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문 터진 물건 16
코코넛이 나무에서 떨어졌어.
아이쿠!
떼구르르 굴러가 척하고 풀위에 앉았을 때 속에 있는 물이 기분 좋게 출렁거렸지.
동네 아이들이 달려와서 주워갔어.
천막 아래 코코넛들과 아이스박스 속에 담겨 시원해지자 사정없이 내 머릴 쳐내고 구멍을 내서 관광객에게 팔았어.
속에 있던 물이 쪽쪽 빨려 나가는데 기분은 아주 이상해. 다 멈고 빈 껍질이 되면 마구 던져지는데 친구들고 마구 부딪쳐서 소리가 시끄러워.
"틱 탁 - 아야! "
쌓여 있던 우리들을 다 같이 어디론가 실려갔어.
거기는 우리의 우유 같은 흰 속을 벅벅 긁어 내는데 으이구 몸이 오그라들었어.
코코넛 밀크를 만든단다.
그리고 남은 빈 껍질은 우루루 싣고 숯 만드는 곳으로가서 태워졌어.
코코넛도 잘 생기고 봐야해. 나는 예쁘고 암팡지게 생긴 덕에 숯이 되지 않고 잘라져서 동그란 아랫부분이 살아남았어. 껍질을 까고 털을 밀고 나니빤빤하고 단단한 맨머리가 되었네. 점점 말리면서 내 몸은 얇아졌지만 더 단단하고 가벼워지게 되었지.
사포로 문질러서 정말 매끈해진뒤 몸 안쪽에다 뭔가를 붙였어. 무지개 빛이 나는 물망울 모양의 조개 껍질이었는데 조개껍질들은 저마다 부서진 바다 소리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어. 눈부시고 아름다웠지만 붙일 때 당기고 끈적하고 찝찝해서 혼났어. 손 빠르게 붙여갈 수록 빙빙 돌아가는 기분이들면서 어지러워서 눈을 감았어.
마지막 하나를 붙이자 나는 화려하고 빛나는 아름 다운 그릇이 된거야.
코코넛의 족보는 잊어야 하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완전 다른 모습이 되었어.
"어머 너무 예쁘다. 친구가 이렇게 예쁜 코코넛으로 만든 그릇을 보내왔네 - "
'여기는 어디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쁘다고 칭찬을 하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모든게 낮설어.'
"이건 그릇으로 쓰기는 좀 그래 - 뭘 담아놔야 하나?"
이것 저것 담아보더니 그냥 장식장 위에 얹어 두고 말았어. 그런데 거기서 묘하게 고향냄새가 나는거야. 너를 발견 한거야-
"어? 너 코코 너-ㅅ ? "
"너도 코코넛? "
우리는 서로를 바로 알아보았어. 살짝 모양이 변했어도 그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았지.
"야, 너는 너무 귀여운 작은 코코넛이었구나. 꼬리 같은 나무 손잡이가 근사하다."
"나는 국자야. 꼭지가 복숭아처럼 볼록한 코코넛 윗부분이야. 너는 그릇? 화려하군."
"어디서 왔니? 태국?"
"나도 태국에서 왔어. 진짜? 너무 너무 반갑다."
"그런데 우린 여기서 뭐하는 걸까?"
"먼지나 뒤집어쓰게 놔둘거면 우리를 왜 데려 왔을까?"
"그러게 말이야- 난 한 번도 국자로 물을 퍼보지도 않더라. 물을 담으면 살짝 무거워 지면서 훨씬 더 예쁜데"
" ㅋㅋ넌 참 재미있는 친구구나. 난 아직도 얼떨떨하고 있는 중이야. 내가 뭔지 잘 모르겠어."
둘이 반가워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어.
"내 집이 되어줄 수 있겠니? "
깜짝 놀라서 무슨 소리인가? 다시 귀울여 들었어.
" 내 집이 되어 줄 수 있겠니?"
같은 말이 들리는거야. 둘러보니 책장 사이에 아주 작은 성모님이 낡은 옷을 입고 쓰러져 있었어. 그런데도 인자한 표정으로 눈을 아래로 뜨고 살짝 미소를 짓고 계신거야.
"내가 너무 작아서 늘 이렇게 잘 쓰러지고 어디 구석에라도 넘어지면 눈에 잘 안 띄니까 그대로 몇일, 몇 달이 갈 때도 있단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 일에 바쁘거든. 늘 핸드폰만 보고 기도를 잊고 있단다. "
내 몸에 박혀있던 물방울 모양의 조개껍질 장식들이 갑자기 웅성 대더니 환호하면 박수를 쳤어.
"성모님 우리게 오세요!! 이런 일이 있으려고 우리가 네 몸을 장식한거였던 건가봐" 조개껍질들이 와르르르 몸을 흔들어댔어.
나는 너무 당황했어.어리둥절 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국자가 야 - 너는 좋겠다 하는거야. 그사이 어 -어어?
내 몸이 세워지더니 그릇이 아닌 집이 되었지 뭐야?
"잠깐 잠깐"
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잘 설수 있도록 중심을 잡았어.
그러자 조심조심 작고 가벼운 성모님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어. 한 가운데 와서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팔을 벌리고 서시는거야. 마치 사진을 찍는 포토존 같았어.
내 심장은 쿵쿵대고 조개 껍데기들이 일제히 성모님을 향해서 아름답게 반짝이며 별처럼 꽃처럼 빛났어.
성모닐께서는 집이 너무 화려한것 같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말했지.
"아니에요. 이집은 황금으로 된 집이 아니랍니다. 코코넛 껍질과 조개껍데기로 된 집인걸요"
아름답고 가난한 작은 성모님의 집이 되어 나는 지금 행복해. 나를 황금궁전보다 더 아름다운 집이라고 말씀하신단다.
그런데 그분은 늘 걱정이 있어. 조용한 미소에는 항상 슬픔이 있거든. 그 슬픔을 덜어드리려고 우리는 함께 기도를 해. 작은 국자도 같이.
코코넛을 따 관광객들에게 팔아야 하는 아이들과
조개 껍질을 주워와서 먹을 것을 사야하는 아이들과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든 아이들과
전쟁중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아주 작은 기도지만 많이 많이 쌓이면 하늘에 가 닿겠지.
세상에 평화가 오면 그 때는 착한 성모님도 활짝 웃을 거라고 생각해.
가끔 성모님은 여기서도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하시거든 ?
"아이구 내가 왜 이러냐?"
하시면서 엄청 부끄러워 하시는데 ㅋㅋㅋ 진짜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