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36

파편의 재구성

by 김수형

파편의 재구성



상여소리꾼은 오랜만에 이야기 상대를 잘 만났다는 듯이 쉴 새 없이 입과 혀를 움직였다. 상대는 그 길고 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면서 자신이 궁금한 점을 콕콕 찔러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이어 상여소리꾼의 대답이 횡설수설 이어졌다. 상대는 빨간 끈이 달린 작은 장도를 만지작거리며 불안함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상여소리꾼의 이야기 상대는 바로 박노인이었다.

박노인은 아들로부터 손자의 실종소식을 접한 후 주름투성이인 미간의 골은 더욱 깊어졌고 손자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뺑이의 마지막을 본 사람들을 한명한명 찾아다니고 있었다. 박노인은 이서방의 장례 때 상여소리를 한 소리꾼을 만나 그로부터 수염이 긴 사내와 그 일행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뺑이의 실종이 단순히 아이들이 상여 행렬을 따라 가다가 물에 빠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뺑이 이외에도 물에 빠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박노인은 오대산 상원사로 옮긴 동종이 다시 안동에 나타난 것과 그때의 악몽을 되살리는 도깨비의 출현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박노인의 생각은 뺑이의 실종을 포함한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도달했다.

50여 년 전 세조임금이 죽고 예종임금이 즉위한 그 해 어명으로 안동 관아 남쪽 누각에 걸려있던 동종을 오대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풍기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죽령 골짜기에서 도깨비들과 잊을 수 없는 전투를 치루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피를 흘리며 생을 마감했다. 동종이 안동을 떠나자 도깨비들이 그 행렬을 쫓아 밤마다 나타나 동종을 뺏으려고 달려들었고 그 마지막 전투가 죽령 아래에서 있었다. 싸움은 결국 도깨비가 동종의 유두를 잘라가면서 끝이 났다. 살아남은 운종도감과 대장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을 데리고 동종을 오대산 상원사로 옮겼다. 그리고 대장은 절대 그날의 전투에 대해 혹여나 발설할 경우 어명으로 삼족을 멸할 것이니 죽을 때까지 이일을 비밀로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운종도감이 동종을 옮길 때 죽령에서 신비롭게도 종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 제사도 지내고 굿도 하고 염불도 외웠지만 소용이 없었고 몇날 며칠을 공을 들이던 가운데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종의 마음을 헤아려 유두를 잘라 종의 고향인 안동 땅에 묻어주라고 계시를 내려주어 그대로 제사를 지내고 유두를 잘라 안동 땅에 묻으니 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박노인은 일행들과 적지 않은 돈을 수고비로 받고 안동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일행 가운데 누구하나 그날의 비밀에 대해서 말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 50살을 넘기지 못하고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박노인은 안동으로 돌아온 뒤 관아의 감시가 워낙 심해 적응하지 못하고 한동안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40살이 넘어서 다시 안동에 돌아와 살게 되었다. 박노인은 안동으로 돌아와 자신이 안동에 없던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 동종을 옮기러 갔던 일행들이 계속 감시당하며 자유롭지 못하게 살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노인은 안동을 떠나있는 동안 떠돌아다니며 동종과 관련된 이야기와 그날의 죽령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조사해봤지만 무엇 때문에 그날의 싸움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조정 대신들이 관여되었고 어명으로 행해진 전투였으나 비밀로 붙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명으로 군대가 움직였으나 비밀로 붙여진 것으로 볼 때 왕에게 좋은 일이 아니거나 왕도 쉬쉬해야하는 심각한 일인 것으로 박노인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이 에밀레종보다 50년 앞선 신라 성덕대왕 때 만들어진 종이라는 것과 안동에 있던 도깨비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종을 유두를 잘라간 도깨비는 한동안 종적을 감추고 있다가 최근 십여 년 전부터 다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안동에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박노인은 이번 사건이 삼족을 멸한다고 한 죽령 전투와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의 조정 대신들도 50년 전 대신들의 후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비밀을 간직하고 조용히 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손자가 이번 사건과 휘말려 실종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더 깊이 파고들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박노인은 상여소리꾼에게 이서방의 집 위치를 물어 알아내고 상여소리꾼과 헤어졌다.

‘먼저 도깨비가 살던 집을 살피고 이서방의 집으로 가봐야겠군.’라고 목적지를 정하고 박노인은 갓을 매만지며 숲을 향해 걸어갔다. 박노인은 관아 안팎의 모든 정보를 가장 잘 얻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이미 송포졸을 통해 이방과 형방 등이 이서방의 집에서 금덩어리를 빼앗아왔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이서방 가족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전혀 다른 목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의 파편을 박노인은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재구성하고 있었다.

긴 수염의 사내와 뚱뚱한 사내에 이어 막내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도 저승사자의 주술에 걸려 묘한 자세로 몸을 흔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내는 품에서 부적을 꺼내 저승사자를 향해 날려 보냈다. 힘 있게 날아가던 부적도 저승사자의 몸을 통과하고서는 목표를 잃어버린 듯이 땅바닥으로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저승사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왼쪽에 서있던 막내를 바라봤다.

“내가 분명 소용이 없다고 했을 텐데. 우린 염라대왕의 명으로 움직이는 존재라서 너희 무당 따위의 기술로는 우린 제압하긴 어려울 꺼야.”라고 말하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팔을 뻗어 막내를 향했다. 막내의 몸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묘한 자세로 흔들리며 움직이려는 찰나 막내와 저승사자의 사이에 칼날이 날아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복숭아나무로 만든 목검으로 저승사자와 막내 사이에 연결된 주술을 끊어버렸다. 막내는 그대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방금 전 복숭아나무 목검을 내리치며 뛰어든 사람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오셨군요. 안오시는 줄 알았어요.”

“성수청의 자네들이 벅찬 상대를 만나 고생들이 많군. 우리가 비록 뿌리는 달라도 같은 목표를 위해 오늘만큼은 힘을 합쳐야지. 소격서 도사들의 힘을 이제 쉬면서 구경하라고.”라는 사내의 말이 끝나자 연이어 나머지 네 명의 사내와 저승사자의 사이에 복숭아나무 목검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검은 옷과 흰 옷을 입은 도사 십여명이 저승사자를 둘러싸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일이 번거로워지는군.”이라며 저승사자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크흐흐흐흐, 그래도 내가 수확 없이 그냥 갈 수야 없지. 이자는 내가 데려 갈테니 그대들은 조만간에 다시 만나세.”라고 말하며 두 팔을 긴 수염의 사내를 향해 뻗고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하늘과 땅으로 수염이 긴 사내의 혼백이 빠져나가버리고 육신이 휘청거리더니 땅으로 쓰러졌다.

“오라버니~” 막내가 쓰러지는 긴 수염의 사내를 향해 외쳤다. 곧이어 도사들이 흰 가루를 긴 수염의 사내를 향해 뿌렸다. 가루가 날아간 자리에 긴 수염의 사내의 빠져나온 넋의 형체가 보였다. 도사들은 형체가 들어난 넋을 잡으려고 실과 그물 그리고 부적 등을 던졌지만 수염이 긴 사내의 넋은 저승사자가 우그러뜨린 공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저승사자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둘이 사라진 빈 공간에 실, 그물, 부적 등이 날아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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