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살 낸 것들 4
어머니께서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장독을 많이 가지고 계셨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에는 장독 하나 사는 것은 살림을 하나 장만하는 것이었을 테니 큰 기쁨이고 그만큼 장독은 소중한 것이었을 거다. 서울로 오면서 아주 큰 독은 시골에 두고 왔지만 고추장 단지나 중간 크기의 된장, 간장, 소금 단지는 가져오신 듯 내가 결혼을 했을 때도 여전히 아파트 베란다에 단지들이 있었다. 서울에 사시면서도 단지 파는 트럭이 오면 단지를 사시기도 하셨는데 새로 산 단지를 닦으며 잘생겼다며 흡족해하셨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그 단지 하나를 깼다. 어머니께서는 소금단지나 간장, 고추장 단지로 쓰고 계셨지만 점점 플라스틱 용기들과 냉장고에게 밀린 빈 단지들은 자리만 차지하는 거치적거리는 짐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아끼는 장독을 깼으니 죄송했다.
그런데 장독 깨진 부분이 칼로 자른 듯 깔끔하고 손잡이 한쪽이 붙어 있는 모양도 신기했다. 화분으로 쓰면 예쁠 것 같아 흙을 채우고 식물을 심었는데 그 단지가 간장 단지였었던지 계속 짠물이 배어 나와 어떤 식물도 살지 못했다.
고민하다 깨진 단지에 모래와 작은 자갈을 채우고 그 안에 작은 화분들을 넣었다. 마치 엄마 닭이 병아리를 품고 있는 듯 보기가 나쁘지 않다. 됐다. 깨진 단지는 그렇게 버려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안에 넣는 화분들을 바꾸어 가며 조금씩 변화 주는 재미도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사하면서도 단지들을 버리지 못하고 데려왔다. 좁은 창고에 불편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단지 속에 이런저런 것들을 넣어 둔다. 그 위에 박스를 쌓기도 한다. 가끔 물건을 찾다가 단지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나는데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 준다.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장독대를 만들 수도 있지. 앞에는 채송화 봉숭아 자라는 화단도 있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