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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룽이 Jul 07. 2024

소소한 행복과 잔잔한 감동

“Chaos is a ladder”

연속 며칠 동안 낮 기온이 40도에 임박하는, 매우기(梅雨季)가 지난 상해의 여름이다. 지난 2-3주에는 비가 너무 와서 주말에 집콕했다면 이번 주말부터는 강렬한 햇빛과 폭염 때문에 굳이 밖에 나갈 동력이 없다.


일요일 아침 개운하게 눈이 떠져서 시간을 체크했더니 겨우 7시 10분, 주중에는 알람 없이 불가능한 타이밍인데 늦잠을 자지 않을 이유가 없는 일정 없는 주말에는 꼭 이렇게 일찍 깨는 사람이 나뿐은 아니겠지. 오늘은 의외로 토스트와 아메리카노로만 가볍게 준비된 아침을 먹으면서 남편과 토론을 했다. 할 일도 없는데 지하 1층에 있는 헬스장에서 공짜 에어컨 바람 좀 쐬볼까?


이사 온 지 8개월도 넘지만 지하 1층 24h 헬스장에 가본 지 겨우 10번 정도, 그것도 저녁 8-9시 때에만 가봤던 지라 아침에 사람이 많지는 않을지, 지하라 낮이라도 어둡지 않을지 궁금했다. 

그랬던 우리의 눈에 들어온 뷰는:

다양한 각도로 사진 몇 장 찍었지만 그래도 이 사진의 분위기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일단 헬스장에 있은 45분 내내 나와 남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주말이라 다들 늦게 일어나는 건지 아니면 진짜 아침형 인간들은 8시 전에 운동을 끝내는 건지. 아, 여기 사는 사람들 80% 이상이 나와 남편처럼 이곳의 존재를 “무시”했을 수도 있겠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10분 정도 보행거리에 위치한 다른 헬스장에 가기 귀찮을 때 집에 누워 있는 대신 여기에서 러닝머신이라도 뛰었을 텐데.


뒤늦게 알아버린 이곳의 가치. 

덕분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 일요일 오전이다. 






꼭 이러루한 새로운 발견이 아니더라도 나는 평소 소소한 것들에 나름 많이 감사하려고 하는 편이다. 안 그러면 평소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어려우니까. 가장 직접적인 스트레스는 당연하게도 회사에서 받는 편이지만 실제적인 업무 scope 혹은 인간관계 때문에 받는 부분이 아주 적은 편이라 대부분은 당일 해결이 된다. 덜 직접적이지만 은은하게 오래가는,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비집는 건 “뉴스”들이다. 여기저기에서 보이고 들려오는 요즘 사건들.


국제적인 시사를 접할 때 내 정서는 평온한 편이다. 지역 별 전쟁이나 충돌 등은 안타깝지만 최대한 팩트만 골라 들으려고 노력하고, 어느 나라 대선 준비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는지 누가 갑작스럽게 사임했다든지 이런 뉴스들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세대, 경제나 회사 상황, 항업 트렌드 등에 관한 뉴스는 최대한 감정개입을 하면서 디테일하게 캐치를 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금융회사에서 발생한 사건 하나가 직접적으로 이 세 카테고리에 완벽히 적중했다. 중국 top 금융회사에서 만 30살도 안 되는 젊은 엘리트 한 명이 자살을 했다는 사건에 관하여 샤오훙수나 위챗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새로운 콘텐츠들이 뜬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더니 안 뜬다. 아직은 중국에서만 이슈가 되는 건가…). 어쩌다 보니 이 분 정보도 다 공개가 되어버렸는데 어마어마한 학력(학교와 전공 둘 다)에 로컬과 글로벌로 다양한 스펙, 그리고 중국 금융권에서 제일 들어가기 어려운 회사에 입사를 한, 심지어 얼굴까지 예쁘다고 알려진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


이 분 지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엘리트의 자살 이유에 대해 분석을 했는데, 대체적으로 3가지 이유로 귀납이 되었다.


1. 예기치 못했던 경제상황 악화

중국 금융업은 타 항업과 비교 시 지나치게 높은 급여 때문에 코로나 시기를 시점으로 점차 급여를 낮추기 시작했다. 이 분의 월봉은 지난 2-3년 사이 월 100k CNY(한국돈 1900만 원)으로부터 올해 상반기 35k CNY(한국돈 660만 원)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아마 이 분 남편 급여도 비슷한 이유로 함께 낮아졌다고 하는 얘기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 타격은 2배로 크다고 생각해야 하나, 게다가 요즘 회사마다 인원감축을 진행하기에 언제까지 출근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요즘의 회사원들은 다 조마조마하다.


2. 대출받아 구매한 부동산

상해도 여느 국제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심 아파트의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웬만한 도심 신축 아파트 가격은 100k-200k CNY/m2 (1900만 원 - 3800만 원) 정도인데 이 분이 집을 구매할 때에는 아마 100k 월봉을 시작으로 매 년 쭉 오를 급여를 예상하며 골랐을 것이다. 이 부부가 감당해야 하는 대출의 매 달 상환금액은 60k CNY(한국돈 1100만 원) 이상이라고 한다. 하필이면 상해 부동산 가격은 2-3년 전 최고봉을 찍은 뒤 쭉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언젠가 다시 오르겠지만.   


3. 임신 우울증

상해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산후우울증에 대한 사람들이 인식이 보편화가 되어 가는 편이라 임신과정에 겪을 여러 스트레스,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 좋은 상황이라 부부사이에 쉽게 해결했을 문제들이 확대가 되면서 잦아질 다툼들. 그리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분 남편 과거나 성격에 대한 얘기들도 인터넷에 떠돈다. 나는 임신을 한 적도 없고 나중에도 없을 것이니 임신 우울증이 어떤 느낌인 지 알 수는 없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어떨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상해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 부분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냐고? 알고리즘 때문인지 아니면 주변 지인들 특수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비혼주의, 딩크 이런 카테고리로 분류될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참고로 2023년 상해 출생률이 0.64더라? 한국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나뉜다. 곳곳에 기회가 널렸다고 알려진 긴 30년은 이미 지났고 현재의 20대들은 기회 대신 나날이 심각해질 취업난을 겪을 것이라 예상이 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엘리트가 너무 고생 없이 순탄하게 잘 살아왔기에 자그마한 역경 하나 못 버티고 목숨을 버렸다거나, 월급이 낮아져 봤자 35k는 어마어마한 숫자라 (상해 최저임금의 5배 정도) 배부른 소리라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사람 사는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그에 따른 생각방식 및 관점의 차이 역시 엄청날 수밖에 없으니…






내가 이 사건 당사자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주변에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지인이나 지인의 지인들은 적지 않을 거라 추측한다. 심지어 나와 내 남편도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니다. 지난 글들에서 언급한 적 있는 우리 회사 상황은 어찌 보면 이 사건 당사자가 다녔던 그 회사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 금융회사가 아니라 모든 사람 급여를 강제적으로 이 정도로 낮출 일은 없겠지만 (없겠지?).


회사 인원조정은 이미 진행 중이다. 우리 팀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고 업무의 특수성이 어느 정도 있기에 아직까지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회사 거의 모든 큰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내 남편 역시 지난 3-4주 내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심지어 며칠 정도 둘이서 진지하게 만약 남편이 회사에서 당장 짤리게 되면 어쩔지 토론을 하는 시간도 가졌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만약 진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배상금 받은 뒤 올해 안으로 당장 한국으로 이사하자고 건의했다. 어차피 몇 년 뒤 한국 정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5년 정도 앞당긴다니 설레지 않냐면서. 만약 진짜 남편이 짤리게 되고 내 승진마저 뒤로 미뤄진다면 나도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미래 계획에 대해 아주 오픈마인드라고. 물론 최신 상황을 보면 남편이 당장 짤릴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정확히 1년 전, 새 FY(회계연도)를 시작하면서 조직했던 미니 타운홀 미팅에서 난 “왕좌의 게임” 리틀핑거의 명대사를 인용했었다. “Chaos is a ladder (혼돈은 사다리).”


승진비례나 보너스 상황 등이 예전보다 많이 축소된 상황이라 회사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는 것을 예감했었다. 나는 팀원들에게 고리타분한 “라떼” 메시지가 아닌, 조금은 새로운 방식으로 임팩트 있게 새 FY를 시작하고 싶었고, 결국은 임기응변으로 이 대사를 인용해 버렸다. 


분명히 우리 팀은 정직하고 밝은 사람들로 모였는데 떠오른 대사는 악역이 했던 대사라니.


아무튼 그때 그 멘트는 성공했고 나는 며칠 전 부서 entry-level급 팀원과 있었던 1 on 1 미팅에서 이 대사를 듣게 되었다. 단순히 작년 기억으로 얘기를 꺼낸 건지, 아니면 정말 우연인 지는 모르겠지만,  팀원은 현재 회사 상황이 아쉽고 미래가 두렵긴 해도 우리 팀에게 절호의 기회인 것 같다면서, 새로운 FY가 기대된다는 얘기를 했다. 회사 안 좋은 뉴스가 여러 SNS에 실시간으로 도배가 되는 와중에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팀원이 있다는 사실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소소한 행복과 잔잔한 감동.

이런 것 덕분에 기분 좋게 사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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