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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Aug 22. 2023

고도비만은 '죄'가 아니니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사실 비정상적으로 살이 찌고 있다는 걸 나 자신이 모를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잘 맞던 옷들이 작아지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빅사이즈 쇼핑몰'을 검색해 대면서도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외면하던 현실을 잔인하게 일깨워 준 것은 바로 세상의 무례함이었다.

 이 세상은 비만인을 싫어한다.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비만 체형을 가지고 있다면 개그의 소재가 되고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십상이다.

 긴 시간 동안 난 사람들이 장난으로 건넬 말을 찾을 때 항상 그들의 소재가 되었고, 생면부지인 사람들도 지나가다가 툭툭 한 마디씩 뱉어내는 말들에 마음이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외면해 오던 체중계 위에 오르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곪아가던 내 마음은 더 이상 곪을 수 없을 정도로 덧나있었다. 

 110Kg이라는 무게를 눈으로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거실에 털썩 주저앉아 한동안 멍했던 것 같다. 

 살찌기 전의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체중인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지금부터 내가 변한다 해도 대체 난 이 많은 살들을 뺄 수 있는 것인가 등등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때려왔다. 

 그때 당시 며칠 전 시청했던 TV프로그램도 생각이 났다.

 130Kg 정도 나가는 거구의 여성이 집 밖으로 나와 걷기 운동을 하며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나갔는지를 보여주는 프로였다. 

 그 TV프로를 시청하면서도 난 내심 안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저 정도는 아니지. 어쩜 사람이 저렇게까지 살이 찌지? 


 그런데 난 110Kg이었다. 

 거실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TV에 나오는 비만여성을 향해 어찌 저렇게까지 살이 찔 수 있느냐는 생각을 할 처지가 아닌 것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내가 비만이라는 이유로 내게 무례한 이 세상을 싫어하면서 나는 왜 TV프로에 나오는 여성을 바라보며 나보다 더 살쪄보인다는 이유로 그런 생각을 가졌는가. 결국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었던 걸까.






 살이 쪄가니 성격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난 원래 외형적인 사람이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살이 쪄가면서, 살이 쪘다는 이유로 남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마저 자존감을 짓밟히는 무례함 들을 경험하다 보니 점점 밖에 나가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110Kg이라는 체중계 숫자 앞에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당장 뭘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운동을 한다 해도 당장 밖에 나가서 걷거나 체육기관을 다녀야 할 텐데 사람들이 이런 몸을 가진 날 보며 손가락질을 해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몸뚱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길가는 모르는 사람들도 나에게 한 마디씩 한 거였겠지.

이런 몸뚱이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급기야 나는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리 살이 뒤룩뒤룩 쪘기 때문에 세상이 나에게 무례했던 거라고 말이다. 

 110Kg이나 된 몸으로 밖으로 잘도 싸돌아다녔으니 사람들 눈에 내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겠느냐고 자책을 해대기 시작했다. 

 더더욱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졌다. 나 자신을 사람들 앞에 보이는 것이 더더욱 싫어졌다. 

 사실 살을 뺄 시도를 전혀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느 한의원에서 지은 약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비싼 한약을 지어먹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그 한약을 먹는 첫 3일 동안은 금식을 해야 하고 4일째 되는 날부터는 보식기라고 해서 방울토마토, 죽 등과 같이 위장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의 식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3일 금식을 하고 극단적인 소식을 했으니 당연히 살은 잘 빠졌다. 

 하지만 그 시기에 7Kg 정도가 감량되고, 요요현상으로 12Kg이 찌고 말았다. 

 한약이 안 맞으니 양약을 먹어보라는 누군가의 권유에 병원으로 달려가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고, 그것 또한 약을 끊은 뒤로 살이 무서운 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심지어 약을 먹으면 밤에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이루기가 힘든 경험을 하기도 했다. 

 모두 실패를 하고 운동이나 해볼까 하고 헬스센터에 등록했지만 그곳에 비치된 운동복을 입으면 너무 볼품없는 내 몸에 위축이 됨은 물론 내가 러닝머신 위를 걷고 있으면 다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그 마저도 며칠 가지 못하고 말았다.




 이런 실패의 경험들도 내 자존감을 떨어트리는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뭐 하나 성공해 낸 것이 없으니 자신감이 있을 리 만무했고, 난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한참을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검은 TV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 검은 TV속에 비친 나 자신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생기발랄하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던 난 어디로 가버리고 저렇게 살찌고 초라한 아줌마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지... 하지만 그 초라한 아줌마도 '나'인걸...

 살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 들어도 될 소리를 그렇게 듣고 날마다 속상해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게 된 TV속에 비친 나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나 마저 나 자신을 탓하고 미워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세상의 많은 무례한 말들을 뒤집어쓰고 살고 있는 나를 나까지 미워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고도비만은 죄가 아니다. 

 내 친정식구들은 나의 비만이 죄라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외모가 다르듯 나 또한 비만일 뿐이다. 그런 몸을 가졌을 뿐이다. 

 그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남에게 무례한 말을 뱉으며 상대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며 웃고 즐기는 것은 죄다. 

 무례함이 죄이지, 비만은 죄가 아니다. 

 난 체중계 위 110Kg이라는 숫자를 본 그날, 많은 생각 끝에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그 뻔뻔함의 시작은 바로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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