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인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무례함들
2009년 3월의 어느 날에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남편이 뜬금없이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 약속의 상대는 남편과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절친한 동생이었다.
결혼 전 남편 친구들과 함께 식사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구면이긴 했지만, 그 식사자리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겨우 인사만 나눴던지라 사실상 초면에 가까웠다.
봄 저녁,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나섰다.
식사를 마친 후 동네에 있는 작은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일이 벌어졌다.
대화는 즐거웠다.
나와 만나기 전에 남편에게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들, 정신없던 결혼식 날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곳에서 있었던 소소하고 웃긴 이야기들 등으로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화가 즐겁다 보니 두 남자는 술을 계속 시켜댔다.
어느 순간 둘 다 얼굴에 취기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둘 다 언젠가부터 말하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는 게 슬슬 자리를 정리해야겠구나 싶었던 찰나 갑자기 남편의 친한 동생이라는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형수님, 혹시 살 빼야겠다는 생각해 본 적 없으세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아무 대답 없이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기만 하니 나에게 말하길,
형수님. 모든 남자들이 짧은 치마 입은 여자를 좋아해요. 아마 형도 그럴걸요? 형수님 살 빼야 돼요.
그때는 결혼초기여서 고도비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살집이 아예 없을 때도 아니었지만 결혼 전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통통해 보일 수는 있었겠으나 그 시기에는 내가 어디 가서 사람들한테 살 빼라는 소리를 들을 때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황당했다.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내 최대 콤플렉스가 이 살집들이었는데 그 사람이 그걸 툭 건드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내 맘대로 질러댈 수도 없는 자리였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내 지인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 순간 남편을 쳐다봤다. 난 남편이 나를 대신해 너 지금 술 취했나 보다, 왜 그런 말을 하냐라고 그 사람에게 한 마디 하리라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상황에서는 남편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바라봤을 때 남편 표정을 그냥 웃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기분 좋게 나간 자리에서 난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엄청난 인신공격을 당했다.
하지만 제일 기분이 상하는 건 본인이 보는 앞에서 부인이 그런 인신공격을 당했는데도 가만히 웃고 있던 남편의 모습이었다.
아, 사실 이 남자도 그 동생이라는 사람하고 똑같은 생각인 거 아냐?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는 그게 당연했다. 본인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왔던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남편의 체면을 생각한다고 정작 그 자리에서는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꾹꾹 눌러 담았지만 집에 와서는 화가 누그러들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정중하게 사과했지만, 난 그 사람에게도 반드시 사과받고 싶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난 남편과 싸울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고, 남편은 왜 싸울 때마다 과거 이야기를 꺼내느냐며 그런 날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난 그날 인신공격을 당했고 그것에 대한 어떤 사과도 없었다, 그래서 그 일은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지 마무리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를 공격해서 날 다치게 한 사람에게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뭐가 옛날 일이고, 뭐가 다 끝난 일이냔 말이다.
그 일로 남편은 몇 년동안을 잊을만하면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나에게 많은 시달림을 당했다.
결국 그 사람은 내게 사과를 했고, 그건 그 일이 있고 난 후 6년이 지난 후였다.
남편은 그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둘 다 취기가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그 동생이 단순하게 말실수를 한 거라고 관대하게 생각하더라.
남편은 내게 말했다.
그 동생이 만약 맨 정신이었다면 그런 말 할리도 없는 놈이지만, 맨 정신에 그리 말했으면 자기가 따끔하게 그 자리에서 주의를 주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술자리였고, 술이 어느 정도 취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실언을 한 것이라는 이유로 남편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부인보다 친한 동생의 입장을 더 이해했다.
앞으로 평생을 같이 할 부인의 상처받은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면서 친한 동생의 마음은 그리 잘 이해하는지에 대해 당시에는 정말 화가 났다.
술에 취해도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으며, 할 행동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는 거다.
처음에 남편 친구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날 만날 때와 결혼식 날, 날 보며 속으로 얼마나 품평을 내렸으면 술 취했을 때 조금 긴장 풀렸다고 그런 말이 함부로 나오는지 나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남자들은 짧은 치마 입은 여자를 좋아하니 살 빼라는 말은 초면인 형수님한테 할 소리는 절대 아니다.
비록 긴 시간이 흐른 뒤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사자에게 사과를 받긴 받았다.
그리고 사과를 받은 뒤로는 남편에게 더 이상 그날의 일은 꺼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난 분명 그 상황에 가만히 있던 남편에게도, 나에게 상식 이하의 무례한 말을 뱉은 그 사람에게도 사과를 받았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고 너무 기분이 나쁘고,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