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살 낸 것들 5
호주에서 온 이 엄마 캥거루는 짧은 갈색 털이 부드럽고, 속은 솜을 꽉꽉 눌러 채워 폭신하면서도 단단하다. 고개를 갸웃 돌려 멀리를 보고 앉아 있다. 갈색 가죽 코와 어울리는 갈색의 깊은 눈빛은 순하고 애련하다. 두 팔을 내리고 있는데 가슴부터 배는 하얀색이다.
배 주머니 속에는 정말 귀여운 아기 캥거루가 들어있다. 아기 캥거루는 몸통 끝과 배 주머니 속을 고무줄로 연결해 놔서 꺼내면 고무줄이 늘어나며 밖으로 나왔다가 놓으면 다시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 포근하게 행복해했다. 탯줄로 연결된 엄마와 아기 같기 도 히다.
엄마랑 똑같은 갈색 얼굴에 흰 가슴을 가진 아기 캥거루는 아래 다리 아랫부분은 동그랗게 기워져 있어 그게 더 귀여웠는데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건데 다리가 없다니!! 이건 너무 엽기적이야 라고 했지만 뭘- 인형인데 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한창 자랄 때까지도 엄마 배속에 있는 아기 캥거루들은 다리가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헐!!
서너 살 아이들에게는 배주머니에서 아기가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게 너무 재미있으니까 꺼내고 넣고 당기고 잡기 쉬운 아기 캥거루를 잡고 이리저리 막 돌아다니면 엄마 캥거루가 질 질 따라 끌려왔다. 이렇다 보니 얇은 고무줄은 금방 늘어져서 그냥 끈이 되어버렸다.
이제 아기 캥거루는 누가 넣어주지 않으면 엄마 배주머니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엄마 배 주머니 밖에서 목만 달랑거리며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차라리 끈을 자르고 그냥 배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 일로 나는 지금까지도 지탄을 받게 된다.)
그렇게 엄마로부터 독립한 아기캥거루는 방과 거실, 아이들 장난감 바구니에 들어가 같이 놀거나 뒹굴며 온 집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가끔 귀엽게 웃고 있는 몽당한 아기 캥거루를 만나면 엄마한테 가자하고 배주머니에 넣어 주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형이나 장난감과 멀어지고 그렇게 아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혼자 남은 엄마 캥거루는 빈 배주머니를 안고 언제나 조용히 앉아 멀리를 보는 게 꼭 아기를 기다리는 슬픈 눈빛 같다. 혹시나 위로가 될까 엄마의 텅 빈 배주머니에 태국에서 온 작은 코끼리 인형을 넣어 주었다. 생김새도 피부 결도 서로 안 맞아 어색하지만 엄마 캥거루도 아기코끼리도 서로 좋아하는 눈치다. 같이 있으니 훨씬 더 따뜻하고 행복해 보인다. 이렇게 새로운 다문화 가족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