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엉망이 된 굿판>
벽돌탑의 도깨비 - 8 <엉망이 된 굿판>
녀석은 길을 걸어가며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좀 전부터 녀석의 귀를 자극하는 풍물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어느 집에서 잔치하나?"
녀석은 풍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녀석의 발이 멈춘 곳은 마을 입구 초가였다. 싸리 울타리 너머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넋을 놓고 굿을 보고 있었다. 상위에는 음식을 잔득 차려놓고 무당은 칼을 휘두르며 굿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사람들을 헤치고 가까이 가서 보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이…….
"도. 도. 도. 도. 도깨비다~~~!!"
라고 외치며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한다. 도깨비가 풍물소리에 이끌려 굿하는 집으로 들어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담 안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굿을 하던 무당도 깜짝 놀라서 도깨비를 향해서 외치기 시작했다.
"휘~~물렀거라. 니가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났느냐?"
"휘~~물렀거라. 장군님께 비나이다. 여기 이 도깨비가……."
두 번 도깨비를 향해서 칼을 휘두르며 말을 외쳐봤지만 무당이 모시는 장군신이 물리치기에는 너무 무시무시하게 생긴 도깨비라는 것을 느꼈는지 말을 잇지를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도깨비는 성큼 성큼 음식이 차려져 있는 상 쪽으로 걸어가 상위로 뛰어올랐다. 도깨비가 상위에 올라서자 상이 우지직하며 부서졌다. 순간 도깨비는 발아래 부서진 상을 봤다. 그리고 이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깨비는 상이 부서진 그 자리에 그대로 웅크려 앉아 도토리묵을 시작으로 차려진 음식을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하여 덥석덥석 입으로 넣었다.
사람들은 도깨비가 상으로 올라서는 순간 도망치기 시작했다. 몇몇은 담을 넘어서 도망을 치고 그 중 하나는 멀쩡한 사립문을 부수고 도망쳤다. 싸리나무 울타리에 생긴 작은 개구멍으로 도망치다가 상투가 걸려 아등바등 거리는 자도 있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도망을 쳐버렸다.
그런 가운데 마당 한편에서 무당은 좀 전부터 혼자 입속으로 중얼 거리고 있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주문 외는 소리였다. 음식을 먹던 도깨비가 순간 휙하고 고개를 돌려 무당을 쳐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작은 주문소리가 도깨비의 귀를 자극한 것이다. 도깨비는 무당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빛이 번쩍하고 무당에게로 날아갔다. 무당은 갑자기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감싸고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곧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당의 입이 사라져버렸다. 도깨비가 무당의 입을 없애버렸다. 무당도 더 이상 마당에 있다가는 남아있는 목숨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무당은 집주인 가족을 향해 눈을 두 번 질끈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달아났다.
집주인은 멍석끝자리에 주저앉은 채 무당의 눈 움직임만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무당이
‘이서방, 미안해~’
하고는 도망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바로 이집 주인은 이서방이다. 이서방은 얼마 전 도깨비를 만난 후 혼이 나간 사람같이 행동을 했다. 그날 논두렁에 주저 앉아있는 것을 이웃 사람이 보고 업어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넋이 빠져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냈다. 밥도 먹지 않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도, 도, 도, 도, 깨, 비.”
정도였다.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네사람들이 찾아와 굿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다. 그리고 날을 잡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로 한 것이다.
길을 걷던 도깨비를 자극한 것은 풍물소리와 음식냄새였다.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집안에서 생각에만 잠겨있던 도깨비의 본능을 움직이게 한 것은 풍물소리와 음식만이 아니었다. 당집 앞 상에서 나던 향냄새와 좋아하는 도토리묵에 술 냄새까지 도깨비는 당집 앞에 차려놓은 음식을 즐기듯이 굿판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음식을 다 먹은 도깨비의 눈에 이서방이 들어왔다.
“어……, 음……, 안녕.”
도깨비는 웅크려 앉은 채 어설프게 이서방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작은 집의 서까래에 도깨비의 머리가 닿으며 지붕이 부서졌다. 도깨비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에 붙어있는 서까래 조각과 짚을 털어내고 사립문 쪽으로 나가려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이서방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서방은 무서운 도깨비가 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얼굴색이 바뀌었다. 가까이 다가온 도깨비는 들고 있던 방망이를 높이 쳐들었다. 이서방은 눈을 질끈 감으며 생각을 했다.
‘이제 죽는구나.’
이 모습을 울타리 쪽에서 보고 있던 한 사람이 도깨비와 이서방 사이로 뛰어들었다. 둘 사이에 뛰어들어 두 팔을 벌리고 이서방을 보호하려는 사람은 바로 이서방의 장난꾸러기 아들이었다. 돌이가 도깨비 앞에 두 팔을 벌리고 막고 섰지만 도깨비에 비하여 너무나 작았다. 도깨비가 치켜들고 있던 방망이를 쳐다보는 돌이의 눈빛은 아주 간절하고 강열했다.
돌이가 간절히
“우리 아버지 살려 주세요!”
라고 외치는 순간 도깨비는 쳐들고 있던 방망이를 내리쳤다. 이서방과 장난꾸러기 아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쿠~~~웅!”
하는 큰 소리가 들렸고 연기도 피어올랐다. 그리고 도깨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이름이 뭐니?”
돌이는 도깨비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자신의 양팔을 만졌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뒤를 돌아보니 이서방도 살아서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넌 이름이 뭐니?”
도깨비가 다시 한 번 이름을 재촉하자
“도, 도, 돌이에요.”
“도, 도, 돌이? 도도돌이?”
라고 도깨비가 이름을 되풀이하자
“아버지가 돌같이 튼튼하게 자라라고 돌이라고 지어주셨어요.”
라고 또박또박 대답을 하였다.
“음 좋은 이름이구나!”
도깨비는 방망이로 내리치면서 생겨난 것들을 묘하게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이 종은 아닌데……. 왜 이 종이 나왔지? 뭔가 이상해.”
그리고 나선 큰 목소리로
“이 종과 이것들은 선물이다. 너 가져. 집도 고치고……. 그리고 잘 먹었다.”
하며 머리를 끅적였다. 도깨비 옆에는 큰 종과 가마니와 반짝거리는 것들이 쌓여있었다. 도깨비는 선물을 남기고 사립문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부서진 상이랑 음식 값이다. 참 이것도”
도깨비가 사립문을 나서며 뒤로 종이뭉치를 휙 던졌다. 종이뭉치를 돌이 앞에 뚝하고 떨어졌다.
“종이 안에 약이 있어. 그걸 지금 니 애비에게 먹여 그럼 괜찮아질 꺼야.”
“잠깐만요! 갑자기 나타나서 이렇게 하면……. 너무 하잖아요. 미안하다고 사과정도는 해야지요. 뭔지 모르지만 선물, 그런걸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이녀석 봐라. 음……. 내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서툴러서 그래. 이해해주렴.”
잠시 둘 사이에 묘한 공기가 흘렀다.
“저……. 아직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돌이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도깨비에게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했다. 도깨비는 무척이나 난처해보였다.
“그래 미안. 됐지?”
“아뇨. 저한테만 하시면 안되요. 우리 가족들에게 해주세요. 정중하게…….”
“아~~. 이번 일은 미안합니다.”
하며 상체를 어설프게 숙이며 못이기는 척 도깨비는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다.
“자. 이제 됐지?”
“네! 사과 받아들일께요.”
도깨비는 소년을 한참 지긋이 바라봤다. 그러더니
“녀석……. 너 눈빛도 좋고 당당하니 좋다. 내가 니 소원하나 들어줄께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면 들어줄께.”
라고 도깨비가 말하자 돌이는 잠시 곰곰히 생각을 한 후에
“지금은 소원이 없어요. 소원이 생기면 그 때 이야기해도 되겠죠?”
“참!! 허허허 난감하네. 그래 그렇게 하렴. 그럼 이만…….”
그리곤 도깨비는 문을 나가 서쪽으로 걸어갔다. 도깨비가 문을 나서자 돌이는 순간 긴장감이 사라져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부엌에서 돌이 엄마가 뛰어나와 돌이와 이서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여보! 괜찮아요? 돌이야 다친 데는 없니?”
이서방과 돌이의 몸을 여기 저기 만지며 다친 곳이 없나 살폈다. 돌이의 외할머니도 구부러진 등을 지팡이로 지탱하며 이서방이 있는 곳으로 어렵게 걸어왔다. 오늘은 평소에 아파하던 무릎이 더욱 아픈 모양인지 조금 걷고는 무릎을 한 번씩 만지곤 했다.
“이서방! 괜찮은가?”
이서방 가까이 다가온 장모는 무릎에 신경을 쓰며 쪼그려 앉아 힘겹게 물었다.
“…….”
이서방이 여전히 정신이 없다.
“얘~ 애미야, 방금 그 약 좀 먹여봐라.”
돌이엄마는 도깨비가 던지고 간 종이뭉치 속에 있는 환약을 꺼내 이서방에게 먹였다. 약을 먹은 이서방은 눈빛이 좀 전과 달리 또렷해졌다.
“돌이야 넌 괜찮지?”
“네!”
돌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돌이네 외할머니는 절뚝거리며 먼저 종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 선녀가 새겨져 있네.”
종에 조각된 비천상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돌이의 어머니가 마당에 떨어져 있는 금덩어리를 주워 이로 물어 진짜인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진짜 금덩어리에요. 이제 우린 부자에요.”
돌이 어머니 이야기에 돌이 외할머니도 놀라 물었다.
“뭐라고?
“방금 도깨비가 주고 간 것이 금덩어리라고요. 여보! 이거 봐요. 돌이야! 이것 좀 봐.”
도깨비가 주고간 선물을 확인하러갔다. 그리고
“이게 뭐냐? 금이다! 금! 이제 우린 부자다.”
할머니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돌이 엄마는 돌이 할머니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방금 도깨비가 주고 간 것이 금덩어리라고. 아가! 이거 봐라. 돌이야! 이것 좀 봐.”
할머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돌이 엄마와 돌이에게 말을 걸었다. 돌이도 땅바닥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로 발을 옮겼다. 황금을 본 가족은 좀 전의 도깨비의 등장으로 가졌던 무서움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가족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때 무서움을 되살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목소리에 놀라 돌이는 담 밖을 쳐다봤다. 도깨비가 밖에서 돌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돌아왔지?’
공포가 다시 몰려왔다. 늦은 오후의 석양이 도깨비의 등 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돌이야! 그런데 목수는 어디 살고 있니?”
머리에 뿔까지 있고 오른쪽 입가로 송곳니가 삐죽 나온 무섭게 생긴 도깨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저쪽 길을 따라 가세요. 골짜기 입구. 골목이요. 길 따라 가다가 저 산 아래로 돌아가면 돼요. 끝집이에요.”
돌이가 손가락으로 골짜기를 가리켰다. 도깨비는 돌이가 가리킨 골짜기 쪽을 향했다. 돌이는 도깨비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돌이는 사립문 밖으로 뛰어가 도깨비에게
“도깨비 아저씨 오른쪽 작은 골짜기가 아니에요. 좀 더 가서 큰 골짜기로 들어가세요.”
라며 길을 알려주었다. 돌이의 목소리를 들은 도깨비가 돌아서서 돌이에게 말을 했다.
“그래! 혹시 날 만나고 싶으면 저 종을 치렴! 그럼 내가 갈께.”
돌이는 잠시 고개를 돌려 종을 바라봤다. 그리고 도깨비는 골짜기 쪽으로 사라졌다. 도깨비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돌이는 고개를 돌렸다. 순간 도깨비 집이 있는 당나무 거리 숲속에서 불길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연기는 하늘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