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7

7 만남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7 <만남>



도깨비는 사람들이 당집을 찾아와 소원을 빌고 음식을 차려 놓으면 그것을 간혹 내려와 먹었다. 간혹 그들이 남겨 놓은 편지를 읽고 그것에 답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신통한 당집이라 하여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그러던 가운데 도깨비가 음식을 먹는 것과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훔쳐보고 이를 소문을 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개중에는 도깨비를 산신이라고 하는 자도 나오고 산짐승을 잘 못 본 것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깨비 당집이라고 그 곳을 불렀다.

당집을 다시 찾는 도깨비는 화가 나있었다. 도깨비는 지난 번 묵을 끝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묵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다. 묵만이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못 봤다.

“아니, 왜? 음식이 없는 거야?”

투덜투덜 거리더니 도깨비는 당집을 뒤로 하고 오솔길을 거슬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도깨비가 숲속 오솔길을 따라 당집으로 내려왔다. 햇볕이 나무 틈사이로 당나무와 당집으로 내리쬐었다. 당집 앞 돌상은 햇빛에 반짝반짝 빛이 났지만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도깨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왜? 왜?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도깨비는 당집 주위를 걸으며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오솔길을 따라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재, 오늘은 늦게 오셨네요.”

이서방은 기분이 좋게 인사를 건넸다. 기분 좋게 강변을 향해 걸어오던 풍산아재는 몸을 씻으면 인사를 건네는 이서방을 보더니 낯빛은 변했다. 그러더니

“자네, 그물 놨는가?”

풍산아재의 물음에 이서방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런, 할 수 없지. 내, 오늘은 양보하지.”

풍산아재는 아쉬웠다. 하지만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풍산아재는 곧 옷을 벗고 들고 온 그물을 가지고 강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늘 이서방이 그물을 치던 곳에 그물을 치고 되돌아왔다. 그리고

“지난번 도깨비 사건은 그래 어떻게 됐는가?”

“사또가 격노를 하셨다고 하던데요. 조정에도 보고를 하고 사또께서 크게 움직이실 모양입니다. 벌써 도깨비 당집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답니다. 괴상한 사술을 부리는 일이나 요상한 신을 모시는 일을 금지시켰다는군요. 무당들도 비상이랍니다.”

“이야……. 큰일이네.”

“지난번에 순덕이 아비는 완전히 혼이 나갔더라고요. 이제 그런 일이 없어야 할텐데.”

“소문에는 도깨비가 짓는 집이 있다던데?”

“에이 ~ . 그건 그냥 소문일뿐입니다. 도깨비처럼 건물을 잘 짓는 목수때문에 생긴 말인 것 같아요. 그 옆에 벽돌탑도 도깨비가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뭔가 그럴 듯하게 지어지면 다들 도깨비 타령이죠.”

이서방은 강 저편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강가에 뽀얀 목재로 새로 짓고 있는 집이 보였고 그 옆으로 7층 벽돌탑이 보였다. 그 옆으로 낙동강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서방과 풍산아재가 있는 곳은 낙동강의 다른 줄기인 반변천 쪽이다. 이 두 강이 만나는 곳이 얼마 멀지 않은 아래쪽이다. 그리고 두 강 사이에 넓게 펼쳐진 들판이 이들이 살고 있는 마뜰이다.

“저 집 몇칸인지 들었는가?”

“99칸이라고 하던데요. 100칸은 지으면 안됀다더군요. 나룻배로 강 건너며 개목나루에서 보니까 굉장하더라고요.”

“참 묘하지. 강가라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느낌이잖아. 옆에 절은 이제 끝이 났어. 옛날에는 대단했다고 하던데…….”

“지금은 벽돌탑하고 몇채밖에 없잖아요. 그 도깨비가 만들었다는 탑요. 허허허! 아재 전 먼저 나가겠습니다.”

이서방은 몸을 일으켜 물 밖으로 나갔다. 옷을 챙겨 입고 풍산 아재와 인사를 나누고 동네를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 이서방은 강변 언덕에 올라섰다. 날이 저무는데도 여름의 절정을 알리기 위해서인지 매미가 무척이나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해도 지려는데 왜 이리도 덥지?"

이서방은 혼잣말을 하고 발을 내려다봤다. 오늘은 자갈길을 골라서 걸어 발에 모래를 묻히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다. 고개를 돌려 강가 사람들의 움직임을 잠시 지켜보았다.

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하얀 바위가 모여 있다. 해가 서산으로 가까워지자 바위마다 낮 동안 물고기를 잡아 말려뒀던 사람들이 그것을 분주하게 챙겼다. 여름철이면 늘 낙동강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배를 따고 뱃속을 깨끗이 씻은 뒤 태양의 열기로 뜨거워진 바위 위에서 그 물고기를 일차로 말린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집에 가지고가 나무꼬챙이에 끼워 항아리에 걸고 불을 피워서 바짝 건조를 시킨다. 이렇게 훈제한 것을 다른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어 겨울을 위해 보관한다. 이때 간혹 잡히는 귀한 은어도 손질을 하여 잘 보관해 두었다가 약으로 쓰기도 하고 국수국물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말려서 보관하는 물고기는 겨울동안 찾아오는 귀한 손님을 위해 내놓은 아주 특별한 음식의 재료가 된다. 겨울이 되면 말린 물고기에 고추장을 말라 굽거나 물을 자박하게 부어 찌지면 맛이 좋은 별미다. 이 때문에 여름에는 서로 경쟁을 하듯이 물고기를 잡아 말린다.

이서방은 오늘은 저들이 부럽지가 않다. 멱 감으며 쳐둔 그물에 밤사이 고기가 걸려 들것을 생각하니 마냥 기분이 좋았다. 며칠째 이서방이 그물을 치러 가면 이미 풍산아재가 샘물 근처에 그물을 쳐둬서 이서방은 계속 다른 자리에 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그물을 거두러 가보면 풍산아재는 은어를 포함한 여러 물고기를 많이 잡아가지만 이서방의 그물에는 다른 물고기는 있어도 은어는 구경을 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이서방은 은어를 잡아가지 못했지만 이서방의 장난꾸러기 아들은 은어를 몇 마리씩 잡아서 밥상에 올라오게 하니 살짝 자존심이 상했었다. 오늘은 장난꾸러기 아들이 뭘 많이 먹었는지 이서방이 집을 나설 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들마루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운 좋게 샘물이 나오는 곳을 이서방이 차지했다.

이서방은 다음날 아침에 은어를 잡아서 집에 갈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논두렁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곧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었지만 이서방의 콧등과 입주위에는 다시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서녘으로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새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서방은 잠시 멈춰 새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쳐다본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때, 시원한 바람이 산 쪽에서 강으로 불어왔다.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 갑자기 불어오자 이서방은 잠시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고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며 몸을 식히고 있었다. 순간 이서방은 섬뜩함이 느껴져 눈을 뜨고 앞을 봤다.

‘뭐지 이 섬뜩함은?’

섬뜩함과 함께 시끄럽게 울던 매미소리도 갑자기 뚝 그쳐버렸다. 이서방의 주변이 어느 사이엔가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머리를 돌려 해가 지는 쪽을 바라보니 지는 해와 자기 사이에 커다란 녀석이 떡하니 서 있었다. 이서방은 누군가 하고 오른손을 들어 상대의 뒤에서 비치는 햇빛을 가리며 쳐다봤다. 상대는 바로

‘도, 도, 도, 도깨비!!!’

갑자기 도깨비를 본 이서방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다리만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이서방의 턱 아래 뭔가 날카로운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도깨비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었다. 이서방의 머리에서 땀줄기가 턱으로 흘러내려 도깨비의 손톱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서방은 얼어붙은 채 도깨비의 검은 눈동자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 이러다가 오늘 죽는 걸까?’

이서방은 순간 강에 쳐둔 그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내일 잡을 은어와 아들의 얼굴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과연~ 이러다 죽는 걸까?’

이서방이 생각하는 동안 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음”

그리고 다시

“음~”

날카로운 도깨비의 손톱은 도깨비의 머리카락 사이로 그그극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도깨비는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더듬더듬 말을 했다.

“야~ 너, 음……, 너 말이야…….”

도깨비의 머리가 갸우뚱 거릴 때 오른손의 손톱이 이서방의 목을 살짝 건드려버렸다. 그 순간 이서방은 꿀꺽 침을 삼켰다. 공포가 이서방을 엄습해왔다. 도깨비는 아까와는 달리 조금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는 대로만 말을 해라.”

‘도대체 뭘 말하라는 걸까?’

“왜. 저 위에 당집에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오지 않는거지?”

도깨비가 말하자

“네?! 아~, 그건 사또가 금지시켰답니다.”

“뭐 사또가? 이런 사또 놈이 감히”

이서방은 말을 하고도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이서방의 귀에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서방이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도깨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어느덧 동산에는 달이 떠 있었다. 이서방은 다리에 힘이 빠져 풀썩 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쿵~! 쿵~! 쿵~!”

숲속에서 갑자기 숲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어둠이 세상을 뒤덮은 후였지만 숲속에 있던 새들도 놀라 숲 위로 날아올랐다. 도깨비가 집으로 돌아가며 숲속에 보이는 것을 방망이를 휘둘러 부수고 있었다.

“사또 놈! 감히…….”

도깨비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으아아아아아~!”

도깨비의 고함 소리에 숲과 세상이 흔들렸다. 마을 사람들도 방문을 열고 달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도깨비가 지르는 소리와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 이 소리에 놀라 숲속에서는 도깨비 이외에 어느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은 밤이 되었다. 화가 난 도깨비였지만 사또를 곧바로 찾아갈 수는 없었다. 도깨비는 바위와 나무에 마구잡이로 방망이를 휘두르며 산길을 걸어올라갔다. 그로인해 숲에는 큰길이 생겨났다. 당나무에 도착한 도깨비는 돌로 된 상을 발로 밀어 부셔버렸다. 하지만 당나무와 당집은 건드리지 않았다. 언제나 다니던 길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부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자 다시

“으아아아아아~!”

숲이 흔들리도록 고함을 지를 후 도깨비는 문을 쾅하며 닫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숲속 모든 것이 숨을 죽이는 밤이 되었다. 도깨비는 방망이를 세워 그 위에 두 손을 올리고 그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려놓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도깨비는 한 발짝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많은 날이 지나서야 도깨비가 집밖으로 나왔다. 도깨비는 결심을 굳힌 얼굴이었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변함없이 숲을 울리고 있었다. 도깨비는 성큼성큼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걸어가는 곳에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고 도깨비가 지나간 후 다시 매미 소리가 들렸다. 도깨비는 자신이 지난번에 만들어 놓은 거대한 길과 공터를 지나서 마을로 내려갔다. 늦은 오후 도깨비의 외출은 숲속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도깨비는 이번 외출이 이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나긴 여행의 시작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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