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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20. 2024

꽃만 말고 잎 마음도

죽은 나무와 산 나무 10

이팝을 처음으로 본건 37년 전 첫 발령지 청송에서였다. 운동장 가장자리 울타리 쪽에 큰 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는데 봄이 오자 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나무가 온통 흰 눈이 내린 듯, 크고 둥그런 흰 솜뭉치인 듯 너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렇게 환상적인 나무는 처음이었다. 낯설고도 예쁜 이름, 이팝도 알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도시의 곳곳에, 거리의 가로수로 이팝나무가 등장해서 반갑기도 하고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흰 꽃이 나무 전체에 실타래처럼 피었을 때 관심을 두다가 꽃이 지고 나면 나무 그늘 아래를 다니지만 이팝나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냥 가로수가 된다. 나도 그렇다.


학교 마당에  이팝나무가 몇 그루 줄을 서 있었는데 가지 치기를 하길래 옆에 어슬렁거리다 멋진 가지 하나를 가져왔다. 이팝아, 너는 가지가 파리 개선문 도로처럼 뻗는구나. 그렇게 오래전부터 너를 알았는데도 꽃피는 너만 알았나 봐.


우산 살 같이 사방팔방으로 뻗은 가지가 거창해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겨우 물통에 꽂아 주었다. 그렇게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팔 벌려 나와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버려지는 잔가지들은 병에 꽂아 두니  꽃과 또 다른 활기참으로 교실이 환해졌다. 코로나 때라 아이들이 없이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봐야 하는 게 아쉬웠다. 다른 꽃과 같이 꽂아도 자연스럽다. 잎이 다닥다닥나지 않아 공간이 있어 답답지 않고 동그란 모양도 명랑하다. 


죽은 이팝나무 가지는 바짝 말라 단단해져, 자신의 다음 생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를 품고 대기 중이다. 

나에게 이팝은 세상이 온통 그리움으로 가득하던 시절,  낯설고 신비로웠던 하얀 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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