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1

하나의 운명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1


하나의 운명



<행복을 부셔버린 종소리>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사내가 장터를 헤치며 걷고 있었다. 입가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바람이 일며 좋은 향기가 그를 뒤따랐다. 장터의 사람들은 그가 스쳐 지나가면 하나같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준수한 외모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물에 씻고 좋은 향를 쓰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니 그가 지나가면 그 향기때문에 장터 사람들의 코도 저절로 그를 향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큰 부자로 인근에서 그 집 땅을 밟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의 할아버지가 몇해전 죽자 그의 아버지가 어마어마한 재산을 전부 물러받았고 그후 더욱 경영에 힘 써 재산이 나날이 늘어났다. 그도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혼례를 치룰 계획이었으나 갑자기 할아버지가 죽어 어쩔 수 없이 삼년상을 끝내고 약조를 해둔 미모의 양가집 규수와 혼례를 치뤘다. 그리고 다음 해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는 아들의 첫돌을 하루 앞에 두고 돌잔치 준비를 위해 장터에 나와있었다. 헌데 잘생긴 그의 얼굴에 근심이 살짝 서려있었다.


장터에 들어설 때 길가에 앉아있던 백발의 노인이 ‘점을 봐주겠다.’ 하여 아들의 사주와 자신의 사주를 넣었다. 노인은 둘의 사주를 보더니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고 "쯔쯔쯔" 거리며 혀만 차고 말을 해주지 않았다.

"이보시오. 노인장. 사주가 좋지 않소? 자세히 말을 해주시오."라고 하니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는 얻으나, 말을 하면 모두 잃게 되네. 자네라면 듣겠는가? 아니듣겠는가?"라고 말하며 사내의 눈을 깊숙히 쳐다봤다.

노인의 눈은 깊이를 알수 없는 묘한 눈이었다. 사내는 노인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노인의 목소리가 사내의 귀에 들려왔다.

"여기 부적을 하나 줄테니 잘 가지고 있으면 분명 쓸일이 있을 것이네."

하며 노란 종이를 꺼내 붉은 색 먹으로 부적을 써내려갔다. 헌데 부적이 사내에게는 부적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가 장난 하듯이 마치 닭을 한마리 그려놓았다. 그걸 댕충 꾸껴서 사내의 손에 쥐여줬다.

"허참!! 실없는 노인일쎄. 돈이 궁하면 구걸을 할 것이지. 보지도 못하는 사주를 본다며 엉터리를 말하다니……. 옛소. 이 돈으로 국밥이나 사먹으시오."라며 사내는 저화(조선시대 동전)을 던져주었다. 돈이 노인의 무릎앞에 떨어졌다. 사내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노인의 눈빛이 기분 나빠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다. 사내가 몸을 돌리는 순간 노인이 사내의 등에 대고

"이 모든 일은 자네 할애비의 또다른 아들때문에 생긴 일일쎄. 그리고 다...... 모든 것이 업인 것을 어떻하겠나? 괴로움이 많겠지만 견디어내시게 한평생 그 업을 지고 살아야할 걸쎄. 혹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면 삼각산으로 오게. 내가 그곳에 있으니......"

"이런 퇫!"사내는 옆으로 침을 뱉고,

'망할 놈의 노인네. 재수없게. 말이 너무 지나치군.'하고 사내는 노인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어 노인이 있는 뒤를 돌아봤다.

'어?'

노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내는 노인의 말이 신경이 쓰여 몇번이나 되내어 생각해봤다.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를 얻으나, 말을 하면 모두 잃게된다. 무슨 뜻일까?'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었다. 생각을 하는 사이 눈에 이쁜 노리개가 하나 들어왔다.

'애기 엄마에게 어울리겠는데, 이걸 선물로 해야겠다.'하며 노리개를 손에 잡고 저화를 건넸다. 그리고 노리개를 도포 소매로 넣으려는 순간 멀리서 "뎅~~~~"하고 길게 한번 종소리가 들려왔다. 묘한 종소리에 장터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들 돌렸다. 그리고 곧 소리가 난 쪽 하늘에서 벼락이 쳤다. 소리는 천지를 진동시켰다.

"쩌저정, 꾸궁, 쾅꾸르륵!"

무척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벼락은 한번이 아닌 수차례 내리쳤고 장터 차일(천막)사이 하늘로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사내의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내의 집 쪽에 벼락이 떨어졌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여간 마음이 쓰였다. 순간 노인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불길한 기분이 사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내는 달리기 시작했다. 10리거리에 떨어진 집으로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는 사이 옹알이를 하던 아들과 아이를 안고 있는 부인의 얼굴이 스쳤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우리집이 아닐꺼야.'

사내가 대문을 나설 때 웃으며 잘 다녀오라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를 것이 있다며 톱이 어디 있냐고 어머니를 불러 이야기를 주고 받던 것이 양친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제발, 제발'

"쿠구구궁, 쿠궁"

건물이 부서지고 뭔가가 땅을 내리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사내는 더욱 불안해졌다. 갓은 머리에서 벗겨져 뒤로 떨어졌고 아기 엄마가 아침에 챙겨준 가죽신도 발에서 떨어져나가버렸다.

"망할 놈의 노인, 망할 놈의 노인."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눈에선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 때 사내의 옆을 스쳐가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생긴 남자가 자신을 보고 씨익하고 웃으며 지나쳐갔다. 사내는 뭔가를 잘 못 본 것이 아닌가했지만 그 남자에게 계속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눈앞에 집이 보였다.


사내는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눈에 시체들이 들어왔다. 온몸은 뭉개져있고 피가 사방에 튀어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아마도 쇠몽둥이 같은 것에 맞아죽은 듯했다. 그리고 고래등 같이 큰집이 산산히 부서져 온전한 곳이 없었다. 사방이 오물로 냄새가 지독해 코를 잡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오물이 어디서 온 것인지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벼락이 떨어질 때 이곳에 사내가 있었다면 그도 목숨을 부지 못하고 온몸이 뭉개졌을 것이다. 사내는 노인이 한 말을 중얼거렸다.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는 얻으나, 말을 하면 모두 잃는다. 내가 왔으면 나도 죽었다는 소리군."라고 말할 때 그의 눈에 자신의 아비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사내는 아비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짓기 시작했다.

"누구냐? 누구냐고? 왜? 우리 아버지를.... 왜? 우리 어머니를...... 어떤 놈들이냐고?"

사내는 몸을 일으켜 사방으로 다니며 살폈다. 자신의 어미와 아내 그리고 아들을 찾으려고 움직였다. 한쪽에 세사람의 시신이 보였다. 무엇인가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두 여인은 꼭 안은채 죽어있었고 그 사이에 아이도 죽어 있었다.

사내는 그 시신들 앞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쏟으며 울부짖었다.


사내는 이 일들과 자신의 삼촌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내는 죽은 아내의 손을 펴 자신의 볼에 가져가려했다. 아내의 손에는 아직 따뜻함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손에 털이 한움큼 잡혀있었다.

'이건 사람의 털이 아니야? 무슨 짐승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때 대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사내는 뒤를 돌아봤다. 황급히 뛰어들어오는 사람이 자신을 잡고 흔들었다. 사내는 10리를 쉬지 않고 달려온 후 너무 강한 충격을 받아 정신이 혼미해졌고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그의 입에서

"작은 아버지."라는 말이 마지막으로 튀어나왔다.

"그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이게 무슨일이야? 대답을 하여라."라고 대문으로 들어온 사내의 삼촌이 그를 흔들며 물었지만 사내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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