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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Aug 25. 2023

홈트, 자신과의 싸움 끝판왕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꽤 오랜 시간을 운동 없이 식단 조절만 했다.

 그러다가 둘째가 3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만이라도 맡길 수 있게 되었을 때 드디어 운동에 욕심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걷기 운동을 하던, 헬스를 하던 어디든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다들 건강한 사람들, 날씬한 사람들만 있을 텐데 내 모습이 그런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 지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지배했다.


 나에게 근수가 꽤 나가겠다고 말했던 동네 이름 모를 할아버지.

 거울을 보라고, 네가 사람이냐며 살 좀 빼라던 엄마.

 내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수군거릴 것을 왜 모르냐며 쏘아붙이던 남동생.


 세상이 이제껏 나에게 쏟아냈던 말들 때문에 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고, 그래서 망설여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숨을 헐떡 거리며 땀 흘리는 내 모습을 보면 다들 수군댈 것만 같았다.

 다들 저기 좀 보라고, 저 여자 육수 빼는 것 좀 보라고 하겠지...


 그래도 꽤 준수하게 식단과 관련된 규칙을 잘 지켜왔기에 몸이 가벼워졌고 (물론 이건 나만 아는 변화지만), 슬슬 몸을 좀 움직이고 싶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하기엔 두려웠던 그즈음에 한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었다. 

 그 채널을 운영하던 유튜버는 부부였는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들이 운동을 통해 건강한 삶을 되찾고, 본인들만의 루틴으로 만든 운동법을 세상에 공유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부였다. 

 그리고 그 영상들이 내 관심을 확 잡아끈 건 다름 아닌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들 위주라는 점, 동작들이 하나같이 엄청 쉬웠다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서 바로 그 채널을 검색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신나게 영상 속 부부를 따라 했다.

 내가 비만이 된 후, 최초로 한 운동이었다.




 영상의 길이는 30분 정도였다. 

 처음엔 피식했다. 30분 운동이 힘들면 뭐 얼마나 힘들겠나 싶었다. 심지어는 30분으로 무슨 운동이 되겠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30분 정도 운동이야 별로 힘들지 않게 끝낼 수 있겠다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영상의 동작들을 따라 하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숨을 헉헉댔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얼굴은 열기로 붉게 달아올랐다. 10분도 채 안된 시간 동안 조금 움직였다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살이 찐 뒤로 고질병인 족저근막염을 얻었기에 발바닥은 또 얼마나 아픈지...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고, 나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없으니 집에서 혼자 하는 운동이 참 편하겠다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그게 큰 단점이기도 했다. 

 홈트 영상을 보며 처음 운동했던 그날, 바닥에 주저앉아서


 에이. 왜 이렇게 힘들어. 그냥 여기까지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분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여기까지만' 할까 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웃기지도 않는다. 

 TV에서 나오는 홈트 영상을 일시정지 해놓고 그렇게 철퍼덕 앉아서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아니, 30분도 못해? 운동을 30분도 못하겠냐고. 이거 30분도 못할 거면 그냥 계속 사람들한테 그렇게 무시나 받으며 평생 살 거야?


 나는 다시 일어났다. 얼른 부엌으로 가서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다시 거실 TV 앞으로 가서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재생버튼을 누르고 비장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날, 결국 나는 해냈다. 

 32분 정도의 영상 속 운동을 끝까지 완주해 냈다. 

 남들에게는 32분 정도의 운동이야 뭐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난 그날 내 앞에 놓인 어마어마한 태산을 하나 넘은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 

 발바닥이 너무 아팠고 다리도 아팠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하면서 거울을 보니 얼굴은 홍조가 빨갛게 올라와 있었다.

 살찐 뒤로 '땀'에 대한 좋은 기억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살찐 사람이 흘리는 땀을 '육수'라고 말하기도 하고, 여름에 뚱뚱한 사람 옆에 가면 왠지 땀냄새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것 까지도 들어봤다. 

 나 또한 살이 찌면서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흘렀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얼굴에 새빨갛게 홍조가 올라왔다. 

 더운 여름에 흘리는 땀이어도 사람들은 내가 살이 쪄서 남들보다 땀을 더 흘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첫 홈트 32분을 완주하고 샤워하면서 본 그날 내 얼굴의 땀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개운하고 뿌듯할 수가... 




 내 몸이 홈트 30분에 적응하는 그 기간 동안 정말 숨이 꼴딱 넘어갈 만큼 힘든 순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책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살이 쪄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난 왜 남들처럼 살 수 없는 거야?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은 포기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래, 내가 이 나이 먹고 모델을 할 거야, 연예인을 할 거야?

 난 어차피 애 둘 있는 아줌마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온갖 생각들이 들었지만 그 모든 생각들의 끝은 결국 하나였다.


 오늘은 운동하지 말까?


 하지만 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꾸역꾸역 주 5일 동안 홈트를 했다.

 내가 날 자책하는 마음,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 못난 마음들을 꾹 참고 하루에 30분 ~ 40분 정도의 영상을 꼭 틀어놓았다.

 하기 싫어도 꾹 참고 했다. 

 하루 24시간 중 30분 ~ 40분도 못 참아낸다면 훗날 내 아이들이 살아가다가 숱하게 만날 고비들 앞에서 힘들어할 때 넌 할 수 있다고, 너의 힘을 믿으라고 응원할 자격이 내겐 없어지는 거라며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힘들어도 이겨내고 뭔가를 쟁취해 내는 모습을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생각 하나로 버티며 매일 아침 9시 ~ 9시 40분까지 혼자 TV 앞에서 낑낑 거리며 땀을 뺐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침에 일어난 나는 내게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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