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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May 22. 2020

조정훈, 이승헌... 기묘한 평행 이론의 롯데 투수들

롯데 차세대 에이스 이승헌의 재기를 응원하며

지난주 일요일, 개막 이후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KBO리그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고가 일어났다. 17일 대전에서 열린 롯데와 한화의 시즌 3차전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한 이승헌이 머리에 투수강습 타구를 맞고 쓰러진 것.


중계를 하는 중계진도 순간적으로 놀라 말을 잇지 못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고였다. TV로 상황을 지켜보던 야구 팬들과 현장에서 지켜보던 관계자 모두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들 만큼 큰 사고였다.


투수가 강습타구를 맞는 일은 종종 일어나는 사고다. 온 몸을 활용해 투구를 한 이후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타구에 미쳐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등이나 엉덩이 같은 부위에 공을 맞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승헌의 경우는 너무 불운하게도 머리를 강타당하고 말았다.


천만 다행히도 이승헌의 상태는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 측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두개골 골절상을 입기는 했지만, 큰 위기는 넘긴 상황이고 입원 이후 몸상태가 많이 회복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요일 이승헌의 투구와 부상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그가 프로에 입문한 이후의 과정을 겪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승헌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의 전체 3순위 픽을 받고 입단한 선수다. 당시 1순위가 kt의 선택을 받은 천재타자 강백호, 2순위가 삼성의 영건 양창섭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고교무대에서 그가 보여준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승헌은 확실히 유망주가 많다고 여겨졌던 베이징 키즈 세대 중에서도 눈에 띄는 유망주였다. 195cm의 이상적인 신장을 활용한 내려꽂는 투구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스트볼이 일품이었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역시 고교 수준에서 꽤나 완성된 공이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동기들이 빠르게 데뷔해 자리를 잡을 때 이승헌은 퓨쳐스리그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첫 시즌 전지훈련 때 갈비뼈 골절상을 입으며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밸런스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고교 무대에서 보여주던 인상적인 투구폼은 사라졌으며 145km를 찍던 빠른볼의 구속도 130km 후반대로 떨어져 위력이 감소됐다.


1년이 지나 1군에서 데뷔했던 2019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지켜보는 팬들보다 이승헌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분명히 학생 때는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동기들은 벌써 데뷔해 스타가 되고 있는데, 본인은 제자리 걸음이었으니 마음 고생이 분명히 심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020시즌 첫 등판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박수를 보낼만 했다. 스토브리그 당시 미국 드라이브 라인에 다녀와 밸런스를 잡은 것이 주효했다지만, 선수 본인의 노력이 더해지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이승헌 과거의 시련을 모두 이겨내고 자신의 볼을 비로소 되찾은 것이다.

이승헌의 2020시즌 첫 투구. 이 날 던졌던 공을 다시 던질 수 있다면, 10승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이승헌이 부상전 뿌렸던 약 30개 정도의 투구만 봐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밸런스를 가지고 그 정도의 구위를 보여준 것이 우연이 아니고 온전히 이승헌의 실력이라면, 1군 로테이션에 드는 건 문제도 아닐 것이다. 팀의 에이스 나아가 국가대표 발탁을 논할만한 실력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비로소 자신의 것을 만들어 돌아온 이승헌이 다시 부상으로 재활에 매진해야 한다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승헌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고 있으니 이승헌과 10년 정도의 터울을 가진 선배 조정훈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둘은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출신 고등학교가 마산용마고로 같고, 유급 이후 모교를 이끄는 에이스로 활약하며 1라운드 지명을 따낸 점도 같다. 투구 스타일 역시 190cm의 장신을 활용한 타점 높은 투구 폼의 우완 정통파인 것도 공통점이다. 두 투수는 좋은 신체조건과 투구 폼으로 인해 구위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위와 같은 긍정적인 부분과 함께 선배 조정훈의 그늘진 면까지 이승헌은 닮았다. 조정훈 역시 이승헌처럼 커리어 초반에는 1군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조정훈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2군 무대에서 기량을 연마한 이후인 입단 4년차부터였다.


불의의 부상으로 재활을 해야하는 상황이 온 것도 어찌보면 비슷하다. 조정훈은 2010년 어깨와 팔꿈치에 부상을 당한 이후, 2017년 1군 무대에서 공을 던지기까지 7년이라는 세월을 꼬박 재활에만 매진했었다.


선배 조정훈의 기적과도 같은 재활 이력을 생각하면 이승헌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그 역시 아직 프로 입단 3년차일뿐이고, 어깨와 팔꿈치와 같은 부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머리 쪽의 부상을 잘 회복해 부상을 당하기 전 17일 경기에서 보여줬던 위력적인 공을 되찾기만 한다면 조정훈이 하지 못했던, 그러나 롯데 팬들이라면 누구나 바랐던 롱런하는 우완 정통파 선발투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조정훈은 롱런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7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마운드에 돌아온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사진=롯데)

이제 시작인 이승헌이 좌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승헌이 많이 닮아 보이는 조정훈은 롯데 팬들이 가장 많은 응원을 보낸 투수 중 한명이다. 여러 모로 선배를 닮은 이승헌 역시도 손에 꼽을만한 응원을 받으며 공을 뿌리는 모습을 머지 않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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