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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Nov 06. 2024

배를 잃은 한 마리 어린 양

말 문 터진 물건 15

"야, 알파카야, 뭐 하니?  어쩌면 너는 몸이 핑크색이구나." 귀여운 목소리로 양이 말하지만,

'쟤는 또 뭔 시비를 걸려고 저러지?' 알파카는 들은 척도 않고 딴 데만 보고 있어요.

"야, 너는 우리 중 누가 더 귀엽다고 생각해? 양이 또 말을 겁니다.  

"당연히 내가 더 귀엽지. 얼굴 엄청 작지. 털도 너보다는 내가 더 부드럽고 비싸지."

 양이랑 말 안하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알파카는 댓구를 하고 맙니다.

" 털 말고 생긴 거 말이야. 내귀랑 얼굴이 훨씬 귀엽지. 그러니까 사람들은 양머리를 한다고. 알파카 머리 하는 거 봤어?" 양은 이때다 하고 신이 나서 말합니다.

"네가 암만 귀여운 척 해도 니 성질 더러운 건 세상 사람이 다 알아." 알파카도 지지 않습니다.  

"웃기고 있네, 너도  만만찮지. 침을 퉤퉤 뱉는 거 그건 성질이 뭐 좋은 거냐고 ㅋㅋㅋ"

"내 긴 목 좀 봐라. 얼마나 멋지니,  양아 넌 목이 아예 없네" 알파카가 긴 목을 더 늘리며 말합니다.

" 목이 길다고 귀여운 건 아니지. 사람들이 잠 안 올 때도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을 센다고 - 알파카 한 마리, 알파카 두 마리 --이러지는 않지."

점점 더 양에게 말려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알파카는 멈출 수가 없었어요.

"넌 얼굴이 너무 커. 내 얼굴 봐라, 정말 작지. 요즘 대세는 잘은 얼굴이라고 얼굴이 작아야 이쁘지"

"나도 얼굴이 작다고, 털이 많아서 커보이는 거라고  - 칫, 넌 산꼭대기 살지? 우린 넓은 초원에서 산다고 아름다운 푸른 풀밭에 -  예수님도 양들을 돌보는 목자라고 하잖아" 양은 지지 않습니다.

"그래, 뭐 알파카를 돌보는 목자라고 한 적은 없어. 하지만 그 말은 그 뜻이 아닌 거 알기는 하지? 하여간 이해력이 떨어지기는" 알파카도 지지 않습니다.

"너 지금 화나서 침 뱉으려고 했지. 어디 뱉어봐 뱉어봐 매해해해해 ---그봐 못 뱉지? " 양은 까불면서 약을 더 올립니다.

" 야, 시끄러 -난 어디서든 잘 살 수 있거든,  하지만 너는 안데스 산맥 완전 높은 산꼭대기에서 살아봤냐? 아마 하루도 못 견디고 고산병 걸려서 겔겔 대면서 쓰러져 살려달라고 난리 칠걸. 흥 "

고산병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양은 말 문이 막히자 얼른 뒤로 탁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야 내 뒷모습 좀 봐봐 완전 귀엽지? 귀가 이렇게 살짝 아래로 쳐지고 머리엔 가르마도 있어. 통통하게 살이 찐 내 몸 좀 봐 환상적이지?  

"야, 그것도 몸이라고 하냐, 그냥 통이지. ㅋㅋㅋㅋ. 뒤태야 내 뒷태지. 내 통통한 엉덩이 좀 봐봐. 거기다 튼실한 허벅지에 살짝 내린 꼬리도 기가 막히지.

자기도 모르게 또 엉덩이 대결에 말려들었지만 알파카는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쭐해졌습니다.

" 야,야  너 멋있는 척하려고 일부러 살짝 고개를 돌리고 그러면 안되지. 정정 당당하게 딱, 뒷모습만 보여줘야지."  양이 따졌습니다.

"그럼 너도 고개 돌리면 되잖아. 고개 돌려봐라. 고개 돌려봐라. 그봐 고개도 못 돌리면서. 목도 없는주제에 "

말 하고도 너무 했나? 싶어 움찔 하는데 바로 양이 소리쳤어요.

"뭐라고 목이 왜 없어 - 나 목 있다고 !!" 억지로 양이 목을 빼려 합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합니다. 양이 궁지에 몰리자 알파카는 이상하게 점점 기세 등등합니다.

"ㅋㅋ 웃기고 있네 -암만 해봐라 없는 목이 생기나 - 게다가 난 등에 멋진 깔개를 얹고 있잖아. 넌 이런거 없지? "  

"그건 반칙이지. 그냥 자기 몸 그대로 보여줘야지 장식을 달면 어떡해 공평하지 않아."

"넌 다리도 없잖아.- 다리도 없으면서 큰소리치기는"  

알파카가 나오는대로 말은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양 눈치를 봤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물러설 양이 아니었습니다.

"야 그럼 너 구를 줄 알아?  모르지? 난 엄청 잘 굴러갈 수 있다고-  뻣뻣하게 서서 구를 줄도 모르면서

자 봐봐 구르는게 뭔지.  어떻게 구르나 잘 보라고"

보란 듯이 옆으로 눕더니 데굴데굴 굴러가며 야호!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싹 가신 알파카는 콧 방귀를 뀌면서 굴러가는 양에게 큰 소리쳤어요.

"야 그까짓 거 못할 거 같아 "

하고는 냅다 바닥에 몸을 굴렀지만 철퍼덕 넘어져 다리가 들린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양이 굴러와서는

"그 봐라 너 못 구르지- 나는 굴러 다닐 수 도 있어. 다리가 4개나 있으면 뭐 하냐고 - 아무 쓸모도 없지?

핑크색 알파카님 - 멋있는 척 서 있을 때 알아봤어요. 억울하면 그 잘난 엉덩이로 높은 바위산으로 가시던가요" 약을 올리고는 하하하 웃으며 굴러 가 버렸습니다.

따라가지도 못하고 약이 오른 알파카는 핑크색 몸이 더 붉어졌습니다. 그 때 갑자기 저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앗!! 아아아 ---안돼!! "

양의 목소리 였어요. 너무 힘껏 멈추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르다가 몸속에서 화장지 뭉치가 빠져나오고 만것이었어요. 몸이 납작해진 양을 보고 너무 놀라서 알파카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양에게 갔어요.  

속이 없어지면 정신도 없을 줄 았는데 양 머리는 살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었어요.  

"양아,  어떻게 해? 이게 뭐야? " 겁에 질린 알파카가 말했습니다.

"신경쓰지마. 원래 내 속은 화장지로 채워져 있었던 거야" 양은 화가 난것 같았습니다.   

"뭐? 그럼 넌 이때껏 속도 없이 산 거야? "

"아니 꼭 속이 없는  것은 아니지이 -  " 양은 말 끝을 흐렸습니다.

"그래서 다리가 없었구나. "

"너 나한테 실망했지?" 양이 작은 목소리로 기운 없이 말했습니다.

엄청 귀여운 척 잘난 척은 다하며 자신을 놀리고 시비나 걸더니 - 초라해진 양이  불쌍해졌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걱정하지 마. 뭐든지 내가 도와줄게 -."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이 말했습니다.

" 뭐든지 도와 준다고 고마워 -그럼 먼저 나를 좀 일으켜줘."

배속이 없어져 자꾸 주저앉으려는 양을 알파카가 있는 힘을 다해 자기에게 기대어 일으켰습니다.

배가 쭈글쭈글 접힌채 억지로 서있더니 힘이든지 숨을 헉헉대며 말했습니다.

"아, 나 너무 힘들어 후아 후아. 배가 접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 후 후-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어."

"그럼 어떻게 하지? 내가 저 두루마리 화장지를 네 뱃속에 넣어주면 좋겠지만 할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

잠시 생각하던 양이

"니가, 하악 하악,  내 뱃속에 들어와서 하악, 나를 일으켜 주면 안 될까? 학 하악 "

"그건 좀 -  내가 어떻게 너 안에 들어가- 그리고 거기 들어가면 --" 말도 끝나기도 전에 양이 말했지요.

"학학, 걱정말라매, 뭐든지 다 해준다매 - 매애애애 "  울음이 곧 터질듯합니다.

"아, 아알았어.."  당황한 알파카는 무섭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양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자 내가 들어갈게 - 앞 발을 넣고, 천천히 - 뒷 발을-- "

"아야!! 날 밟으면 어떻게 껍질이 아니, 피부가 너무 아파." 양이 소리를 칩니다.

"안 되겠는걸, 그럼 머리부터 들어가 봐야겠다"  조금씩 머리를 넣었습니다.

"어어 생각보다 너무 쉽게 쓱 들어가는데 - 너 배가 엄청 크구나" 양의 배속이 포근하고 좋았습니다.

"지금 농담이 나와?  어서 날 일으켜 세워줘- "

"기다려 -  자 같이 일어나자  하나 둘 셋!!" 알파카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양도 몸이 펴졌습니다.

"후우-- 이제 숨을 쉴 것 같아 " 양은 하늘을 보면서 숨을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알파카가 문제였어요.

"양아. 나 너무 깜깜해 -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내 발만 보여"

"그래? 음-- 그럼 내가 방향을 말해 줄테니까 그대로 넌 움직이면 돼."

"왼쪽 왼쪽, 아니 옆으로 한 발 만 더 - 멈춰!! "  알파카는 양이 시키는 대로 걸어갔습니다.

"도대체 어디 가는데 - 왜 자꾸 가야해?  너 배속도 비었는데 머리가 커서 그런가? 너무 무거워 "

"잔소리 말고 그냥 가자니까. 앞으로 뒤로 옆으로 오른쪽, 왼쪽 - "

양은 말만 하면 가만 있어도 이리저리 가는 게 재미있어 자꾸 시킵니다.  



지친 알파카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난 그만할래,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무겁고 답답하고 재미없어."

그러자 양은 바로 태도를 바꾸며

"아, 미안해-  " 하고 잠깐 눈 조리개를 줄이고 귀를 까딱이더니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니가 다리부터 넣으면 머리가 밖으로 나와서 너도 볼 수 있어지는 거야."

"그게 될까?"

"일단 해봐. 자 어서 다리를 넣어봐"

양이 시키는대로 양의 배 속에 다리를 넣자 머리가 반대쪽으로 쏙 나왔어요.

 " 어 됐네 - 좋은데? 하지만 누워 있잖아"

" 이거야. 하하하  알파카야 이러면 너도 이제 구를 수 있어. 어때 신나지? "

구를 수 있다는 말에 흥분한 알파카는 어서 굴러보고 싶었어요.

"와 이거 재미있겠는데. 빨리 굴러보자."  

"하나 둘 셋 굴러!!" 양이 소리치고 둘은 함게 빙글빙글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야호!!-- 우후!!  재미있다!! "  

한참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쳐서 멈췄습니다.         

"야 조금만 쉬자 어지러워 -  숨 차지 않냐? 하하하 "


쉬고 있던 알파카가 갑자기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양아, 니 뱃속은 진짜 포근하고 좋아. 니 껍질은 내 다리를 감싸서 구를 수도 있고. 너무 고마워- 덕분에 오랫만에 너무 즐겁고 신났어."

그 말에 양이 대답했어요.

" 나도 화장지뭉치가 꽉 끼워져 있을 때보다 훨씬 니 다리가 더 좋아. 좀 뻣뻣하기는 하지만 흠.

난 사실 내 속이 화장지인 게 부끄러웠어. 텅 비어 껍질로만 있을 땐 그냥 인형바구니에 쳐박혀서 있었거든 그건 더 견디기 어려웠어. 화장지가 없으면 설수도 없지. 그래서 가만히 앉아 절 대 안 움직이고 다른 친구들을 놀려대며 잘난척 하고 살았어. 내 배 속이 들통 날까봐. 그런데 이젠 부끄럽지 않아. 오늘부터 내게 친구가 생겼거든. 그 친구가 가끔 침을 뱉기는 하지만 뭐 괜찮아. 그 정도는 개성이라고 봐줄 수 있지. 하하"

"침 뱉는 그 애가 나야? " 양의 말에 어리둥절 당황한 알파카가 물었어요.

양이 알파카 귀에 대고 똑똑 하고 부드럽게 천천히  말했어요.

"너는 배를 잃은 한 마리 어린양의 내장이 되어준 멋진 분홍 알파카야. 그것만 알아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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