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살 낸 것들 17
어쩌다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연습용 바이올린을 싸게 같이 구입해서 시작했는데 원래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면 몰입해서 정신도 못 차리고 한다. 바이올린이 나와 잘 맞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음악적인 감각이나 소질이 전혀 없음에도 열심히 하는 내가 대견했는지 남편이 활을 선물했다.
'좋은 활을 먼저 쓰다 보면 다음에는 좋은 바이올린을 갖게 될 거야' –라는 메시지와 함께.
쓰던 것보다는 약간 더 무겁고 손 잡는 부분도 섬세하고 예쁜 활이었다. 활과 함께 온 송진도 케이스가 예쁘고 –. 좋은 활을 쓴다고 거기서 거기인 내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리 없겠지만 어쩐지 소리가 깊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근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연습을 하고 잠시 쉬면서 무심히 바이올린 활 끝이 바닥을 톡 쳤는데 잉? 활 털이 힘없이 널브러졌다. 놀라서 보니 털을 잡고 있는 활 머리 부분만 톡 깨져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느닷없는 한 순간의 일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무리 내 손이 마이너스라 해도 이건 어이가 없었다. 한 번도 이런 걸 본 적이 없는지 선생님도 놀라셨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수화기 너머 당황하는 표정이 그려졌다.
그냥 봐도 이건 수리 불능이 확실했지만 그래도 깨진 부분사진을 악기사에 보내서 알아봤다. 나무 자체가 떨어져 나간 거라서 어떻게 수리가 안 된다는 당연한 답을 받았다.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버리는 것도 간직하는 것도 용납이 안 됐다. 순간접착제로 깨진 부분을 붙였다. 살살 감아서 털이 어느 정도 팽팽 해졌다. 조심조심 켜봤다. 심약한 소리를 낸다. 언제 톡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붙어 있다. 싸구려 활로 연습한다.
선생님이 떠나기도 했지만 활 때문일까? 나의 바이올린 의욕도 줄어들며 바이올린 연습이 시들해졌다. 바이올린도 부러진 활도 가방 속에 넣고 지퍼를 닫아버렸다. 그래도 처음에는 가까이 손 닿는 곳에 두고 곧 열고 연습학 것처럼 했는데 그다음엔 점점 구석으로 가더니 결국 옷장 위로 올려졌고 먼지만 쌓이고 있다.
잠자는 농 위의 바이올린, 포기도 다시 시작도 힘든 내 마음의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