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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08. 2024

물고기와  꽃병

  내가 박살 낸 것들 15


 꽃병이었다. 손잡이가 달린 길고 무거운 유리 꽃병. 뭘 꽂아도 잘 어울렸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키운다고 해서  갑자기 꽃병은 어항이 되었다. 언제든 어항에서 꽃병으로 꽃병에서 어항으로 오 갈 수 있었다.


물을 갈아 주다가 놓쳐서 어항을 깼다. 빨간 아기 구피 두 마리는 얼른 구했지만 한 마리는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걸 못 잡았다. 아이들은 어렸으니까 니모를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물을 따라 강으로 갔을 거라고. 꽃병도 함께 사라졌다.  


한동안  꽃병을 사지 않고 살았다. 입 넓은 물병이나 컵, 도자기, 항아리, 유리병, 어떤 데라도 꽃을 꽂으면 꽃병이 된다. 꽃은 어디에 담아도 예쁘지만 꽃 색깔이나 모양과 어울리는 그릇이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근래에 꽃병 두 개를 샀다. 금박 물방울이 있는 화병은 그냥 보면 너무 예쁜데  꽃보다 그릇이 더 튀어서 어떤 꽃도 쉽지 않다. 꽃 봉오리가 펴지는 듯 볼륨감으로 살짝 멋을 부린 투명한 꽃병은 어떤 꽃도 다 품어내는 재주가 있어 더 자주 쓰게 된다. 사람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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