기가 잘 때 청소도 해놓고 빨래도 해놓아야지, 네가 그렇게 게으르니 살이 찌는 거라는 말도 들었다.
세상은 내가 초고도비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날 게으르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야말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데 '외모'를 중심에 둔 것이다.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자존감이 깎이다 보니 외향적인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집 밖에 나가기도 싫었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그런 나를 폭발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고 그날 이후로 정말 독한 마음으로 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이야기는 난 이렇게 운동해서 살뺐다 거나 난 이거 먹고 살뺐다 라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이 이야기는 다이어트 성공담도 아니다.
난 지금도 여전히 비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 그날 ' 이후로 난 변했고 지금 이 시간 본인의 체형 때문에 자신을 가두고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어 나의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