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빗속에서 대화
벽돌탑의 도깨비 9 <빗속에서의 대화>
무덥기가 낮과 마찬가지인 밤이었다. 검은 그림자는 사립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가 마당 가운데에서 헛기침을 했다.
“어흠……, 어흠…….”
헛기침 소리가 나자 곧
“이 늦은 시간에 밖에 누구시오?”
불이 켜진 방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으흠, 으흠”
마당에서는 다시 짧게 헛기침을 하며 방안에 있는 사람을 재촉했다. 그러자 문이 스르륵 열리며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구름에 보름달이 가리어서 마당이 잘 보이지 않자 방에서 나온 사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등을 들고 댓돌의 짚신을 천천히 신고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등불을 들고 있었지만 아직 마당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 달이 나타나자 사람의 두 배나 되는 도깨비가 마당 중심에 서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랄 법도 한데 이 남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서 온 누구신지……?”
도깨비는 그 물음에 답은 않고 잠시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밤하늘에 구름이 다시 달을 가렸다. 이번 구름은 엄청 큰 녀석이라 달을 천천히 삼키기 시작했다. 어둠이 마당을 슬슬 갉아먹어 밝은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둠은 도깨비의 강렬한 두 눈빛만 남기고 그의 몸을 스르륵 지워버렸고 잠시 후 마당과 집까지 모두 삼켜버렸다. 방안의 호롱불 때문에 방문과 마루일부까지는 어둠이 차지하지 못했다. 마당에는 등불을 들고 있는 목수의 당당한 모습만이 환하게 보였고 도깨비의 두 눈만이 번쩍였다.
울타리를 넘어서 반디불이 세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반디불이들은 곧 울타리 아래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드디어 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니가 새로 온 목수냐?”
말이 끝나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집을 감싸듯이 불며 지나갔다. 그 바람에는 비 냄새가 살짝 묻어있었다.
“그렇소만…….”
목수의 짧은 대답에 도깨비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니가 이 고을을 떠나라!”
도깨비의 중저음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집 주변 논에서 개굴 거리던 개구리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목수가 입을 떼었다.
“왜? 이 고을을 떠나야하오? 이유나 들어봅시다.”
도깨비의 눈빛이 목수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어둠속에서 길고 뾰쪽한 도깨비의 오른쪽 손톱이 목수의 턱밑으로 쭉 뻗어 나왔다.
“니가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도깨비가 목수의 목 아래에 날카로운 손톱 끝을 들이대고 불타는 눈빛으로 목수를 쳐다봤다. 이 도깨비의 외침에 세상이 다시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목수는 조금의 떨림도 없이 좀 전과 변함없이 서 있었다.
뚝~, 뚝~, 후두둑~
더위를 식혀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 대지에 비가 내리자 퍼석퍼석한 흙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둘은 꼼짝도 안하고 서있었다. 도깨비는 목수를 겁 줘서 쫓아버릴 생각이었지만 손톱을 들이대도 별 반응이 없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자 생각을 바꾸었다.
“니가 물건을 잘 만든다고 들었다. 그냥 이 고을을 떠나는 것은 너도 납득이 안될 것이니, 나랑 내기를 해서 이기는 쪽이 남고 지는 쪽이 이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하자.”
빗소리를 뚫고 도깨비의 말이 목수의 귀에 전해졌다. 도깨비가 눈을 깜빡이자 어둠속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빗방울이 굵어지자 목수가 들고 있던 등불이 꺼져버렸다. 둘은 어둠속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서있었다. 빗방울이 목수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데~~~엥”
하고 빗소리를 뚫고 먼 곳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도깨비의 눈빛이 종소리가 난 쪽으로 휙 하고 움직였다. 도깨비는 이 비가 곧 그칠 비가 아니라는 것과 목수가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들린 종소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당장 결판을 낼 수 없다는 생각에 도깨비는 시간과 장소를 말하였다.
“사흘 후 동산에 달이 오를 때 법흥사 벽돌탑에서 보자.”
어둠 저편에서 말소리가 들려온 후, 도깨비의 눈빛이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방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이 조용히 마루를 밝히고 있었다.
도깨비는 어두운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논을 가로지르며 종소리가 들린 곳으로 무서운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