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쁜호박 Feb 18. 2023

올케언니

비만인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무례함들

 사실 사돈이 나에게 그런 무례한 말들을 서슴없이 던질 수 있는 것은 올케언니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올케언니가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사돈에게 전달했을지 사돈의 무례한 언변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내가 가장 기피하는 종류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나에게 무례한 말을 던져놓고 본인 성격이 워낙 솔직하다고, 자기는 절대 뒤에서 말 안 하고 앞에서 말하는 성격이라고 포장해 대기 바빴던 대학 후배님과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었다. 

 말투 자체도 엄청 억센 데다가 목소리도 굉장히 크고 하이톤이기까지 하다. 

 물론 올케언니 본인도 자신의 성격을 안다. 나와도 많은 세월을 지내며 그 때문에 수없는 다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의 레퍼토리는 똑같았다. 


 난 원래 말투가 이래. 악의는 없어.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입에서 나온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순간 악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본인의 말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다. 

 올케언니는 본인의 말투가 원래 그렇다며 절대 고칠 생각은 없이 늘 그 말투다. 

 언제나 자기 말투는 '원래' 그렇다는 변명과 함께 말이다. 



 




 올케언니와 가끔 통화를 하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느끼는 점은 항상 똑같다. 

 그녀의 내면에 나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다는 것. 

 '말'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올케언니가 대화과정에서 날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적어도 우리 둘의 대화과정에서 언니가 나에게 던지는 말투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올케언니는 우리가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된 상황에서 하는 인사가 몇 가지 패턴으로 딱 정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살쪘네' 또는 '살 빠졌네'이 두 가지 말을 가장 많이 건넨다. 

 신인가수나 아마추어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참 유행할 때도 누가 노래를 잘하더라~ 보다 누군 너무 못 생겼더라, 누군 너무 살쪄서 가수 하려면 살부터 빼야겠더라 라는 시청소감을 말하는 사람이다. 

 친구든 이웃이든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누구는 맨날 촌스러운 옷만 입어, 누구는 왜 머리를 그 모양으로 하고 다니는 거야, 누구누구는 옷이 메이커 옷이더라, 누구누구는 요즘 너무 살쪘더라, 요즘 살 빠졌더라 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언니는 보이는 겉모습에 굉장히 예민하고, 다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언니를 만날 때마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내가 펌을 하고 친정에 방문한 적이 있다. 


 어? 머리 펌 했네? 얼마짜리야? 딱 7만 원짜리 펌 같네.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다. 

 본인은 악의가 없다지만 던지는 말 한마디에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 

 주변의 다른 지인들은 처음으로 펌을 한 내 모습을 보고 다들 웬일로 펌을 했냐, 펌 하니까 뭔가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네가 펌을 다 하다니 뭔 일이냐 등등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는데 얼마짜리 펌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올케언니가 유일했다. 

 





 난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내 첫 아이 같은 줄 알았다. 

 첫 아이는 태어나서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낮잠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자는 아기였다. 두 돌이 되어가자 본인 스스로 기저귀를 떼어 던져버리며 기저귀를 강하게 거부해서 팬티를 입혔고 그 뒤로 이불에 실수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난 당연히 둘째도 그렇게 키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둘째는 굉장히 예민한 아이였다. 

 밤마다 절대 잠을 자려하지 않았고, 등에는 센서가 달렸는지 잘 재우고 내려놓으면 울기 바빴다. 

 2시간에 한번 수유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수유를 하고 나서 바로 자려고 하지를 않아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나의 출산으로 내가 일을 쉬게 되자 남편은 투잡을 뛰며 밤낮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집에서의 육아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도움을 청할 곳 없이 그렇게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키웠다. 

 그러다가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그럴만했던 것이 하루 24시간 중 쭉 눈을 붙이고 자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둘째는 2시간에 한번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나면 이 녀석이 좀 자줘야 나도 간간히 눈도 붙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끼니도 좀 챙길 텐데 전혀 그럴 수 없게 눕히기만 하면 우는 거다. 

 내내 울다가 웃다가 놀다가 그러다 보면 다시 2시간이 흘러 수유시간이 온다. 그렇게 계속 악순환인 거다. 

 결국 나는 24시간 내내 눈을 틈틈이 1시간씩, 30분씩 쪽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몸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젖몸살인 줄만 알았다. 고열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병원을 가려고 해도 누가 날 데리고 가주지 않는 이상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컨디션이 영 좋질 않아 그냥 누워서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 싶어 그냥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 못 참을 정도로 열이 올랐고 정말 이제는 병원에 가야겠다 싶었다.

 남편은 퇴근해서 집으로 오는 중이었고 집에는 7살 큰 아이와 태어난 지 이제 막 100일 되어가는 딸, 그리고 나만 있었다. 남편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뒤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구급차 안에 있었고 옆에서 여성 구급대원이 정신이 드냐며 나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구급대원의 말로는 119 센터로 내가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되었고, 출동 당시 내 체온이 40.3 도였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일어서는 순간 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고 당황한 7살 아들이 119에 신고하고 아빠에게 전화해 엄마가 쓰러졌다고 알렸다는 것이다. 

 여성 구급대원은 지금 열이 너무 높다며, 체온이 40도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정말 위험하다고 어쩌자고 열이 이 지경으로 오를 때까지 참았느냐며, 집에 아기가 있던데 아기 돌보느라 많이 힘드셨던 거 아니냐는 위로의 말을 던져주셨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구급대원의 말에 펑펑 울었다. 

 아무도 나에게 힘들지 않냐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구급대원이 던지는 말에 갑자기 서러워져 그분의 손을 잡고 누워서 그렇게 많이도 울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밤낮없이 일을 하느라 힘들었던 터라 남편도 나에게 그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가 없었다. 


 



 신우신염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것 같다고 했고 염증수치가 심하게 높아 최소 일주일, 길게는 열흘에서 보름까지 입원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그 와중에도 난 내 몸 걱정보다 아이 걱정이 앞섰다. 

 남편도 밤낮으로 투잡을 뛰는 바람에 내가 최소 일주일을 입원한다 가정해 봐도 적어도 이틀 정도는 아이를 다른 곳에 맡겨야 했다. 

 당연히 친정밖에 떠오르는 곳이 없었고 올케언니에게 둘째를 부탁했다. 

 입원하고서 이것저것 검사를 마치고 정신을 차리니 이틀밤을 둘째와 보내야 할 올케언니도 걱정이 되었다. 

 워낙 잠투정이 심해 밤잠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올케언니에게 미안해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날, 올케언니는 날 바닥 끝까지 끌어내리고 말았다. 


 야! 살을 빼야지!!! 애기 엄마가 그렇게 아프면 되냐고! 애기 엄마는 아프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살을 좀 빼!!!! 그렇게 뒤룩뒤룩 살이 찌니까 아픈 거 아니야!!!   


 그동안 언니가 어떤 무례한 말을 던져도 나 혼자 마음으로 삭히고는 했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언니에게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고, 내가 아프고 싶어 아팠냐고, 언니가 내 상황이 되어봤냐고, 내가 지금 24시간 동안 잠을 3시간도 채 못 잔 지 며칠이 지났는지 알기나 하냐고, 그게 내가 살찐 거랑 뭔 상관이냐고...

 내가 그날 그렇게 감정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언니가 나에게 이렇게 소리를 고래고래 치는 동안 옆에서 들리는 사돈의 목소리였다. 


 아 진짜 살 좀 빼라고 해!!


 내가 살이 쪄서 그들에게 피치 못할 피해를 끼친 게 있는가.

 내가 살이 찐 것이 그들에게는 죽을죄 인가. 

 생면부지의 구급대원도 걱정의 말을 던져주는데 (물론 직업적인 위로에 불과할 수 있지만) 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러나 싶었다. 

 

 정말 내가 살이 안 찐 사람이었다면 24시간 동안 3시간도 못 자고 화장실도 제 때 못 가고 끼니도 못 챙기는데도 안 아플 수 있는 건가? 

 정말 살이 안 찐 사람들은 그렇게 일상이 망가져도 몸이 안 아픈가? 

 그 일을 계기로 난 올케언니와 최대한 말을 섞지 않으려 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언니는 나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 사과에 또다시 사족처럼 붙는 말이 있었다. 


 넌 언니 말투 원래 그런 거 알면서 그러냐. 너 걱정되니까 걱정한다는 게 말이 그리 나간 거지.


 그 변명이 지긋지긋했다. 

 본인 말투가 원래 그래서 상대방한테 한두 번 상처를 준 게 아니라면 적어도 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말투가 원래 그래.

 그래도 난 뒤끝은 없어. 

 난 솔직한 사람이야. 

 난 뒷말은 안 해. 앞에서 말하지.

 난 쿨하고 시원시원한 사람이야. 


 자신의 성격을 이런 말들로 포장하는 사람들은 상습적으로 상대에게 말로써 비수를 던지면서도 본인들이 예의 없고 무례한 성격이라는 걸 모르더라. 

 그 사람들은 쿨하고 시원시원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예의 없고 몰상식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전 06화 사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