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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Apr 20. 2020

‘라이온 킹’ 이동국, 그는 아직도 현역 선수다.

'게으른 천재' 꼬리표가 만들어 낸 22년 롱런

“한국 축구의 상징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누구를 떠올렸는지 만으로 그 사람의 나이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50대 이상의 중년이라면 독일 분데스리가의 외국인 선수 레전드로 남은 ‘차붐’을 차범근을 단연코 먼저 꼽을 것이다. 또, 그 아래 30,40대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을 떠올리지 모른다. 반대로 10,20대의 어린 친구들은 레버쿠젠과 토트넘 등 유럽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손세이셔널’ 손흥민을 이야기할 것이다.


아마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라이온 킹’ 이동국을 한국 축구의 상징으로 꼽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동국 본인도 자신이 한국 축구의 상징이냐는 물음에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이동국은 아직도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사진=전북 현대 모터스)

하지만, 이동국은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국내 축구의 역사를 관통하는 선수다.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98년 K리그 신인왕을 차지하고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월드컵 무대에 뛸 때는 모두들 그가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 바람대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놀랍게도 2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이동국은 여전히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지난 2017년, 2002년 월드컵 대표였던 현영민이 은퇴하게 되면서 2002년 대표팀 선수 전원이 현역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0년, 2002년 월드컵보다 4년 전에 열렸던 1998년 월드컵 멤버였던 이동국은 아직까지도 전북 현대의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이미축구 리그에서 1998년생 성인 선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가끔, 아직도 현역으로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동국을 보면서 떠올리는 생각이 있다. 도대체 왜 이동국은 아직까지 현역을 고집하는 것일까? 물론, 여전히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이동국이 현역으로 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마흔 살이 넘은 그가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쏟아 부어야 하는 노력을 생각하면 보통 결심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매우 흐려진 별명이지만, 젊은 시기만 해도 이동국에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었다. ‘게으른 천재’ 언론에서 긍정적인 별명인 ‘라이온 킹’ 대신 부정적인 수식어로 그를 표현할 때 종종 썼던 말이다. 언론에서 그렇게 부르니 일반 팬들도 이동국을 모두 게으른 천재라고 표현했다.


모두가 그를 게으른 천재라고 불렀던 이유는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기대대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지만, 선수가 게을러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동국에게 게으른 천재라는 별명을 안겼다.

절망에 가까웠던 경기에서 스무살 이동국이 보여준 패기는 모두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에게 5-0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뒤지고 있을 때, 교체로 들어와 중거리 슛을 때리며 속 시원한 플레이를 펼친 약관의 이동국에게 모든 국민들은 열광했다. 이후에도 이동국은 2000년 아시안컵에 부상을 안고도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국가대표와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를 동시에 소화하며 한국 축구의 대들보 역할을 해냈다. 어쩌면 이 당시의 강렬한 임팩트가 모두에 뇌리 속에 박혔기 때문에, 그 이상 성장하지 못한 이동국에게 게으른 천재라는 굴레를 씌웠을지 모른다.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 FC와 계약을 맺고 해외 진출을 발표하던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은 뜻밖에 말을 꺼낸다. 


“이제 게으른 천재라는 말은 그만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외에 진출하는 만큼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혹은 이번 시즌에는 몇 골을 넣겠다는 등 대부분의 해외진출 기자회견에서 들을 수 있던 각오와는 다른 이례적인 이야기였다. 이동국에게 게으른 천재는 떼어 내야만 하는 이름표였다.


어쩌면 그가 아직까지 뛰는 이유도 게으른 천재라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동국의 커리어는 불운하다는 말이 어울릴 뿐, 게으르다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40세가 넘는 시기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십자인대가 파열이라는 부상을 입었지만 재활을 통해 무난하게 기량을 회복했다. 십자인대 파열과 같은 큰 부상을 딛고 재활을 통해 기량을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종목을 불문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부상으로 인해 붕대를 감고 뛰었던 2000년 아시안컵에서 이동국은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처음부터 게으름과는 거리가 있는 선수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어쩌면 ‘게으른 천재’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이동국 본인을 스스로 채찍질하게 만들어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동국의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누구도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로 ‘게으른 천재’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모두의 기대대로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동국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국가대표 간판 공격수 자리를 지켰고, 2000년대 중반 월드컵 불운의 부상을 이겨내는 성실함을 보였고 그리고 2010년대에는 K리그 인기 부흥의 최전선에서 현역으로 후배들과 함께 맹활약하고 있다.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아직까지 K리그는 막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5월부터는 무관중 경기를 중심으로 야외 스포츠 재개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권고사항에 따라 K리그 역시 서서히 막을 올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다렸던 봄과 함께 다가올 2020년, 이동국은 여전히 현역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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