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41

빛이 흐르는 동굴 저편에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41 <빛이 흐르는 동굴 저편에>

절벽 속은 깜깜했다. 그리고 곧 빛이 보였다. 천장의 종류석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에 촛대 모양의 석순이 떨어지는 물방울의 충격에 반응하여 빛을 발했다. 돌이는 신기해서 그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물방울이 똑 하고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빛의 파장을 일으켜 촛대 모양의 석순 내부에서 순간 빛을 발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물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촛대바위는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절벽 속으로 들어온 도깨비는 절벽 속에서 나타난 도깨비들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같은 도깨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서로 생긴 것이 무척 달랐다. 절벽 속 도깨비들은 키도 작았고 순해보였다. 절벽 속의 도깨비들은 문지기 하나를 방금 들어온 절벽 입구에 남겨두고 돌이 일행을 데리고 절벽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걸어가는 도깨비들의 발걸음이 바닥에 닿자 바닥이 그 충격에 반응하여 번쩍하며 빛을 발했고 그 빛은 바닥과 벽을 타고 통로를 따라 흘러갔다. 발자국은 한동안 그 빛을 남기고 있었다.

한 도깨비에게 안긴 채 끌려가는 돌이는 빛이 너무 신기하여 손으로 벽을 두드려봤다. 돌이의 두드림에도 벽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처녀는 빛나는 벽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등에 화살을 받은 처녀는 의식을 잃은 채 또 다른 도깨비에게 안겨있었다. 일행은 한참을 걸어갔다. 머지않아 걸어가는 방향에 빛이 스며드는 동굴 끝이 보였다. 일행은 동굴 출구를 통과하여 빛 속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도깨비들이 사는 저쪽 세상이었다.

절벽 밖은 갖가지 귀신과 도깨비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사는 세상처럼 그들은 서로 이야기 하고 거리를 걷고 건물을 기웃거렸다. 그곳은 그들의 거리이자 세상이었다. 귀신들과 도깨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산 사람 아냐?”, “산 사람이 여길 어떻게 왔데?”

웅성거림이 돌이의 귀에 들려왔다. 돌이와 처녀를 안은 도깨비 일행은 그런 말에 개의치 않고 거리를 통과해서 걸어갔다. 몇 층 높이의 큰 건물 앞에 도착하자 도깨비들이 그 곳을 쑥 들어갔다. 그리고 화살을 맞는 둘을 내려놓았다. 건물 안쪽에서 안경을 낀 나이가 무척 많아 보이는 키 작은 도깨비가 나타났다.

“이야기는 들었네. 이 아이들이군.”

안경을 낀 도깨비는 돌이의 다리를 보고 휙 돌아서서 옆으로 엎드려있는 처녀의 어깨를 긴 손가락으로 밀어 화살이 꽂혀있는 곳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곤 처녀와 돌이의 입에 헝겊을 물리고 손으로 화살을 잡아 당겨 뽑아버렸다. 다른 동료 도깨비에게 헝겊으로 상처를 눌러 피가 나오지 않도록 시키고 안쪽으로 들어가 작은 항아리 몇 개와 목발하나를 가져왔다. 항아리에서 가루와 즙을 꺼내 섞은 후 두 사람의 상처에 발랐다. 돌이는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상처부위에 막대를 대고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어놓았다.

“사람은 오랜만에 고쳐보는군. 어쨌든 사람한테도 듣는 약이니 걱정은 마. 이 봐 길을 계속 가야한다고?”라며 안경 낀 도깨비가 안경 너머로 도깨비를 바라봤다. 도깨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꼬마야. 이걸 가져가라. 자.”라고 하며 돌이에게 목발을 건넸다.

“고맙습니다.”돌이가 목발을 건네받고 일어나 목발을 짚어보았다.

“이 아가씨는 지금 못 움직여. 중상이야. 죽진 않을 것 같고 좀 더 있어야해. 음……. 그런데 문제가 있어. 저쪽 세상 사람들은 이 곳 음식을 먹으면 안돼. 그럼 저쪽에 돌아가서 적응을 못해. 저쪽 세상에 돌아가서도 계속 이쪽 세상이 보이고 귀신들이 눈에 들어오고 밤이 되면 이쪽 세상으로 오려고 계속해서 입구를 찾게 되지. 그 쪽 사람들이 그런 사람을 보면 귀신 씌었다고 하거나 미쳤다고 할꺼야. 참 어차피 약을 먹어야 하잖아. 약을 먹어도 부작용이 있어. 이쪽 세상이 보이거나 귀신이 보이거나 하는 증상인데, 뭐 어쩔 수 있나. 그래도 음식을 먹는 것 보다는 그쪽이 덜해. 약은 두 세계의 약재를 함께 써서 만들었고 음식은 모두 이쪽 세상에서 난 것이니 부작용이 훨씬 크지. 그래 피리! 네가 따라 갔다 와라. 할 수 있지?”라고 하자 동료 도깨비 하나가 상채를 뒤로 슥 당기며 확인하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그 모습을 보고 안경 낀 도깨비가 피리를 소개한다.

“그래 너! 이놈은 원래 피리였어. 그래서 지금도 피리라고 불리지. 유명한 광대가 전국을 이 녀석과 떠돌아 다녔다는군. 그래서 전국 팔도 길을 잘 알아. 길안내를 잘 해줄 꺼야. 참 어디로 갈 꺼지?”

도깨비가 피리와 눈인사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 안경 낀 도깨비는 처녀를 바라보며

“데려는 가야하는데 중상이라……. 어쩌면 좋을까?”하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더니 조끼 주머니에서 돌멩이처럼 생긴 까만 물체를 꺼내 처녀의 코끝에 가져갔다. 처녀는 코와 눈가를 찡그리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의식을 찾았다.

“아가씨 죽진 않아. 걱정하지마. 그런데 이 몸으로 갈 수 있겠어? 음……. 뭔가 방법이 있을꺼야. 그래. 일단 목적지가 어디야?”

도깨비가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지도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엄청나게 많은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를 본 피리가

“야~. 이거 신기하네. 출입구가 모두 표시되어 있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지도에는 도깨비들의 세계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깨비들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잇는 출입구가 모두 표시 되어 있었다. 들어올 수만 있는 곳과 나갈 수만 있는 곳, 그리고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모두.

“우리 길을 알려주는 지도인데, 우린 이 지도가 알려주는 곳으로 갈뿐이야. 정확한 목적지는 몰라.”라고 도깨비가 말했다. 그러는 가운데 지도 한 곳의 글씨가 반복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졌다하는 것을 피리가 발견했다.

“이 곳으로 나가면 풍산 뒷산인데. 그리고 여기가 당신들이 들어온 곳은 여기야.” 피리는 글씨가 생겼다 사라졌다하는 출구와 그들이 들어온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려줬다.

“그래 그럼 되겠군. 풍산 뒷산에 있는 출구에서 몸조리하면 되겠군. 출입구는 대부분 집이야. 사람들이 버린 집, 저쪽 세상에서 말하는 도깨비 집이지.”안경 낀 도깨비는 항아리에서 작은 호리병으로 약을 옮겨 담으며 말했다. 호리병 두 개를 돌이에게 전해줬다.

“아이야. 빨간 병은 네가 먹고 발라야할 약이고, 파란 병에 든 약은 저 아가씨가 먹고 발라야 한다. 혹시나 바꿔서 먹으면 큰일 난다. 명심해.”

돌이 일행은 안경 낀 도깨비와 헤어져 피리의 안내로 출구로 향했다. 그들은 처녀를 수레에 싣고 옮겼다. 수레 안에는 짚을 깔아서 처녀에게 덜컹거리는 충격이 전해지지 않도록 해놓았다. 피리의 안내에 따라 출구에 도착했다. 짚으로 된 지붕의 낡은 집 한 채가 출구였다. 피리는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벽장문을 열었다. 그리곤 방 밖에 있는 돌이 일행에게

“이 곳으로 들어가면 풍산 뒷산이야. 내가 마지막에 넘어갈게. 그럼 당신이 첫 번째 두 번째로 꼬마, 그리고 아가씨가 넘어가는 걸로 하자고.”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도깨비, 돌이, 처녀 순으로 가리켰다.

도깨비가 앞장서서 벽장 안으로 들어갔다. 벽장 안으로 들어가자 잠시 깜깜해지더니 반대쪽 벽장문이 열렸다. 도깨비는 저쪽 세상에서 들어갈 때와 똑같이 생긴 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가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집을 돌아보니 저쪽 세상과 똑같이 생긴 곧 무너질 것 같은 짚으로 된 지붕의 낡은 집이었다. 이어서 돌이가 목발을 짚고 넘어왔다. 그리고 처녀와 피리가 넘어왔다. 도깨비가 집안에서 낡은 이불을 찾아서 방바닥에 깔아뒀다. 그리고 피리가 처녀를 그 곳에 눕혔다.

“누울 만해요?”라고 피리가 물었다. 처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누나 여기 약 있어요. 통증이 느껴지면 먹고 바르세요.”라며 파란 병을 처녀에게 전해줬다.

돌이와 도깨비는 처녀가 자리 잡고 누워 쉬는 것을 확인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돌이는 벽장을 넘어오면서 무리를 했는지 다리가 욱신거렸다. 빨간 약병을 꺼내서 약을 마시고 다리에 발랐다. 약은 이상한 냄새가 심하고 도저히 마시기 힘들었다. 돌이는 다시 마시기 싫다고 생각을 했다. 도깨비는 지도를 꺼내서 폈다. 지도에는 건물과 산 아래 풍산 일대가 그려져 있었다. 돌이가 갑자기

“여기 병이 있어요. 호리병 모양의 병 보이죠?” 정말 지도에는 병이 그려져 있었다.

“정말 이렇게 큰 병이 있을까? 집이 몇 채가 들어가도 남을 정도의 크기잖아.”라고 도깨비가 놀라워했다.

그 풍산 동쪽 산 아래, 그리고 바로 그들이 서 있는 산 아래에 긴 호리병이 그려져 있었다. 크기로 봐서는 집 열채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병이었다. 둘은 피리를 불러 셋이서 함께 호리병을 확인하러 달려갔다. 급한 마음에 도깨비는 돌이를 허리에 끼고 달렸다. 곧 눈앞에 절벽이 나타났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절벽 아래에는 거대한 정병이 놓여있었다. 일행은 관세음보살의 정병을 고생 끝에 발견했다.

“아저씨 그런데, 저 것이 병 맞아요? 저건 연못이잖아요.”라며 돌이가 도깨비에게 의심스러운 듯 이야기 했다.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병 모양을 한 연못이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연못가에 한 남자가 연못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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