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정애 Aug 07. 2024

쩍벌 곰돌이

내가 박살 낸 것들  13

백화점에서 곰돌이 키링을 샀다. 가방에 다는 장식인 키링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는데 곰돌이의 매끈한 피부와 벌려 앉은 통통한 팔과 다리와 귀여운 얼굴, 상아색 곰돌이와 너무 잘 어울리는 무광 금색 체인과 보석이 박힌 작은 주사위가 너무 예쁜 데다 세일까지 하니까 샀다.

  

 처음에 몇 번은 멋 부리며 매달아 다녔지만 조심성이 없는 내가 일상의 가방에 걸고 다니기엔 걸리적거려서 불편하고 곰돌이가 깨질까 신경이 쓰였다. 차려입고 작은 핸드백에 달아야 빛이 나는 건데 그럴 일이 거의 없어서 곰돌이는 액세서리 장에 모셔지게 되었다. 아무런 선택도 못 받고 늘 그 별궁에서 기다리는 후궁과 같은 신세가 된 거다. 어쩌다 가끔 눈에 띄면 아 곰돌이 하면서 들고 한 번 봐주고 다시 제자리에 놓는 정도였다.  

    

오- 네가 가야 할 곳이 생겼어. 반갑게 곰돌이를 꺼냈다. 가방처럼 외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존재를 보여 줄 수는 있는 곳, 조명에 모빌처럼 달아 주기로 했다. 무거운 곰돌이에겐 약간의 위험이 있지만 -만든 조명이라 그 자체도 썩 안정적이지는 못해서 - 그래도 딱 그 자리야. 답을 찾아서 좋았다.


 신이 난 마음이 급했나 걸기도 전에 곰돌이를 그만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다리 하나가 의자 사이에 떨어져 나가 있었다. 왼쪽 허벅지가 절단되고 만 것이다. 초연할 때도 되었지만 이 번 만큼은 달랐다. 악 소리도 안 나왔다. 비싼 거라서? 너무 예뻐서? 몇 번 써보지도 못한 새 거라서? 아니, 곰돌이와 동강 난 다리를 보는데 내 허벅지가 아렸다.


순간접착제의 기적을 바라며 수술에 들어갔다. 본드가 너무 많아도 적어도 안 되고 바로 붙여도 안 된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쌓인 나의 감을 믿고 떨어진 부분을 정교하게 맞붙이고 누르며 하나 둘 셋!

2-3미터 거리에서는 감쪽같지만 50센티 거리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금이 간 다리로도 앞으로 쭉 뻗는 어려운 자세를 거뜬하게 유지하고 조명에 매달려있는 곰돌이. 배에 힘을 어지간히 주고 있어야 할 텐데도 찡그림도 없이 여전한 고급스러움과 귀여움을 동시에 발산하며 쩍벌 포즈를 당당하게 하고 있다.


나도 그  일들은 잊고  잘 살고 있지만 가끔 매달린 곰돌이가 심심해 보여 살짝 흔들어 주다가 다리 한쪽이 뚝 떨어지는 상상이 스쳐서 아찔할 때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녀와 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