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3

도망자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3 <도망자>


사내는 며칠사이 벌어진 일들이 모두 꿈같았다. 아니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꿈이 될 수 없었다. 매우 냉혹했다. 사내의 손발은 쇠사슬에 묶여있고 몸은 창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면 고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당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곳에 효수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천륜을 저버리고 기묘한 사술을 부려 부모를 포함한 많은 사람을 죽인 사내를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이 사또의 뜻이다.

사내의 머릿속은 많은 생각으로 뒤엉켜있었다.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을 하나하나 되살려 내고 얽히고설킨 것은 풀어보려고 했지만 사태가 파악되지 않았으며 해결책이 없는 생각들만 난무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끝은 언제나 ‘이놈이 범인입니다.’하고 말하던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와 얼굴에서 멈췄다. 사내의 기억 속 작은 아버지와 사또의 말들이 사내를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증오에 찬 증인들과 명확한 증언들이 사내를 괴롭혔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내의 모습은 어찌 보면 멍하니 창살을 바라보는 것 같고 달리 보면 몰두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졸들이 간혹 한 번씩 옥 안을 살폈다. 그들의 눈에는 사내가 반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저놈은 영 기분이 나뻐. 요술을 부려서 사람을 죽인데잖아.”

라고 나졸 하나가 감옥 밖 담벼락에 기대서 말했다.

“형님, 죽은 후에야 저놈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흉악무도한 놈이지만 며칠 후면 끝장이 납니다.”

라고 다른 나졸이 말을 받았다. 담 밖에서 들이는 둘의 대화가 사내의 귀에는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사내의 의식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에 갇혀있었다.

“뎅, 뎅, 뎅”

하는 작은 종소리가 담 넘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곧

“거기 누구냐?”

“엉? 으아아, 괴물이다.”

나졸들의 말소리에 이어 둔탁한 소리가 퍽 하고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 쓰러져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들이 사내의 정신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사내는 창살 밖 담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담이 끝나는 곳에 쓰러진 나졸의 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땅바닥에는 나졸의 그림자를 덮치려는 사람보다 두 배나 큰 그림자가 보였다.

“살려주시오. 제발.”

하는 나졸의 간절한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거대한 그림자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몽둥이가 나졸의 그림자를 스치듯 지나가자 나졸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담이 끝나는 부분에 그림자였던 나졸은 그림자 밖으로 쓰러지며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와 주변의 땅을 적셨다. 곧 종소리가 작게 한번 들렸다. 나졸을 죽인 큰 그림자가 순간 땅바닥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하나의 그림자가 담 저쪽에서 감옥을 향해 걸어왔다. 잠시 허리를 굽혀 나졸의 시체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림자였던 존재는 담이 끝나는 부분에 다다르자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다. 앞모습은 그늘이 져서 사내가 알아볼 수 없었다. 그자가 창살 앞에 서자 그림자 속에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자는 취발이탈을 쓰고 탈 뒤에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성큼성큼 다가온 취발이탈은 나졸의 허리춤에서 가져온 열쇠로 감옥의 문을 열며

“도망치면 살 수 있을 것이다. 머뭇거리지 마라. 만의 하나 과거에 미련을 가지고 집 주변을 기웃거리면 잡혀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열쇠 뭉치를 창살 안으로 던져 넣었다. 사내가 그 열쇠뭉치를 받아 손발의 쇠사슬을 푸는 동안 취발이탈은 담 밖으로 사라졌다.

사내는 옥을 뛰쳐나와 담 밖으로 나갔다. 두 명의 나졸이 쓰러져있었다. 둘은 몽둥이에 맞아 즉사했다. 머리에서 계속 피가 흘렀다. 나졸 옆에는 요상한 문양이 많이 들어간 빛바랜 낡은 부채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사내는 요상한 문양이 인상적이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낡은 부채를 유심히 봤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내는 경황이 없었지만 달리며 생각을 해보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사내가 입고 있었던 옷이 며칠 전 자신의 옷과 비슷하다는 것과 목소리도 자신의 목소리와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사내가 뛰어가자 죽은 나졸들 옆에 떨어져 있던 부채가 흔들리며 떨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도포를 입은 남자의 손이 순간 그 부채를 덥석 잡아 도포의 소매 자락에 집어넣었다.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굴을 취발이 탈로 가리고 있었다. 남자는 취발이 탈을 벗어 자신의 도포 소매 자락에 넣었다. 소매 자락보다 큰 취발이 탈은 빨려 들어가듯이 소매 자락 속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며칠 전 사내가 집 앞에서 스쳐 지나친 그였다. 그리고 사내가 옥에서 관아로 끌려갈 때 멀리서 그를 바라보던 남자였다. 사내와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남자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나졸들의 시체에 가루를 뿌리고 그곳을 떠나갔다. 남자의 가루가 시체에 떨어지자 시체의 곳곳이 녹아내리고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내는 산속에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낮부터 어수선한 고을은 날이 어두워지자 횃불을 든 나졸들이 무리를 지어 고을을 이쪽저쪽으로 들쑤시며 돌아다녔다. 취발이 탈의 남자가 나졸들을 죽였지만 관아에서는 사내가 탈출하며 나졸들에게 사술을 부려 죽인 것으로 여겼다. 부모와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사술을 써서 죽이고 나라 일을 하는 나졸까지 요술을 써서 죽인 중죄를 누명을 덮어쓴 것이다. 사내는 멀리 도망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두워지자 사내는 산을 내려와 간난이의 집을 향했다. 간난이는 사내의 집 안 일을 돕는 노비인데 사내의 집 가까이 초가에 살고 있었다. 얼마 전 홀어머니가 돌아가셔 혼자 살고 있었다. 사내는 몸을 낮추고 간나이의 집 나뭇가지로 만든 낮은 담을 따라 움직여 사립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집 벽에 붙었다.

“간난아~. 간난아~.”

하고 사내가 불렀지만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방 안에 불이 켜있는 것으로 봐서는 사람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댓돌 위를 봤다. 짚신이 두 켤레 놓여있었다.

‘분명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사내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이 잠겨있었다.

“간난아. 이야기 좀 하자. 내가 그런 것이 아니야. 누명이 썼어. 제발.”

사내는 간난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방 안에서는 아마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내는 문풍지를 뚫고 손을 넣어 문고리 옆 문살을 두어 개 무수고 문고리를 잡았다. 순간 방문 안에서 누군가가 사내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사내는 순간 손을 급하게 빼려고 했지만 방안에서 잡고 있는 힘이 강해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칼 가지고 온나. 빨리 부엌 가서 칼 가지고 와. 이놈의 손모가지를 잘라 버려야 한다.”

방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자신의 손목을 자른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빼려고 했지만 문 반대쪽에서도 죽기 살기로 손목을 잡고 있었다. 잠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방 안에서

“간난아. 그것 말고 칼을 가져오라니까.”

하는 방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방안에 간난이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사내는

“간난아. 칼을 주면 안돼.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니?”

하고 문밖에 애원하듯 외쳤다. 순간 손등이 불에 대인 것같이 뜨거웠다.

“으아아~~.”

사내의 손등에 무엇인가 날카로운 것이 박혔다. 아픔에 손을 당기자 더 큰 아픔이 문 밖으로 전해졌다. 곧이어 방 안에서 망치 소리와 그 충격이 손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손에 박힌 것을 더욱 깊이 박았다. 사내는 참을 수 없어 비명을 질러 댔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 간난아! 이리와. 관아에 알려야해.”

라는 말소리가 방안에서 들렸고 곧 부엌으로 연결된 문으로 그들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사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그제야 알았다. 사내는 실거니였다.


실거니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아기가 죽은 것 같아 아기를 광주리에 넣어 시렁 위에 올려놓고 산모를 챙겼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살아났다. 그리고 아기의 부모는 시렁 위에서 살아났다고 해서 아기를 '시렁'이라고 불렀는데 사람들이 그런 '시렁'이를 실거니라고 불렀다. 사내와 실거니 그리고 간난이는 모두 같은 또래이다. 어린 시절엔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나이가 들고 나서 실거니는 사내를 멀리했다. 간난이와는 오누이같이 지내왔다.


순간 사내는 그들 둘이 같이 증언을 했던 것과 밤에 한 방에 둘이 같이 있는 것에서 둘 사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이 부엌을 통해 사립문으로 빠져나갔다. 실거니는 사내보다 늘 힘이 좋았지만 사술을 부린다는 소문이 있는 사내에게 달려들기보다는 일단 자리를 피해 관아에 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둘이 집을 빠져나가자 사내는 문살을 부수고 왼손을 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오른손 손등을 만져보고서 손등에 꽂혀있는 것이 꼬챙이라는 것을 알았다. 꼬챙이가 손등을 뚫고 나무 문틀에 깊이 박혀있었다. 사내는 어금니를 물고 고통을 참으며 꼬챙이를 밀었다. 꼬챙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통으로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졸들이 간난이의 집으로 횃불을 들고 들이닥쳤다. 군교(지방관아에서 군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낮은 벼슬아치)의 눈짓에 나졸 몇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문틀에는 피가 낭자했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라고 나졸 중 하나가 마당을 향해 외쳤다.

군교의 손짓에 따라 나졸 몇몇은 뒤뜰로 가고 몇몇은 이웃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은 창으로 초가지붕을 쑤시기 시작했다.

"여긴 없는 듯합니다."

군교와 친해 보이는 나졸 하나가 말하자. 군교가 고개를 천천히 끄떡였다.

사내가 이미 그 곳을 빠져나간 뒤였다. 나졸 하나가

"핏자국입니다. 저쪽입니다."

라며 휏불로 마당을 비춘 후 마당 밖을 가리켰다.

사내가 피를 흘린 흔적을 따라 나졸 무리는 마당 밖으로 사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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