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공격
벽돌탑의 도깨비 - 4 <의외의 공격> 얼마를 달렸을까? 사내는 간난이의 집을 빠져나와 쉬지 않고 달렸다. 지쳐 더 이상 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달리는 동안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를 생각하려고 집중해 보았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요 며칠 사이의 일들 때문에 자신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미 산길을 잃은 지 한참이 지났다.
숨을 돌리기 위해 잠시 돌아서 산 아래를 살폈다. 횃불들이 계속해서 사내를 따라오고 있었다. 손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간난이의 방에 있던 헝겊으로 손에 난 상처를 대충 싸매었지만 상처가 깊어 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나졸들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
사내는 한참을 달렸다. 큰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길손들이 근처에 있는 돌을 올려놓고 안전과 소원을 비는 곳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갈림길이 있었다. 한쪽으로는 나름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이고 다른 한쪽은 동물들이나 다닐 것 같은 작은 길이었다. 사내가 큰길로 향하는 순간 눈앞에 도깨비 두놈이 서있었다.
“드디어 왔네.”
“말대로 길목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군.”
이라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한 녀석이 냅다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사내는 말 한마디 할 시간도 없는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녀석은 사내의 멱살을 잡아 사내를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사내는 날아가 땅바닥을 뒹구른 후에 나무에 가 부딪혔다. 이내 다른 도깨비가 사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사내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달려오는 도깨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달려온 도깨비가 사내의 배를 힘껏 걷어차버렸다. 사내가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몸은 공중으로 떠올라 한참 떨어진 소나무 줄기에 가 부딪쳤다. 그리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 입에서 투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몇 번을 토하자 몸이 축 늘어졌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부딪힐 때 잘 못 물어서 그런지 입술이 터져 입에서도 피가 흘렀다.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 으~~, 으~” 도깨비가 다가와 빨간 눈으로 사내를 내려다봤다. 사내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도깨비 한 녀석이 발로 사내의 몸을 슬쩍 뒤집으며 “지 부모랑 똑같은 소리를 내는 군. 으흐흐흐흐. 자네도 들었지?”
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다른 도깨비에게 물었다. “들었지. 이런 소리였어. 으, 으~~, 으~~, 으~. 맞지? 내가 똑같이 낼 수 있다니까. 크크크크크” 도깨비의 웃음소리가 밤공기를 뚫고 울려나갔다. “아~~으~~아~~”하는 신음소리가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내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존재가 이 도깨비들이라는 것을 알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입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사내의 입에서는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 사내는 손가락에 힘을 넣어 땅을 긁었다. 그리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 조용해졌다. “이거 벌써 죽은 거 아니지? 아직 덜 놀았는데.”
하며 사내의 팔을 잡아 올리며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누가 찰 때 죽는지 내기할까? 크크크크”
하고 도깨비 둘이 사내를 놓고 내기를 하자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규칙을 정하자. 그리고 내기며 뭘 내기하는 거지?”
라며 둘이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돌무더기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냉큼 끝내거라. 이제 곧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도깨비들은 돌무더기 쪽에 서 있는 목소리의 존재에게 대답을 한 후 둘이서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한참 재밌어지려 했는데…….”
“니놈이 늘 문제야?”
“내가 왜 문제야? 니놈이 문제지?”
둘은 뜻도 없는 농지꺼리를 주고받으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이놈 이거 죽은 것 같은데요.”
도깨비 한놈이 목소리의 존재에게 말하자 다른 도깨비가
“아직 죽지는 않았어. 축 늘어져있는 것뿐이야. 뭐 죽은 거나 다름없지만…….”
“이놈 죽일까요? 그냥 둘까요? 그냥 둬도 죽을 것 같은데요.”
라며 둘은 사내를 두고 웅크려 앉아 손으로 슬쩍슬쩍 몸을 뒤집어가며 목소리의 존재에게 이야기를 했다.
“짐승에게 당한 것처럼 죽여라. 이제 머지않아 노졸들이 근처까지 올 거다. 시간이 없다.”
목소리의 재촉에 도깨비들은
“니가 세워눠. 내가 그럼 세게 집어 찰께. 그럼 죽을 꺼야.”
“이거 축 늘어져서 서질 않아. 내가 잡고 있을께.”
한놈이 사내를 잡고 다른 한놈이 뒤로 물러나 사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깨비의 강하게 사내를 걷어차면서 다른 도깨비마저 걷어차버렸다. 사내는 계곡 쪽으로 날아가버렸고 도깨비도 계곡 비탈 근처에 처박혔다. 걷어 차인 도깨비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걷어찬 도깨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도깨비 둘이 맹수 두 마리가 싸우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이놈들 그만해라. 확인하고 가자.”
목소리의 주인공의 말에 둘은 싸움을 겨우 멈추고 으르렁거리며 서 있자. 목소리의 존재가 도깨비들 쪽으로 걸어왔다. 목소리의 존재는 며칠 전 사내와 스치고 지난 간 사내와 무척이나 닮은 남자였다. 손 한쪽에는 부채를 들고 있고 목뒤로 취발이 탈을 메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호리병을 차고 있었다. 도깨비 둘의 으르렁 거림이 끝나지 않자.
“들어가 있거라.”
라며 호리병을 꺼내 주문을 외웠다. 도깨비들이 순식간에 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취발이 탈의 남자는 사내가 날아간 계곡 쪽으로 향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고 있을 때 뒤에서
“거기 사람이요? 요물이요? 사람이면 정체를 밝히고 요물이면 썩 사라지거라.”
취발이 탈을 뒤로 메고 뭔가를 찾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 충분히 요괴로 보일만도 했다. 취발이 탈은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상대를 바라봤다. 어두운 밤에 산 중이지만 달 빛에 상대가 서로 보이는 정도였다. 취발이탈의 남자는 혹시 나졸들이 벌써 왔나 싶었다. 다행히 나졸은 아니었고 삿갓을 쓴 나그네로 보이는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서서 말을 하고 있었다. 취발이 탈은 더 이상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계곡 쪽으로 떨어진 사내도 이미 죽은 것 같고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고 생각한 취발이 탈의 남자는 연기를 일으키며 자취를 감춰버렸다. 삿갓을 쓴 사람이 취발이 탈이 내려다보던 계곡 아래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사내가 눈을 떴다. 온몸에 고통이 전기가 흐르듯 달리고 있었다. 사내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한참 뒤 사내가 다시 눈을 떴다.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보시오. 정신이 드시오?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가만히 계시오. 내가서 미음(중환자가 먹는 죽보다 고은 음식)을 좀 가져오리다.”
하고 사내는 다시 문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사내가 그릇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이 집은 폐가인데 생각보다 쓸 만한 것이 많구려. 아~~, 내가 이 집 주인은 아니라오. 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인데. 며칠 전 숲 속에서 당신을 발견했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지만 몸이 엉망이었소. 거의 죽어있었는데. 이 몸이 의술을 알라서……. 다행히도……. 이런 입을 벌려야 먹을 수가 있소. 입을 살짝 벌려보시오. 아이쿠. 이 아까운 미음이, 다 흐르네. 할 수 없지. 좀 있다가 다시 먹어봅시다. 내가 당신한테 귀한 명약을 먹였는데 이게 죽은 사람도 살리는 그런 약이요. 의지를 갖고 살아나려 노력 좀 해보시오. 어허. 어허. 이런 오줌을 그냥 싸면 어떡하오. 뭐 어쩔 수 없지. 환자니까. 이런, 이런 정신 차리시오. 또 정신을 잃었네. 참나.” “이보시오. 오늘은 좀 어떻소? 정신이 좀……? 벌써 닷새가 넘었소. 부러진 뼈는 내가 다 맞춰놓았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니, 힘을 쓰지 마시오. 그리고 상처도 다 아물었고 누가 약을 썼는지 모르지만 참 대단하오. 그게 나요. 나! 이보시오. 나도 가던 길을 가야 하니 정신을 좀 차리시오. 이거, 이거 약에 취해서 이러는 거구만, 약에 취해서 정신을 잃는 거야. 할 수 없지. 참나.” “자~, 이제 좀 어떻소?” “며칠이나……?”
하고 사내가 입을 땠다. “오늘로 보름이오. 이제 말도 하시는 구려. 나이도 젊은 데 어쩌다가 몹쓸 짓을 당한 것이오. 내가 당신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죽은 사람인 줄 알았소.”
라고 남자는 말하며 단도로 육포를 찢어먹었다. 단도에는 해와 닭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낡은 빨간색 끈에 예쁜 매듭이 눈에 띄었다. 사내는 다시 눈을 감았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하고 겨우 눈을 뜬 사내가 말하자 단도로 뭔가를 잘라 입에 넣던 남자가 “뭐 은혜랄 것도 없소. 20년간 긴 여행을 다녀오는 길인데 며칠 늦게 돌아간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소. 참! 집이 어디요?” “집?”
집이라는 단어를 뱉고 한참을 가만있다가 “집은 없습니다. 갈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방문 밖으로 먼 산을 쳐다봤다. “갈 곳이 없단 말이오? 음……. 그럼 나랑 같이 내 고향으로 가시겠소?”하고 단도의 남자가 말하자 잠시 생각을 하던 사내가 “아닙니다. 전 삼각산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내가 겨우 지팡이를 짚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단도의 남자는 고향으로 향했고 사내는 몸이 더 좋아질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흘렀다.
<삼각산의 만남>
“노인장 계십니까?”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구멍이 몇 개 뚫린 초가의 문이 휙 하고 열린다. “살아와서 다행이네.”노인이 방에서 나오며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노인의 방문 앞에는 목각 인형이 툭 튀어나온 눈알을 자랑하며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게.”노인은 사내를 데리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옆방에는 신당이 차려져 있었다. 노인은 무당이었다. “내가 무당인데, 무당이 양반집 자제에게 말을 쉽게 하니 불편한가?” “그럴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쫓기는 몸이 되었으니 신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복수를 하고 싶지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믿어줄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날, 노인장을 만났던 날, 노인장과 헤어지고 곧 괴물들이 제 부모님을 죽였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하고 노인을 만난 때부터 삼각산에 노인을 찾으러 오기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간혹 사내는 목이 메어 울먹였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경과를 모두 말한 후 “제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그 괴물을 찾아 죽이고 싶을 뿐입니다. 부모님과 처자식의 복수를 꼭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고개를 숙인 채 노인에게 물었다. “자네 가족이 그렇게 된 것은 유감이네. 자네가 말하는 괴물은 아마 도깨비인 것 같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도깨비 말일세. 도깨비라는 것이 뿔 달린 놈도 있고 털북숭이도 있고 눈알이 하나 달린 놈도 있고 여러 가지지만 이상한 점은 도깨비들은 사람을 그렇게 공격하지는 않는데……. 분명 누군가 조종을 하고 있는 것 같구먼.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는 일은…….” 노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사내는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저에게 도깨비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꼭 복수를 하게 해 주십시오.” 노인은 사내를 신당의 그림과 함께 내려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