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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Sep 22. 2024

너를 비운다 2

사물별곡 1 / 냉장고가 죽었다/새 냉장고가 급하다

냉장고가 죽었다

누전 차단기가 갑자기 '탁' 내려가 버렸다. 냉장고도 멈췄다. 있는 힘을 다해 무거운 냉장고를 당기고 밀며 꺼냈다. 그대로 죽게 할 수는 없다. 뭔가를 해봐야 한다. 절대 움직일 일이 없었던 붙박이장 같던 굳건한 냉장고가 한 발 한 발 밖으로 나오자 멈춘 냉장고보다 더 아연실색케 한 것은 뒷켠의 벽과 바닥에 냉장고가 그 동안 뱉어낸 그을음과 쌓아둔 먼지였다.


 냉장고가 살아온 답답하고 힘겹던 시간을 그대로다보여준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서 닦고 쓸고 숨을 쉴 만 해지고 보니 밑으로 오줌 싸듯 지르르 물이 흘러나왔다. 냉장고 속 어딘가 물이 생겨서 고이는가 보다. 플러그를 꽂았다, 뺏다를 해보니 냉장고 속에 물이 차 있어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고 냉장고는 멈추는 것이다. 물을 닦으면?  열심히 닦고 혹시나 하고 플러그를 다시 꽂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소생 실패였다. 물은 계속 흘러 나왔고 나는 계속 닦았다. 그 와중에도 의외로 이런 반복되는 일은 재미가 붙는다. 고이면 반가워 얼른 닦고 얼마나 나왔나? 물이 안나오면 기다리게 된다.


새 냉장고가 급하다

새 냉장고를 사는 것이 촌각을 다투는 일이 되었다. 냉동실과 냉장고 속의 음식물들이 녹기 전에 바로 새 냉장고를 찾아서 교체를 해야 한다는 황급함에 헌 냉장고를 아쉬워할 겨를도 없었다. 먼저 최단의 설치 시간을 찾아 인터넷을 뒤져보면서 집 가까이 전자 상가 매장으로 가서 디자인과 기능을 직접보고 확인했다.

아무리 급해도 10년은 넘어 써야 하는 냉장고를 함부로 살 수는 없어 디자인과 기능과 가격과 설치 날짜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래도  3일이 걸린다고 하니 냉장고 속 물건들은 다 어쩌나 – 일단 하루는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 걱정은 되지만 결정되고 나니 마음이 아까보다는 정리가 되고 차분해졌다.

우선은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닦아주며 어떻게라도 냉장 내동실의 음식들이 조금 더 길게 잘 견뎌 주기를 바라며 냉장고 문을 최소한으로 열어 안의 냉기를 유지하도록 했다. 머릿속으로 냉장고 물건 중 김치 냉장고로 옮겨야 할 것과 옮기는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신정애교사


      어린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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