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별곡 1 / 늙은 냉장고
냉장고가 너무 시끄럽고 오래돼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힘겨운 숨을 쉬면서도 여전히 반달 모양의 독특한 얼음을 알을 낳듯 한 통씩 거뜬히 만들어 내고, 냉동실도 냉장실도 고집 세게 서늘히 잘 버티었다.
시끄럽고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는 핀잔을 들어도, 냉장고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은 하면서도, 홈쇼핑에 냉장고를 팔면 눈이 반짝하고 관심 있게 챙겨 보면서도 속마음은 더 오래 우리와 함께 할 거라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이상 버릴 수는 없잖아, 이 정도로 괜찮은 냉장고 사려면 몇백인데' 냉장고 바꾸자는 가족들의 말에 응수할 수 있었다.
'문꼭 밀기'라는 쪽지를 써 붙이면서. ㅋㅋ 나도 어지간 하긴 하다.
냉장고 문 안쪽이 뜨끈하게 열이 나기 시작해서 어디 탈이 났나? 걱정이 되었지만 별문제 없이 잘 지내줘서 조용한 밤이면 서너 배 정도 더 크게 들리는 냉장고 소리에 아 진짜 너무 시끄럽긴 하다 하면서도 할아버지 방에서 기침 소리 들리면 안심하듯, 오히려 살아 있다는 신호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아침저녁 신경 쓰고 살펴본다 해도 머지않아 멈추는 날이 곧 올 거라는 각오를 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날이 이렇게 갑자기 삼복더위 한가운데 올 줄은 몰랐다. 애초에 무리한 기대였는지 모른다. 아니 예견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