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인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무례함들
힘겨운 첫 출산을 경험한 후 좀처럼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던 내 몸에 드디어 뭔가 이상이 생겼는지 당초 계획했던 둘째가 찾아오지를 않았다.
부기는 오랜 시간 동안 빠지지 않더니 결국 내 살로 자리 잡으며 이전보다 더 비대한 체형을 갖게 되었다.
첫 아이가 4살, 5살이 되도록 둘째가 찾아오지 않았다.
조바심에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배란유도 주사까지 맞았지만 둘째는 계속 찾아오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했는데 어느 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이번에도 자연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시험관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하셨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자연임신에 실패했다.
남편과 상의를 한 결과 '시험관을 해서 둘째를 꼭 가져야 할 이유는 없으니 그냥 지금 이대로 세 가족이 행복하게 살자'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축복처럼 둘째가 찾아와 준다면 그때는 마음껏 기뻐하며 둘째를 맞이하자고 말이다.
둘째 임신에 대한 생각은 아예 접은 채로 몇 년을 지냈다.
그 사이 나는 열심히 다니던 유아교육학과를 드디어 졸업했고 어린이집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외벌이에서 맞벌이로 전환되며 삶이 이전보다 더 윤택해졌고 첫 아이도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어느 하나 흠잡을 것 없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유치원에서 놀다가 넘어져 눈 바로 윗부분을 피아노 다리 모서리에 부딪히는 바람에 크게 다쳐 병원응급실로 이동 중 이라는 연락을 받고 근무하던 어린이집에서 뛰쳐나와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 내가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행히 상처는 운 좋게도 눈을 살짝 비켜갔고, 15 바늘 정도를 꿰매었다.
너무 놀랐던 탓인지 며칠 동안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속이 울렁거렸다.
아들이 다쳤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급기야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속이 메스꺼워지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놀랐나 보다 싶어 진정하려고 애썼지만 메스꺼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다 달력을 보고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 보는데 두 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첫 아이가 6살이던 그 해 봄에 둘째는 기적처럼, 축복처럼 우리를 찾아왔다.
첫 아이를 낳고 난 후 빠지지 않아 내 살이 되어버린 체중 그대로 둘째를 임신해서 많은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
딸아이도 오빠와 마찬가지로 2.9.kg으로 태어났고 자랄수록 점점 더 예뻐졌다.
아들과는 다른 애교로 가족들의 혼을 쏙 빼놓기도 하는 사랑스러운 딸이다.
딸은 해를 거듭할수록 얼굴이 여러 번 바뀌면서 정말 나날이 예뻐지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해서 아무 옷이나 입혀도 다 잘 어울렸고 나를 닮아 염색하지 않았는데도 머리카락 색깔이 갈색빛을 띠고 있어 보는 사람마다 머리카락 색깔이 너무 예쁘다며 인사를 건넸다.
아들을 보면서는 어쩜 저리 키가 크고 훤칠하냐고 칭찬을 해주시고, 딸을 보면서는 어쩜 저리 인형같이 예쁘냐고 칭찬들을 많이 해주신다.
그런데 아이들을 칭찬하면서도 나를 내리까는 무례함을 시전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올케언니의 동생이다.
올케언니의 동생이니 내게는 사돈이다.
나한테만 그분이 사돈인가. 나도 그분에게 사돈이다.
어렵다면 어려운 사이지만 내가 그분한테는 너무 편했는가 보다.
대개 무례함이란 상대가 너무 편해져서 경계가 느슨해질 때 나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친정엄마는 올케언니와 식당을 운영하셨다.
그러다가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는 올케언니가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고 사돈은 그 식당에서 일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친정을 가끔 방문할 때마다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분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엄마 안 닮아서 다행이네!!! 엄마 체형 닮았어봐 봐. 어쩔 뻔했어.
아이가 예쁘면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된다. 굳이 옆에 같이 있는 나를 깔아내려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심지어 내 딸에게 가끔 직접 이야기하기도 한다.
OO아. 엄마 닮아서 뚱뚱하면 안 돼~. 넌 살찌면 안 돼~. 아빠 닮아서 다행이다.
이쯤 되면 예쁜 내 딸을 칭찬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날 돌려 까고 싶은 거 아닐까.
남편, 아들, 딸 세명 모두 나와는 체형이 다르다.
다들 키도 크고 늘씬늘씬하며 팔다리가 참 길다.
물론 내 아이들을 보며 엄마 체형이 아니라 아빠 체형을 닮아서 훤칠하구나라고 생각은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당사자인 나에게 말이다.
똑같은 칭찬을 해도 "아이들이 아빠를 닮아서 다들 훤칠하네요."라고 하는 것과 " 아이들이 엄마를 안 닮아서 다행이에요."라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 아닌가.
긍정의 말로 서로 기분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음에도 왜 굳이 상대를 깔아내리는 화법을 써가며 나에게 무례한 걸까.
사돈이라는 어려운 사이임에도 서슴없이 그럴 수 있는 건 역시 내가 비만인이기 때문일까.
비만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정말 이토록 잔인하다.
TV만 틀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늘 비만인은 웃음을 위한 희생양이고 드라마에서도 늘 비주류 역할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이 사회는 비만인을 무시하고 하대한다.
왜 비만인에게 무례한 건 유머로 통용되어야 하는지, 그게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