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

by 큐원

어렸을 적에는 막대기를 참 좋아했다.

전쟁놀이에 쓸 수 있는 길이와 강도가 있는 검 같은 막대기를 보면 눈이 돌아갔다.

길 가다 주워오고, 학교에서 받아오고, 산에 가서 주워와서

집에 5개 정도의 정예 막대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쓸 기회가 없었다.

망토를 두르고, 플라스틱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전쟁놀이를 하고 싶었다.

나도 맞고 상대도 때리며 아프고 신나는 전쟁놀이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러고 싶어 하는 애들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자 다들 축구나 TV 시청 같은 상식적인 놀이를 좋아했다.

우리 형은 특히 그랬다.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는 형에게 아무리 졸라도 전쟁놀이를 같이 해주지 않았다.

간혹 같이 하더라도 몸 같은 곳에 막대기를 맞아서 아프면 바로 그만두었다.

아픈 게 어때서? 재밌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몇 년 전에는 외가친척끼리 갯벌에 갔다.

나는 왁자지껄 뭔가 신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얌전히 조개를 캐고 있었다.

아니? 왜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하지? 나는 참 황당했다.

난 갯벌에 누워서 뒹굴고 진흙을 던지고 갈매기를 쫓아다녔고

8살 어린 사촌동생과 진흙눈싸움을 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때도 왠지 사람들과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36살인 지금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직장사람 여러 명이서 휴게실에 앉아 대화 나누고 있다 보면,

역할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교양 있는 사회인 1

교양 있는 사회인 2

마음이 따뜻한 직장동료 1

마음이 따뜻한 직장동료 2

몇 가지 역할을 나눠가지고 정해진 루트대로 대화가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난 그래서 짓궂은 농담을 좋아한다.

그것은 함박눈이 왔을 때 모두 차가운 눈을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 눈을 조금 뭉쳐 옆사람에게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한 사람이 약간의 악역을 맡으면 주위 사람들도 역할에서 잠깐 벗어나,

본래 약간씩 가지고 있는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가 되면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을 느낀다.


집에서는 신나는 재즈를 틀어놓고 춤을 춘다.

춤을 배워본 적도 없고 아는 춤도 없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몸을 휘적거린다.

움직이고 싶은 대로 어떤 동작이든 흘러가는 대로 둔다.

그러다가 지치면 거실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다.

그러면 내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면 좋아서 춘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췄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이를 36살이나 먹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냥 생명체다.

여러 가지 성숙한 역할들을 수행할 수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짐승 같은 본능도 있다.

짐승일 수 있을 때 짐승으로 있어야,

사람이어야 할 때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구석에 본가에서 가져온 목검 한 자루가 버티고 있다.

아내는 버리라고 하지만, 호신용이라고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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