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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호박 Aug 30. 2023

내 건강을 좀먹고 있던 고도비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살이 무섭게 찌던 때에는 체중계와 거울을 외면하며 살았다. 

 하지만 올케언니가 입원한 나에게 걱정의 말 보다 그렇게 뒤룩뒤룩 살이 찌니 아픈 거 아니냐는 비수를 던져댈 때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받아왔던 모든 무례한 말들로 인해 받았던 설움과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더 이상 눈치 보며 살기 싫었다. 

 남들보다 살이 쪘다는 이유로 어디 외출할 때마다 누가 날 쳐다보며 수군거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살기 싫었다. 

 그래서 식단조절과 홈트레이닝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집으로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국가건강검진 대상자이니 가까운 검진기관을 방문하라는 우편이었다. 

 그동안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내 몸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이상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겁이 났다. 

 체중계도, 병원도 겁이 나서 그렇게 미련하게도 계속 외면하고 피했다. 

 하지만 난 결국 그 두려움을 이겨내 체중계 위에 올라섰고, 내 체중을 확인함으로써 뭔가 대단한 일의 시작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난 식단(물론 완벽하진 않았지만)과 운동을 계속 실천하고 있었고,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용기를 내어 체중계에 올라갔던 그날처럼, 한번 더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가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당화혈색소 7.8 , 공복 혈당 126.


 혈당 수치 관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이 수치들은 현재 내가 당뇨병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당화혈색소는 최근 3개월 간의 내 혈액 속 당 수치이며, 정상인은 5.7 이하다. 

 5.7 ~ 6.4 까지는 당뇨 전 단계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 이상은 당뇨병이라 정하고 있다. 

 아침에 어떤 음식물도 섭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측정한 혈당은 126을 넘어서는 안된다. 

 공복혈당 126부터 당뇨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 나이 42살, 당뇨병이 왔다.




 

 외할머니는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당뇨병의 가장 무서운 합병증으로 알려져 있는 '당뇨발'로 엄청난 고생을 하셨다. 

 발가락에 작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서서히 곪아가며 썩어 들어가더니 급기야 그 부위의 피부가 검게 변한걸 직접 보았다. 

 엄마 또한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젊은 나이에 이미 당뇨병 판정을 받으셨고, 결국 그 합병증인 급성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당뇨는 가족력의 영향을 너무나 많이 받는 질환이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당뇨로 그렇게 고생하시는 걸 봐왔기 때문에 한참 살이 쪄오면서 비정상적인 목마름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이 당뇨병의 초기 증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했었다. 

 그것을 마주하기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당뇨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순간 가슴에서 뭔가 쿵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소견도 있었다. 

 나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통 당뇨와 함께 찾아오는 여러 좋지 않은 수치들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혈압도 정상이요, 간 수치도 정상이요,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이라는 것이다. 

 딱 하나, 당 수치만 높은 거라고 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복부비만 문제만 해결해도 정상적인 당 수치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해주셨다. 이러한 의사 선생님의 소견은 내게 큰 희망이 되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달려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내 예상으로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면 아마 당장 입원 치료를 해야 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름 식단조절도 하고 하루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긴 했지만 주 5일 꾸준히 홈트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선방한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셨던 모습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가 고도비만이 되기 전 조금 더 빨리 조치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어 또 자책을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한탄을 들을 때마다 남편은 내가 이제라도 운동의 재미를 알게 된 것에 늘 감사하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그동안 해온 모습들을 보았을 때 넌 당뇨 따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힘을 줬다. 

 날 굳건히 믿고 있는 남편의 응원은 늘 나에게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전에 엄~~~~~~~~~~~~청 살쪘을 때, 너 데리러 학교에 가면 안 창피했어?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니... 왜 요즘 애들은 친구들 엄마가 예쁜 거 보면 엄청 부러워한다길래. 


 아들은 내게 말했다. 


 에이, 날씬하다고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뚱뚱하다고 엄마를 창피해하는 아이 인성이 잘못된 거지. 

 난 엄마 한 번도 창피해 본 적이 없는데?



 

 

 남들보다 살이 쪘다는 이유로 온갖 무례한 말들과 무시 속에 날 가두기에는 난 너무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작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 일뿐. 

 고도비만은 내 생각 이상으로 나의 건강을 좀먹고 있었다. 육체적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 건강까지도.

 난 고도비만 체형의 날 보며 못된 말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면서도 나 자신을 돌 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그저 숨을 뿐이었다. 

 난 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던 것인가.

 이제는 날 사랑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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