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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Apr 22. 2020

해커도 여유롭게 대처하는 하정우의 '롤러코스터'

유쾌한 하정우의 언어습관이 메가폰을 타고 그대로 묻어나온 영화

영화배우 하정우가 해커와 나눈 카톡이 화제로 떠올랐다. 하정우는 지난해 12월, 유명인의 휴대전화를 해킹해 유포 협박을 통해 현금을 갈취하는 수법을 일삼는 해커와 설전을 벌였다. 대부분 해커에게 협박을 당하면 바로 신고를 하거나 유포를 막기 위해 돈을 송금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로 움직인다. 하지만 하정우는 해커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경찰이 추적할 시간을 벌었고 해커 일당을 검거하는데 도움을 제공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실은 지난 4월 20일, 언론사 디스패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디스패치는 특유의 메신저 대화 재구성을 통해 하정우와 해커가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고, 내용에는 차마 휴대전화 해킹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여유있게 대처하는 하정우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정말 협박을 받는 피해자의 메세지가 맞는지 의심되는 하정우의 대처 (사진=디스패치)

하정우는 본인의 상황을 빗대어 “하루종일 오돌오돌 떨면서 오돌뼈처럼 살고 있는데.”라고 이야기 하거나, 자신의 신상 유포를 협박하며 13억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나 그럼 배밭이고 무밭이고 다 팔아야 한다, 아니면 내가 너한테 배밭을 줄테니까 팔아보든가.”라고 자신의 부동산을 ‘배밭’과 ‘무밭’에 비교하는 대단한 언어유희를 보여줬다.


혹시 하정우는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한 인물처럼 결국에는 사건이 해결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유 있고 위트 넘치는 대처였다. 물론, 경찰에 신고한 이후, 실시간으로 경찰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받으며 움직였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여유 넘치는 상황에서 말장난을 쳤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이 사람의 평소 말투가 이런 것이다. 실제로 만나본 일은 없지만, 높은 확률로 영화 속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들의 애드립 연기가 위 카톡 대화와 같은 방식의 언어 유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일이다.


하정우는 연기뿐 아니라 메가폰을 잡고 감독에도 도전한 역사가 있다.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입봉작인 ‘롤러코스터’부터 ‘허삼관’까지 배우 하정우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이유 만으로도 꽤 많은 화제가 됐었다.

그 중 하정우의 감독 입봉작인 ‘롤러코스터’는 마치 극한의 상황에서도 ‘오돌뼈’와 ‘무밭’을 이야기하는 그의 재치 넘치는 말장난을 집약해놓은 영화와도 같다.

영화감독을 그렸던 하정우는 입봉작 '롤러코스터'를 통해 꿈을 이뤘다. (사진=네이버 영화)

욕쟁이 연기를 하는 한류스타 ‘육두문자맨’이라는 비범한 설정의 주인공 고준규(정경호 분)부터 다른 영화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온 몸으로 이야기해준다. 감독 하정우가 직접 캐스팅했다는 고준규 역의 정경호는 하정우와 어린 시절부터 친한 사이라고 한다. 정경호는 오돌뼈와 무밭과 같은 하정우의 말장난을 누구보다도 직접 많이 들었을 사람이니 이보다도 적절한 캐스팅이 있을까.


‘롤러코스터’는 작품적으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처음부터 가벼운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를 표방하며 만들었기 때문에 작품성이라는 면에서는 저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화를 본 이들의 평을 살펴보면 단순히 웃음을 선사하는 부분에서도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 하정우식 말장난, 애드립 연기를 그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라면 ‘롤러코스터’가 종합선물세트같은 느낌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게 무슨 영화지?’ 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주인공 육두문자맨뿐 아니라 영화는 독특하고 엽기적인 설정의 비범한 캐릭터로 가득 차 있다. 기장과 부기장은 쉴 새 없이 욕설에 가까운 만담을 주고받으며, 맥주를 마시며 운전을 한다. 현실에서는 승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들 역시 아슬아슬하게 승객이 들을까 말까한 정도의 톤으로 승객의 뒷담화를 눈앞에서 주고받기도 한다.


승무원에 대적하는 승객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에게 대뜸 육식을 권하는 스님부터 본인이 어렵게 탄 비즈니스석이니 어떻게든 뽕을 뽑고 말겠다는 각오로 진상을 부리는 승객에 큰 소리를 들으면 회장님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욕과 큰 소리를 자제해달라는 비서와 회장님까지.

글로 다 풀어내기 힘들 정도로 정신없는 설정의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하정우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사운드를 가득 채운다.


그래서인지 ‘롤러코스터’는 감독을 맡은 하정우는 후반부에 전화 통화 속 목소리로 잠깐 등장할 뿐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하정우를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진하게 드는 ‘하정우 표 영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영화는 작품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전국 27만 명 정도의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상이 매우 힘들어진 최근처럼 지치고 힘들 때, 그저 머리를 비우고 아무런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협박범에게도 오돌오돌 떨고 있다며 오돌뼈를 찾은 하정우처럼 지친 일상 속에서 가끔은 여유를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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