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2

혼란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2<혼란>

사내는 악몽에서 깨어나 듯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그리고

“물! 물!”

하고 물을 찾았지만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방이었으면 아내가 대답을 해줬을 것이다. 사내의 눈에 가늘고 오래된 서까래가 드러난 천정이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라고 생각하며 사내는 주위를 둘러봤다. 굵은 나무 창살이 쳐져있는 감옥 속이었다. 창살 밖으로는 높다란 담장이 쌓여있었다. 사내는 아직 나쁜 악몽 속인 것 같았다.

'내가 왜 옥에 갇혀있지? 음…….'

순간 기억의 한 끄트머리가 확 열리면서 정신을 잃기 전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화창한 날씨, 집을 나서면서 인사를 나눈 자상한 아버지, 화장을 꼽게 한 어머니, 그리고 돌을 앞에 둔 아들과 선녀 같은 부인, 장터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좋은 눈빛, 장터에서 만난 괴 노인, 괴 노인의 이야기들이 귀에 윙윙 울린다. 손에 잡았던 노리개 값을 치르고 도포자락에 넣는 순간 벼락이 치고 사내는 달리기 시작한다. 대문 밖에서 스친 자신과 같은 옷을 입은 사내, 그리고 박살이 난 집, 뭉개진 시체, 아버지의 손, 손에 꼭 죄어있던 털, 오열과 터져 나오는 고함, 가족들, 좁아지는 시야, 자신에게 다가오는 갓을 쓴 사람,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사람, 그 사람의 얼굴은 사내의 작은 아버지, 계속해서 물어오는 작은 아버지의 물음들.'

사내의 정신이 확 돌아왔다. 입으로 긴 숨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사내는 두 손으로 바닥의 지푸라기를 움켜잡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곧 그는 자신의 양손이 쇠사슬에 묶여있는 것을 알았다. 다시 돌아보니 양 발목에도 쇠사슬이 묶여있었다. 양손을 들어 묶인 손을 보며 상황을 확인했다. 갓도 도포도 사라지고 바지와 저고리만 입고 버선발이었다. 그러는 동안 담장 밖에서 옥을 지키던 나졸(포도청에는 포졸이 있고 지방에는 나졸이 있다.) 하나가 인기척을 듣고 확인 차 담장 안으로 들어와 사내를 살폈다.

"저 치, 깨어났는데, 자네가 관아에 가서 깨어났다고 보고하고 와."

하며 눈으론 사내를 보고 그리고 입은 담장 밖을 향하게 비딱하게 틀어 다른 나졸과 이야기를 나눈다.

"형님! 나 혼자 갔다 와도 괜찮겠소? 나 없는 동안 창살 가까이 가지마소. 저놈 아주 흉악한 놈이니 혹여나 가까이 가지마소."

라며 담장 밖의 다른 나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확인을 끝낸 나졸은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담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졸 둘은 담장 밖에서 소곤소곤 거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그리고 어린 나졸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흉악한 놈?'

하며 사내는 주위를 둘러봤다. 창살 안에는 사내 한 사람뿐이었다.

'내가 흉악한 놈? 참 작은 아버진?'

라고 생각하곤 이렇게 있을 것이 아니다싶어 큰 소리를 내어

"이보시오. 이보시오. 내가 왜 여기 있소?"

라고 사내는 나졸에게 말을 걸었다.

"죄인은 조용하시오. 시간이 되면 관아에서 취조할 것이니 나에게 묻지 마시오."

라고 나졸은 담장 밖에서 얼굴도 보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수차례 말을 걸었지만 단 한마디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관아에 보고하러 갔던 나졸이 몇몇을 더 데리고 돌아왔는지 밖이 웅성웅성 거렸다. 그리곤 곧 나졸들이 하나 둘 담장 안으로 들어왔다.

"죄인은 벽에 붙어 서이오. 어서 일어나 벽을 보고 돌아서시오."

목청 좋은 놈이 외쳤다.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향해 돌아섰다. 갑자기 창살 사이로 기다란 봉이 날아들어 사내의 뒷목을 눌렀다. 사내의 입술이 벽에 닿으며 돌담의 차가운 기운이 피부로 느껴졌다. 몇 개의 봉이 더 날아들었다. 끝이 갈라진 지게 작대 윗부분 같은 모양의 것(Y자 모양)도 있었다. 그걸로 땅꾼이 뱀의 목을 누르듯 나졸들은 사내의 목과 사지를 눌렀다.

"내, 이러면 됀다 했지?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이러면 꼼짝을 못하지. 자넨 문 열고 들어가서 저놈 목에 오라를 걸게. 그리고 자넨 다리를 더 눌러. 거기 놈의 양손을 잡아 칼을 씌우게."

나졸들은 능수능란하진 않았지만 촌아이들이 독사를 잡아 망태기에 쑤셔 넣듯이 협동하여 사내에게 칼을 씌웠다. 나졸들의 손은 무척 거칠었다. 사내는 숨이 막혀 겨우 코로 숨을 쉬며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옥 밖으로 끌려나왔다. 손과 팔에는 쇠사슬이 묶어있고 거기에 칼까지 덮어쓴 상태였다. 사내는 나졸들의 오랏줄에 이끌려 관아로 끌려갔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늘 봐오던 낯익은 거리였다. 다만 평소와 다른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경멸에 찬 눈빛을 본 사내는 곧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뭔가 이상해. 모두 왜? 날 죄인이라고 하지? 아무도 대답을 해주질 않아? 그리고 작은 아버진 어디 계시지? 누가 우리 집을 이렇게 만든 거야? 집안에 대역 죄인이라도 나온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우리처가도 그럴 집이 아니고 외가 집도 그럴 곳이 아니야. 그럼 작은 아버지가?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돌이 날아들었다.

돌은 사내의 관자놀이 위에 정확하게 꽂혔다. 띵~하는 느낌이 들고 순간 고통보다 멍한 느낌이 들었다. 사내는 칼을 쓴 채 고개를 돌려 돌을 던진 사람을 바라봤다. 돌을 던진 것은 동네 꼬맹이들이었다. 돌을 던진 녀석의 눈에서 강한 경멸의 눈이 사내에게로 쏟아졌다. 사내도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둘이 눈을 맞추고 있는데 오랏줄이 휙 하고 사내를 당겼다. 사내는 줄에 이끌려 몸을 비틀거리며 다시 끌려갔다. 머리에서 뜨거운 피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사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졸들은 아이들과 구경꾼들을 쫓아주었다.

구경꾼 사이에는 사내가 자주 가던 주막의 주모와 그곳에 드나들던 시정잡배들도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도련님, 도련님 하며 술 한 사발 얻어먹으려고 사내에게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하던 자들이었건만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그리고 사내의 눈빛이 더러운지 피해버렸다. 사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피가 뜨겁게 뺨을 타고 흘렀고 돌을 맞는 곳에서 맥박이 느껴졌다. 아프지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서럽고 뭔지 알 수없는 나약함에 사내는 서서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잡혀있는지도 모르며 사람들의 눈빛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모가 죽고 대대로 살던 집이 박살이 났지만 사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잡혀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사내는 피해자인데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힘으로만 자신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순간 누군가가 사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사내가 고개들 돌려 상처를 만져주는 사람을 바라봤다. 나졸 하나가 땅바닥에 흙을 한 움큼 집어와 상처에 문질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나졸의 눈빛 어디에도 자비가 있지는 않았다. 단지 붉은 피가 계속 흐르는 것이 보기 싫어 마른 흙을 발라준 것뿐이다. 사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쇠사슬을 끌며 나졸들이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누가 봐도 이 사내가 장터에서 향기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부러움과 이목을 한 번에 끌고 다니던 그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아까부터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사건이 있던 날 같은 옷을 입고 사내와 스쳐지나간 남자였다.

사내는 관아 마당에 칼을 쓴 채 꿇어앉아있다. 사방에 나졸들이 도열하고 마루 위에 사또가 눈을 부라리며 사내를 쳐다보았다.

"네 이놈. 니 놈의 소행을 이미 알고 있다. 하나 빠뜨리지 말고 이실직고 하렸다."

라고 하자 급창이라는 관아의 노비가 사또의 말을 목소리를 몇 배나 높여 외쳤다. 사내는 고개를 숙인 채

"사또! 무엇을 이야기 하오리까?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니 가족이 죽어있고 집은 부서져있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이놈. 니 놈이 어찌 사실을 바른대로 말하지 않고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여봐라. 저놈에게서 칼을 풀고 곤장을 준비 하여라. 바른 말을 할 때까지 매우 쳐라. 그리고 증인을 데리고 오도록 하여라."

사또의 말이 떨어지자 나졸들이 몰려들어 사내의 몸에서 칼을 떼어내고 곤장 틀에 사내를 눕혔다. 그리고 사또의 지시에 따라 사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몇 대 치자 사내의 다리 살갗이 터지고 바지에 피가 베어들었다. 사내의 입에서는 고통을 따르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증인을 데려왔습니다."

라고 나졸이 사또에게 고하고 증인들에게 앉을 자리를 알려주었다. 그에 따라 두 사람은 사또를 향해 절을 하고 곤장 틀 옆에 꿇어앉았다.

"증인이 셋이라 하지 않았나?"

라고 사또가 말하자 증인을 데려온 나졸이

"네, 사또. 하나는 아직 도착을 못했습니다. 기별이 늦어 곧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라고 고개를 조아리며 사또를 향해 대답했다. 사또는 사내를 가리키며 증인들에게

"자아. 증인들은 대답하라. 저자가 확실한가?"

사또가 말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네. 사또. 분명 저자입니다."

라고 입을 모았다. 사내는 증인이 누군가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옆에서 꿇어앉아 사또를 바라보는 증인은 사내의 집에서 얼마 전 물건을 훔치고 도망갔다 잡혀 광(창고)에 가두어둔 노비 ‘실거니’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안살림을 돕던 여종인 ‘간난이’었다.

'어? 간난이 넌 살아있었구나. 그런데 니가……? 어떻게 된 거야? 이들이 날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내가 범인으로 몰려. 아니 지금 사또에게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면 나도 죽고 부모님의 억울함도 밝힐 길이 없어.'

사내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사또를 바라보며

"사또, 저들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번 일에 대해서 전 잘 알지 못합니다. 전 다음날이 아들의 돌이라 돌잔치 장보기를 하러 장에 갔었습니다. 장보기를 하고 있는데 집 쪽에서 벼락이 치고 큰소리가 들려 집으로 달려와 보니 우리 부모님과 사람들이 죽어있었고 집은 무셔져있었습니다. 전 이 이상도 이 이하도 모릅니다."

사내는 사건이 있던 날 겪은 일을 말하였다. 마지막 부모의 이야기 때는 울먹여가며 소호했다. 하지만

"네 이놈, 요괴를 조종해서 부모를 죽이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네가 그 때 장에 갔다고 하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지 않느냐? 네 죽은 애비와 네가 얼마 전 집 뒤안에서 크게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본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네 애비는 재산을 아끼고 모으는 사람으로 유명하더구나 하지만 네놈은 기생 놀음이 심하여 집에 재산을 흥청망청 쓰고 있었다던데 그리고 네 부모가 죽으면 부모의 재산이 모두 네놈에게로 상속되는 것은 뻔 한 일이니 네놈이 보기에는 누가 범인이겠느냐? 이상한 사술을 부려 부모를 죽이고 그 재산을 노리는 천륜을 저버린 놈."

라고 사또가 추궁하는 것을 들으며 사내는

'뭔 요괴? 조종? 장에 갔던 증인? 노인이 있지. 그리고 나에게 노리개를 판 사람도 날 기억할지 몰라. 참 노리개가 있지. 내 도포 소매에 있는데. 내 도포는 어디 갔지? 아버지께 꾸중을 들을 때 저 도망간 종놈이 우릴 훔쳐봤는데 저놈이 한 소리군. 그런데 간난이는 왜 저기 앉아 있는 거야?'

"사또, 억울합니다. 제 옆에 이놈은 일전에 우리 집 물건을 훔쳐 달아난 자입니다. 그것을 잡아 광에 가두어두었는데……. 저놈이 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자기의 죄를 숨기려는 것입니다."

라고 사내가 말했다. 그 때

"사또!"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에게는 낯익은 목소리였다. 사내가 목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사내의 작은 아버지가 서 있었다. 세상에서 지금같이 사내에게 작은 아버지가 반가울 때가 있었을까? 사내는

"작은 아버지~"

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살았구나. 어디 계시다가 이제 오셨어요?'

사내는 긴장감이 풀렸다. 사내의 삼촌이 성큼성큼 사내의 옆으로 걸어왔다. 둘의 거리가 좁아짐에 따라 사내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쏟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사내의 작은 아버지는 사내의 옆에 와서 사또를 향해 예를 표하고 입을 열었다.

"사또, 이놈이 범인입니다."

'뭐 내가 범인이라고? 작은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잘 못 말씀하신 거죠? 다시 제대로 말씀해주세요.'

라고 생각하며 작은 아버지를 돌아봤다. 황당함에 사내의 동공은 커졌고 심장의 고동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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