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황

말문 터진 물건 42

by 신정애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잊고 말았다.

그냥 가만히 여기 있기만 한지 너무 오래되었다.

"어머 성냥이네. 통이 예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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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름이 성냥이고 예쁜 줄 알고 있다.

내 속에는 동그란 머리를 달고 가지런히 누워있는 길쭉한 막대가 들어 있다.

이것을 담고 있지만 무엇인지 모르니 답답하다.

"성냥개비를 하나도 안 썼네."

그래서 이것이 성냥개비인 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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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뭔가 했어. 성냥 통이 캔으로 되어 있네. 명동 성당이잖아."

"우와 성냥개비 색깔이 여러 가지야. 너무 예쁘다."

그렇게 예쁘다느니 하더니

내 속에 든 성냥개비를 포장한 비닐을 뜯어보지도 않았어.

도대체 나는 어디에 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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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 안고도 입을 다문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중에

커다란 낡은 상자하나가 우리 옆에 척 앉았어.

우와 뭐야?

큼큼. 우리랑 비슷한 냄새가 나지 않아?

노인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너무 낡았는데?

그래도 엄청 크고 힘이 세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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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신데 우리 옆에 이렇게 앉으시나요?

"나 성냥이지. 다황이라고도 해."

네? 성냥이라고요- 진짜요?

얘들아 얘들아 성냥이래 우리랑 같은 성냥이래.

"성냥개비가 빽빽하게 가득 들어 있던 큰 성냥통이야. 지금은 거의 다 쓰고 얼마 안 남았지만. "

와아, 그럼 성냥이 뭐 하는 건지 아시겠네요?

우리가 뭔지 몰라서 답답해하고 있었거든요. 가르쳐 주세요.

"오 -그렇다면 내가 우리 이야기를 해줄게."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지.


예전에는 부엌에 성냥이 항상 있었지.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니까.

큰 솥에 밥도 하고 작은 솥에 국 끓이고, 아랫방에 소죽도 끓이고 군불도 넣어야지.

다황 어딨노?

통에 성냥이라고 버젓이 쓰여 있어도

아버지와 할배는 늘 다황이라고 나를 찾았지.

그 동네에서는 모두 다황이라고 불렀거든, 그래서 지금도 난 다황이란 이름이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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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촛불, 호롱불, 남폿불 켜야지.

석유곤로에 불을 붙이고 저녁을 해야지.

착화탄에 불을 붙여서 꺼진 연탄불을 피워야지.

여름이면 모깃불에 쑥덤불에 불붙여야지.

겨울이면 들에 나가 둑을 태워야지.

하루에 몇 번씩이나 할아버지 담뱃대에 불을 붙여줘야지.

어른들 주머니 속에 담배와 짝꿍으로 붙어 다녔지.

애들이 날 숨겨가서 불장난하다 걸려서 혼나고 뺏기고

심심할 때는 성냥개비 쌓기도 하고

성냥 허리를 부러뜨려 이쑤시개로 쓰는 사람도 있었지.

아, 성냥 머리가 동그라니까 귀이개 대신 귀를 파기도 했어.

성냥개비 옮겨서 만드는 수학 도형 문제도 있었다니까.

식당이나 다방이나 상점은 가게 이름을 쓴 성냥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주었지.

그런 성냥통을 모으는 수집가도 있었지.

그땐 이렇게 여기저기서 나를 찾고 불러댔지.

얼마나 바빴는지 몰라.

언제나 모든 집에 주머니에 당연히 우리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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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는 눅눅해서 불이 안 일어나 못 쓰게 되면 엄청 아까워했지.

성냥은 바짝 말라 건조해야 불이 잘 켜져.

어둠을 밝혀주고 맛있는 음식을 익히고 따듯하게 방을 데우는 그 모든 시작에 우리가 있지.

이런 게 우리의 일이었어. 어때 너무 근사하지? 멋지잖아.


그런데 라이터라는 게 나오더니 머지않아 토치가 나오고, 우리는 갈 곳을 잃고 말았지.

너희들처럼 기념품이나 장식품이 되어 버린 거야.

생일 케이크엔 초랑 긴 성냥개비를 아직은 넣어 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라이터나 토치로 불을 붙이더라고

안 꺼지고 좋으니까.

성냥이 세상에서 없어지기 시작한 거지.


여기까지 이야기 한 다황이 성냥들을 보며

"너희들은 한 번도 불을 켜 본 적이 없다는 거지.

자 성냥개비가 어떻게 불을 켜는지 내가 보여줄게."

있는 힘을 다해 성냥개비가 통 옆구리를 확 긋자 화라락 불꽃이 피어나며 세상이 환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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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예쁘다.

모두 놀라서 눈이 커다래졌어.

불빛이 눈에 비쳐 반짝거렸어.

하지만 몸이 타들어가면서 아아, 금방 불은 사그라들고 꺼져버렸어.

"불을 킬 때마다 하나씩 우리는 사라지는 거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듯 말했어.

그리고는 이야기를 이어 갔어.


그래도 지금까지 나를 쓰는 사람은 할머니였어.

새벽마다 기도 초에 불을 켜시거든.

할머니가 내 몸을 확 그으면, 긁히며 일어나는 뜨거운 느낌. 황 냄새가 나면서

화르르 환한 불이 초로 옮겨 붙을 때 기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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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 줄어들어 몇 개비 남지 않는 것을 기뻐했지.

그래야 할머니의 기도가 많아지고 할머니의 소원도 이루어질 테니까.

할머니와 나는 매일 새벽 서로 만났어.

내가 줄어들듯 할머니가 나를 긋는 힘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꼈지.

그럴 땐 내 머리를 더 힘주어서 그었어.


어느 새벽 할머니가 오시지 않으셨지.

나는 바로 모든 것을 알았지.

할머니와 같이 내 생을 끝내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나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랐는데 말이야.

그 뒤로는 내가 할머니의 제사상의 초에 불을 붙이게 되었어.

그날은 슬프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아서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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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와 같이 기도 초에 불을 켜고 기도를 했고

제사상의 불을 켜며 할머니를 생각하고

가끔 생일날 가족들 앞에서 촛불을 키는 기쁜 일을 하는 내가 참 좋았어.

그리고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성냥개비를 담고 아직은 여기 너희들과 같이 있는 거야.

난 형편없이 낡고 늙었어.

허리가 툭 툭 부러지고 머리에 묻은 황도 다 떨어져 나간 대머리가 되었어.

통 옆에 칠도 다 벗겨져서 몇 번씩이나 그어야 불이 일어나.

아예 불이 안 일어나기도 해.

이런 내가 젊은 너희들 옆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거지.

그리고 내가 들은 이야기 중 제일 슬픈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해줄게.


성냥들은 아무 말이 없이 조용해졌다.

늙은 다황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정말 멋져 보였다.

우리도 언젠가 기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맘 속에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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