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35

다시 물길을 따라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35 <다시 물길을 따라>

돌이 일행은 물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산과 산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작은 물길들이 골짜기 골짜기에서 모여들었다. 지도가 안내해주는 대로 작은 내를 건너 이번에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산과 산 사이로 물길을 따라 올라가자 넓은 계속이 나왔다. 지도가 알려주는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절과 석불이 보였다. 일행은 제비원 석불에 도착했다.

도깨비는 아이들을 허리에 끼고 풀쩍 몸을 날려 제비원 석불 앞 바위 위로 올라갔다. 제비원 석불은 자연적으로 ㄷ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다. 석불을 앞에 두고 서면 뒤로도 바위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 왼쪽도 막혀있고 오로지 오른쪽만 트여있어 사람들이 오른쪽 입구로 들어와서 바로앞에 거대하게 서있는 석불상에 기도를 한다. 도깨비가 아이들을 끼고 뛰어 오른 곳은 바로 석불상의 맞은 편 바위 위였다. 바위와 석불 사이에 있는 틈 아래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이가 울먹울먹하더니

“엄마~.”

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불렀다.

“돌이니? 어디 있니?”

라는 소리가 바위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잠 못 이루며 연미사에서 돌이를 기다리던 돌이 엄마가 바로 옆 제비원 미륵불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곧 내려간다고 기다리시라고 해.”

도깨비가 돌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지금 바위 위에 있어. 잠시 기다려. 내가 내려갈게.”

도깨비는 머리에 감투를 쓰고 다시 아이들을 허리에 끼고 풀쩍 풀쩍 뛰어 돌이 엄마가 보이지 않는 바위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엄마~”

돌이 엄마는 목소리가 들리는 바위 입구 쪽을 바라봤다. 그곳으로 돌이가 걸어 들어왔다. 둘은 얼싸 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입구 쪽에서 쳐다보는 뺑이도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도깨비는 멍하니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모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방 가운데 등잔이 놓여있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있다. 등잔의 불빛이 일렁거렸다. 등잔불은 배가 뚱뚱하고 다리가 짧은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젓는 것처럼 움직였고 그 움직임에 맞춰 사람들의 그림자는 심각한 이야기를 무시한 채 춤을 췄다.

“엄마, 관세음보살님이 생명수를 찾을 수 있도록 지도를 주셨어요. 지금 그 지도를 따라 가고 있는 중이에요. 여기에서 지도가 알려주는 곳을 찾아가면 분명 생명수를 찾을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도깨비 아저씨가 도와주고 있으니 아버지를 꼭 살려낼 수 있어요. 걱정하지마세요.”

나이 어린 돌이는 여행을 통해 많이 변해 있었다.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밖에 없구나. 관아에서 봤던 칼 쓰는 사람들도 너희를 찾고 있으니 조심해라. 혹시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돌이 어머니는 돌이에게 말하고 다시 목수에게 방법을 물었다.

“돌이의 말처럼 관세음보살님이 도와주신다면 돌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돌이와 도깨비를 믿고 기다려봅시다.”

라고 목수가 말을 끝내자 문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돌이야! 지도에서 길을 찾았어.”

문밖에서 도깨비와 뺑이가 지도로 길을 찾아내고 돌이를 불러냈다. 방안의 네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무당은 방안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말없이 눈물을 닦다가 문밖으로 나와서는 돌이 엄마 손을 옆에서 꼭 잡아주었다.

“다시 물길을 따라 가야해. 방향을 봤을 때 낙동강을 따라 가야할 것 같아.”

라고 뺑이가 도깨비가 들고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골네가 아이들에게 다가서며

“얘야! 너는 이름이 뭐니? 혹시 박노인댁 뺑이 아니니?”

“네, 제가 뺑이에요.”

당골네는 뺑이의 손을 덥석 잡으며

“아이고, 네가 살아있었구나. 모두들 죽은 줄만 알고 있었는데. 네 할아버지께서 아시면 충격으로 쓰러지실 것 같아서 말씀도 못 드리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돌이가 뺑이에게도 다가가

“뺑이야. 넌 이제 집으로 돌아가. 이제부터는 우리끼리 갈게. 고생 많았고 정말 고마웠어. 니가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꺼야.”

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래, 뺑이는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렴.

라며 도깨비도 말을 보탰다.

“자, 오늘은 많이 늦었으니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길을 떠나렴. 돌이 너도 많이 피곤할 텐데.”

돌이 엄마의 권유가 있자

“그래 돌이야. 내일 아침 일찍 길을 떠나자꾸나.”

라며 도깨비도 쉬어갈 것을 권했다.

돌이가 눈을 뜨자 벌써 세상이 분주하다. 문밖에는 볕이 보이고 새소리가 시끄러웠다. 덮고 자던 이불을 개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려하니 문이 열리며

“돌이야! 밥 먹어야지.”

라며 돌이 엄마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당골네가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깨비와 뺑이를 불렀다. 도깨비는 큰 덩치 묘하게 접어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이게 뭐 유? 참나 우리 당신들하고 달라. 팥죽을 그렇게 즐기지 않아. 혹시나 묵 없소? 메밀묵. 우린 사람이 만드는 음식 중에는 메밀묵이 제일 좋던데.”

밥상 앞에 앉으려고 몸을 구부리던 도깨비가 팥죽을 보고 깜짝 놀라 물러났다. 당골네가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오며 말을 뱉었다.

“내가 뭐라 했소. 도깨비나 귀신들은 팥죽을 안 먹는다니까? 묵이 좀 있으니 메밀묵이나 먹으시오.”

하며 묵을 도깨비에게 건네줬다. 도깨비는 팥죽이 혹시나 자신에게 튈까 두려워 묵을 담은 사발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사발은 다시 방문으로 쑥 들이밀어

“더 없소? 묵이 참 맛이 좋네.”

라고 하는 것이다. 당골네는 방에 앉다가 다시 일어나며

“아이구, 묵 한 사발을 그리 먹어치우면……. 허허허.”

하며 헛웃음을 웃었다.

“돌이야! 팥죽이다. 팥죽에는 양기가 많으니 기운을 차리기에 좋을 것이야. 팥죽 안에 새알도 많이 떠먹으렴. 팥죽은 기운 없을 때 먹으면 참 좋단다.”

팥죽 속으로 숟가락을 넣던 돌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들을 위해서 새벽부터 팥죽을 준비한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니 뜨거운 것이 돌이의 가슴에서 올라왔다. 밖에서는 도깨비와 당골네의 대화가 왁자지껄했다.

“울지 말고 많이 먹어라. 팥죽이라는 것이 가장 어둠이 긴 날, 절망이 가장 큰 날 먹는 음식이란다. 팥죽이라는 것이 마치 그 긴 어둠 속에서 해를 건져내는 것 같지 않니. 절망에서 희망을 떠내는 그런 음식이 팥죽이야. 먹고 기운 찾아서 꼭 아버지를 모시고 오너라.”

돌이와 뺑이는 돌이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팥죽을 떠먹었다. 돌이는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팥죽이라 순식간에 몇 그릇을 비웠다.

“돌이야! 몸조심 하고……. 꼭 돌아와야 한다.”

돌이 엄마가 돌이의 손을 잡으며 당부를 했다.

“뺑이야. 다음에 보자.”

라고 도깨비도 뺑이에게 인사를 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뺑이는 도깨비와 돌이와 다시 한 번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누고 당골네 쪽으로 가서 섰다. 당골네는 뺑이에 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이며 돌이 일행에게 인사를 했다.

“돌이야. 이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낙동강으로 나온다. 그 곳에 청성산이라는 산이 있어. 그 산 아래로 강을 따라가면 허씨라는 늙은 뱃사공을 만날 꺼다. 몇 해 전에 내가 그 사람에게 배를 만들어줬어. 제비원 목수를 알고 있냐고 말하고 부탁하면 원하는 곳까지 태워줄 꺼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라. 그리고 이것을 가져가라.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꺼다.”

목수는 돌이에게 솔방울을 하나 건네줬다. 그리고 웃으며 둘에게 인사를 보냈지만 전날부터 계속해서 도깨비와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돌이와 도깨비는 제비원을 떠나 물길을 따라 산 사이로 사라졌다. 돌이는 제비원을 떠나며 여러 차례 돌아보면서 엄마의 모습을 눈에 담고 또 담아보려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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