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뿔 달린 도깨비
벽돌탑의 도깨비 - 6 <뿔 달린 도깨비> 녀석은 낙동강이 보이는 산 중턱에 산다. 몇 년을 그 곳에서 살았는지 아는 이은 아무도 없었다. 녀석은 사람이 아니다. 녀석은 도깨비다. 뿔 달린 도깨비. 무척 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이 숲 전체를 간간히 흔들어주는 오후. 도깨비의 미간이 씰룩거린다. 향냄새가 곯아떨어진 도깨비의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곧 녀석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코를 킁킁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감은 눈을 뜨자 진한 검은 색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녀석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산 중턱 절벽 아래 곧 무너질 것 같은 낡고 작은 초가의 판자문이 열렸다. 녀석이 나무판자 문을 열고 나와 허리를 폈다. 녀석의 덩치는 사람의 배나 되었다. 어떻게 작은 집에서 생활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집과 도깨비의 크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두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니 팔이 지붕까지 훌쩍 뻗어 올라갔다. 녀석은 온몸이 털로 뒤덮였다. 늘 아래를 내려다보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깨의 근육이 너무 발달해서인지 등이 살짝 꾸부정하게 굽어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뿔이 둘. 녀석의 뿔에는 수많은 세월의 흔적과 상처들이 남아있었다. 앞을 보기 위해 이마 근처 긴 머리털을 질끈 묶어놓아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사람보다 훨씬 크고 진한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며 오른쪽 송곳니가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무척이나 인상적인 두 개의 기다란 팔. 그리고 날카롭고 긴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은 기지개에 이어 하품을 크게 했다. 왼손에는 도깨비 방망이가 들려있었고 오른손으로는 배를 북북 긁었다. 그리고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걷지 않아 도깨비의 눈에 멀리 두 개의 강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 보였다. 그리고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가면 강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당집으로 가는 길이다. 도깨비는 멈추지 않고 냄새가 나는 곳으로 걸어갔다. 얼마 후 당집이 녀석의 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숲속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비집고 들어와 당집을 비치고 있었다. 당집 뒤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우뚝 서있었다. 그리고 굵은 새끼줄이 그 나무둘레에 비스듬히 걸려있었다. 당집은 사람 키보다 작았고 건물 가운데에 양쪽으로 여는 문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당집 앞에 발이 세개인 돌로 만들어진 상이 놓여있었다. 그 상위에는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져있었다. 음식을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커다란 도깨비와 맞은편의 자그마한 당집, 그리고 거대한 당나무가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닭이 있군. 과일도 이정도면……. 오오오~ 묵도 있잖아. 흐흐흐” 녀석은 씨익 웃으며 상위의 음식을 하나씩 확인했다. 도깨비는 생고기를 좋아한다. 생고기인 닭이 세 마리, 그리고 특별히 도토리묵이 세모나 올라와있었다. 도깨비들은 도토리묵을 엄청 좋아한다. 상아래 놓여있는 호리병이 도깨비의 눈에 들어왔다. “일단 목부터 축여볼까?” 호리병을 들어 주둥이를 막고 있는 천을 빼내고 냄새를 맡았다. “청주군. 흐흐흐” 도깨비는 하늘과 당나무에 예를 표하고 난 후 호리병을 들어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 입가를 따라 녀석의 털을 타고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리곤 덥석덥석 도토리묵을 집어 삼켰다. 도토리묵이 부족했는지 입맛을 다신 후 날카로운 손톱으로 과일을 몇 개 찔러 입안으로 넣었다. 조용한 숲속에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도깨비는 상위에 있는 종이로 눈을 돌렸다. 종이 위에는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돌멩이가 놓여있었다. 도깨비가 음식을 우적우적 씹으며 오른손을 움직이자 순간 휙 하고 돌멩이와 종이가 떠올랐다. 녀석은 종이만 손톱 끝으로 잡았다. 그와 동시에 돌멩이는 땅으로 뚝 떨어졌다. 종이를 잡은 손톱을 벌리자 종이가 공중에 뜬 채 저절로 펴졌다. 도깨비는 연신 음식을 손톱으로 찔러 먹으며 공중에 펼쳐진 종이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러운 늦은 오후. 울타리 넘어 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 안쪽에 조그마한 초가가 있었다. 마당 구석에는 자두나무가 한그루 지붕보다 높이 자랐다. “여보 다녀왔소.” 이서방이 나뭇가지를 지게에 잔뜩 지고 사립문으로 들어섰다. 이서방은 오후 더위가 꺾이자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이엄마의 대답이 없었다. 지게를 부엌 옆에 내려놓고 나뭇가지를 부엌 안 아궁이 맞은편 외양간 쪽으로 옮겨놓았다. 크게 몸을 쓴 것도 아닌데 몸은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이서방은 상방으로 가서 “장모님, 좀 씻으러 나갔다오겠습니다.” 장모에게 말을 걸었다. 이서방은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이서방은 스무 살 나던 해에 이 마을로 장가를 왔다. 원래 이 동네에서 30리 떨어진 산촌마을에서 6남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때 어머니가 병으로 죽고 형수가 어머니 역할을 대신해주었다. 그리고 9살 때 아버지도 병으로 죽었다. 그 후 스무 살 차이나는 형의 집에서 형과 형수의 눈치를 보며 살다가 고모의 중매로 지금의 부인과 혼인하게 되었다. 신부는 무남독녀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이서방은 장가를 들어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조용한 이서방과는 반대로 활동적이며 동네에서 유명한 장난꾸러기이다. “참 이보게, 내 방에 상다리가 부러졌는데, 좀 고쳐야겠네.” 장모는 새하얀 백발을 문밖으로 내밀며 말을 했다. “장모님! 그 상은 산지 그리 오래되질 않았는데 벌써 다리가 그렇습니까?” 순간 이서방의 머리에는 장난꾸러기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에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그럼 씻으러 갔다 오겠습니다.” “다녀오게.” 장모는 가느다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때마침 보리쌀을 씻으러 우물에 갔던 부인이 집으로 들어왔다. “여보! 가서 땀 쫌 씻고 오겠소.” 이서방은 부인이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비켜서며 말을 건넸다.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많아요. 강에 가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럼, 그물이나 놓고 와야겠군.” 이서방은 나무에 걸려있는 그물을 들었다. 그리곤 “은어 몇 마리 잡으면 좋겠네.” 씨익 웃으며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도 미소로 답을 한다. 계절로는 딱 은어 철이다. 사람들은 강에서 은어를 잡아 그날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볕에 잘 말려서 겨울철 별미로 먹기도 한다. 강 근처 작은 개울에서는 아이들이 양손에 작대기를 들고 은어 떼가 오른쪽으로 가면 작대기로 오른쪽을 찌르고 왼쪽으로 도망가면 왼쪽을 작대기로 찔러 은어 떼를 몰아간다. 얼마간을 몰아가면 은어가 지쳐 색깔이 바뀐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은 손으로 은어를 잡는다. 간혹은 쫓기던 은어가 도망을 가다가 더 이상 헤엄을 칠 수 없는 얕은 곳으로 가서 쉽게 잡을 때도 있다. 강으로 향하던 이서방은 아이들이 개울에서 은어를 잡으며 놀고 있는 것을 보며 말을 걸었다. “뭐 좀 잡았냐?” 하고 말을 걸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한 녀석이 반대쪽을 향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이서방은 잠시 그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다 아차 싶어 큰소리로 외쳤다. “이놈! 너 서당 안가고 거기서 뭐하는 거냐?” 도망치던 아이는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알몸으로 개울 위쪽 숲속으로 뛰어가 버렸다. “허, 허, 참~, 네” 이서방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려 다시 강을 향해 걸어갔다. 도망간 아이는 그의 아들 돌이였다. 돌이가 다니는 서당까지는 십리길이다. 이서방은 함께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고 노는 걸로 봐서는 오늘 점심부터 아이들과 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아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장난이나 사고를 쳐서 야단을 맞은 후에는 언제나 씨익 웃어넘겨버리는 밝은 모습이 좋았고 자신이 어린 시절 눈칫밥 먹고 살아서 그런지 자유롭게 노는 아들이 밉지 않았다. 그가 강 쪽으로 저만치 멀어지자 개울 위 숲속 바위 뒤에서 머리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이내 발가벗은 아이가 웃으며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아이의 웃는 모습은 이서방의 웃는 모습과 똑같았다. 강에 도착한 이서방은 몸에 걸치고 있던 그물과 수건을 내려놓고 옷을 하나도 빠짐없이 벗어 가지런히 놓고 그물만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강으로 들어갔다. 알몸인 그의 뒷모습은 잘 발달된 농부의 탄탄한 몸매였다. 그리고 몸은 전체적으로 구릿빛이었다. 그는 깊이가 무릎정도 오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 들어가 몸을 구부려 물을 오른쪽 팔과 가슴에 묻힌 뒤 점점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뒤로 하고 점점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이서방 저쪽에는 내가 벌써 그물 쳤네. 다른 쪽을 찾아보게.” 이서방이 그물을 들고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며 풍산아재가 말을 걸었다. “예~” 이서방은 조금 아쉬웠다. 풍산아재가 그물을 쳐둔 곳은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그곳은 샘물이 있어 은어가 잘 모인다. 그래서 그물을 치면 은어가 꽤 잡히나 미리 그물을 쳐둔 사람이 있을 땐 근처에 다른 곳을 찾아야한다. 상류로 올라가면 은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 있지만 이서방은 그렇게까지 움직일 마음은 없었다. 그는 샘물이 나오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수영해갔다. 그곳은 장소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정성을 다해 그물을 쳤다. 그리고 몸을 씻기 위해 강가로 헤엄쳐 나왔다. 물가에 가까워진 이서방은 씻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거의 다 씻고 옆에 있던 풍산아재에게 말을 걸었다. “새로 집 짓는 곳은 언제 마무리한데요?” “거의 마무리 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올해 안에는 끝날 것 같더라고.” “엄청나게 크다면서요? 몇간이랍니까?” “99간이라고 하던데. 뭔 집이 그렇게 크데?” 풍산아재는 물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물 밖으로 빼고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가 보면 커다란 두꺼비가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한 모습이다. “참, 촌장님은 뭐라세요?” “내일 관아에 가신다데. 관에서 뭘 해줄게 있겠어. 사람일도 아닌 도깨비 같은 요물들 일인데.” ‘하긴’ 이서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물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옷을 챙겨 입으며 자신이 그물을 쳐둔 곳을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아재 먼저 갑니다. 천천히 오세요.” 풍산아재는 한손을 들어 대답을 대신했다. 이서방은 풍산아재와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크크, 에휴~” 이서방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방향을 잘 못 잡았다. 자갈밭 길을 따라 가야하는데 모래밭 길로 걸으니 짚신사이로 모래가 올라와 완전히 마르지 않은 발가락 사이까지 모래가 묻어버렸다. 조심하며 걸어보았지만 모래가 튀어 종아리에까지 묻었다. 이서방은 모래가 적은 강가 언덕 쪽으로 진행방향을 바꾸었다. 나지막한 언덕이지만 올라보니 자신이 사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저녁밥을 짓느라 마을의 굴뚝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제 집에 가서 밥을 먹을 것을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순간 개울가의 아이들이 아직도 놀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 개울 쪽을 바라봤다. 아이들도 옷을 입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서방이 돌이를 부르자 녀석은 은어 세 마리를 버드나무가지에 끼워 오른손에 들고 뛰어왔다. 돌이는 모래가 발에 묻는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돌이가 언덕위에 올라서자 마을 전체를 밥 짓는 연기가 자욱하게 감싸고 있었다. 닮은꼴의 아버지와 아들이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 전체에 밥 짓는 냄새와 된장 끓이는 냄새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