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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Nov 02. 2024

 가족이 온다

말 문 터진 물건 14

기억하세요?

우리가 만난 것은 1995년 여름이었어요. 

당신은 만삭의 배를 안고 시골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나는 당신 남편의 주머니 속에 가만히 있었답니다. 

호주에서부터 아주 멀리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분이죠.


호주에서 나를 처음 보고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곱게 닦아 소중하게 보관했어요.

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죠.

남편에게서는 호주 냄새가 아닌 좀 다른 냄새가 나서 흥미로웠어요.

그리고는 우리는 함께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기까지 왔어요.

조금 어리둥절 하기는 했지만 아 여기가 이 사람의 나라구나라고 생각했죠.

호주는 겨울이었는데 여기는 여름이라고 하더라고요. 

엄청 더웠어요.  땀이 많이 났지만 참을 만했어요. 

여왕님이 조금 힘드셨을 수도 있지만 여행을 많이 하신 분이니 괜찮았겠죠.


당신은 엄청 부른 배를 안고 환하게 웃으며 남편을 맞이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았어요.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이 학교 사택이라고 했어요.

남편은 예쁜 팔찌와 시계와 그림과 호주 과자와 화장품을 선물했어요,

당신은 너무 기뻐하며 팔찌를 하고 그림을 벽에 붙이며 신나 했어요.

그 옆에는 아빠와 함께 온 딸이 노래를 부르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었고요.

작은 집이 시끌벅적하고 행복이 가득했어요. 


당신이 그 모든 것에 감동하고 있을 때 남편은  

주머니에서 나를 꺼내 당신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조용하고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죠.

"딱 지금 우리 가족이야" 

그 때서야 왜 나를 호주에서부터 그렇게 소중히 가져왔는지를 알았죠.


당신은 이때까지 받은 시계나 팔찌나 화장품은 버려두고는

나를 들고서 보고 또 보며 너무너무 기뻐했어요.

"정말 우리 가족이야  딱 지금의 "

눈물을 흘릴 뻔했지요.


나는 너무나 선명하게 모두를 기억합니다. 

당신의 부른 배보다 더 큰 기쁜 표정과 딸이  부르는 신나는 노래와 장난과 

당신 남편의 약간은 부끄러운듯한 표정과 오후의 밝은 햇살이 비치던 창과 시골 냄새까지. 


지금 나는 장식장에서 다른 동전들과 같이 있지만 

당신은 잊지 않고 나를 한 번씩 닦아주며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아마도 그 때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의 뱃속에 있던 아기가 태어나 자라 

언니와 함께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가족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 멋진 가족인지도 보았지요. 

당신과 남편은 조금 늙었지만 그 때와 다르지 않게 다정하고 즐거운 부부입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이 너무 자랑스럽도록 해줍니다. 

마치 모든 게 제가 데려온 행운이라도 되는 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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