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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Jul 29. 2024

날개를 잃어도 천사

내가 박살 낸 것들 3

내가 박살 낸 것들

내가 박살 낸 것들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아기 천사들은  성화에 나오는 통통하고 귀여운 천사의 모습 그대로다. 초벌로 구워 낸 색 그대로 살색이 되어 자연스러운 질감이 매력적이고 천사들이 짓는 표정이나 동작이 너무 귀엽고 흥미롭다. 

심통한 듯 턱을 고이고 딴전을 피우고 있거나 모로 누워 머리를 괴고 있거나 두 손을 어깨로 모아 고개를 갸웃하거나 통통한 짧은 팔과 다리를 접거나 꼬고 앉아 있는 모습과 낮은 코와 곱슬머리, 볼록한 배, 등에는 앙증맞은 날개가 있어서 장난꾸러기 악동 천사들 같다. 

누워 뒹굴다 눈이 마주쳐 가만 보고 있으면 저도 길게 모로 누워서 여유를 부리며 나를 내려 보고 있는  천사가 있고 성수반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난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무거울 텐데도 늘 웃으며 하늘을 보는 착한 천사, 기어가듯 엎드린 작은 천사와 동그란 악기를 잡고 달 위에 앉아 잠든 천사도 있다.


별 위에, 달 위에, 해 위에 앉아 있던 세 쌍둥이 천사는 해와 달을 떨어뜨려서 깨지고 박살이 나서 수리도 불가, 지금은 별 하나만 멀쩡하게 남아있고 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변을 당해  땅에 내려와 앉게 되었다. 해와 달이 아니라서 불편한지 자꾸 쓰러져서 엉덩이 밑에 안 보이게 부직포 받침을 붙여 줬더니 중심을 잡고 바로 앉아있게 되었다. 천사가 들고 있는 성수반도 깨트려 본드로 붙여 줬고 턱을 괴고 엎드려 누운 천사의 날개도 수리를 해서 붙였다. 그래도 몸이나 얼굴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조금 큰 모로 누운 천사다. 목이 댕강 떨어져 봉합해서 겨우 목숨은 살렸지만 완전히 깨진 날개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등에는 날개 떨어진 자리가 흉하게 남아있고 총을 맞은 듯 뻥 구멍이 뚫린 속을 다 보이고 있다.  앞만 보니 잊고 있다가 어쩌다 등을 보게 되면 끔찍함에 흠칫 놀란다.

 

 '이제는 더 이상 천사가 아니에요. 날개를 잃어버렸거든요' 체념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아니야, 날개가 없어도 너는 여전히 귀여운 아기 천사야' 말해 준다.


긴 시간에 걸쳐 천사들은 이런 수난을 당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약속도 못한다. 그런데도 아기 천사들은 싫은 기색도 걱정도 없는 해맑은 모습으로 거실이나 방이나 제멋대로 앉고 누워 귀여운 하늘나라를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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