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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Mar 06. 2018

critic 유령의 높이 : 최성록의 탐사록

The Height of Phantom

유령의 높이 : 최성록의 탐사록



글 조주리


A New Perspective


“언제나 나를 위해 존재해 왔던 그곳, 바로 이특별한 세계에서 나는 태어났습니다. 이것(It)은 나를 사유하게 합니다. 친구이자, 보호자이기도 하죠. 이것을 통해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탐험할 수 있게 하여, 인간이 가진 호기심을넘어서도록 해줍니다”[1]


드론계의 애플이라 불리우는 중국DJI사의 새로운 시리즈, 팬텀 3의 광고에 등장하는 문구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드론’(Drone)이다.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듯, 소년의 여린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이 짧은 영상의 제목은 “새로운 시각(A New Perspective)”이다. 공중에서 부감 촬영된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함께 인간의 신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들이 영웅적으로 서사되고 있다. 도전, 탐험, 호기심 등의 동종 어휘로 버무려진 이미지들의 클리셰, 투명하리만치 뻔한 의도가 드러나는 나레이션. 그럼에도 시선을 강탈하는 지점은 우리의 시점이 세계의 저 아래가 아닌, 드론의 그것에 포개질 때 파생된다. 우리의 눈은 의인화된 기계의 시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탐사의 대상이 아닌 탐사의 주체로 변모한다.


드론의 시선에는 현기증도 무게감도 없다. 정밀하게 제어되는 기계새의 시선에 포획된 세계의 모습이 흔들림 없이 수려하다. 그런데 재미있다. 이 놀라운 시각기계를 창안하고, 그 기계를 조정하는 것 또한 인간의 두 손인데 ‘드론에게 시킨 일’은 어느덧 ‘드론님(!)이 하시는 일’이 되어, 넓고 커진 시야를 통해 새로운 사고를 유도하고, 인간 호기심의 한계를 뛰어 넘도록 도와주시니 말이다.


 Scroll Down Journey  HD animation, 06:21mins, 2015



Explorer, 최성록 : 탐사기기의 탐사가


한편 페인팅에서 출발한 미술가, 최성록은 아무래도 ‘기계덕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그가 컴퓨터 툴을 자유롭게 가지고 놀며, 디지털 매체에 밀착된 뉴미디어 작가라는 뉘앙스만은 아니다. 최성록은 테크놀러지 자체의 역사성과 미학에 줄곧 관심을 쏟아왔고, 작가의 이러한 기계비평적 시선은 종종 작업으로 발현되어 왔다. 지난 십년 간 최성록이 전개해왔던 다양한 작업 가운데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것은 이른바 ‘탐사기기의 탐사가노릇이다. 화성탐사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은 <Missionto Leo>와 <The Rocver Project>(2006)를 필두로 Sifi적 취향과 우주적 상상력이 투사된 일련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미지의 세계에서 유영하는 탐사기기에 대한 매혹과 환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작가의 관심은 탐사기기의 형태론에만 고착되어 있지 않다. 최성록은 마치 자율적 생명체처럼 스스로의 몸체를 구동해 나가며 새로운 세계를 탐사하는 로보틱스(Robotics)에 내장된 인지 체계와 그것이 표상하고 구성해내는 특수한 시공간성으로 관심사를 이행해왔다. 따라서 최성록이 동시대의 새로운 시각 기계장치 드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어찌 보면 이전의 탐사기기를 소재로 취한 작업들이 가상적 형태론과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작업이었다면, 완제품으로서 시장에 출시된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번 작업은 그 동안 품어왔던 비평적 관심사가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되었다.

작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질 작업 Scroll DownJourney와 A Man with a Flying Camera는 인간이 이 세상을 보다 효율적으로 보고 관찰하고 탐험하는 기본적 본능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들에 의해 구축된 혹은 그 도구들에 의해 보여지는 우리의 세계에 대한 탐험 이야기이다.”


-최성록 작가노트, 2015년 9월 6일


작가노트에서 최성록은 ‘시점의 획득’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작가의 인식처럼, 근대 광학 기구의 발명과 눈부신 발전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보다 높고 넓은, 탈인간적 시점을 제공하였다. 그리고이는 곧 시각적 전유를 통한 세계에 대한 지배력 획득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카메라의 시점이 어떻게 획득되고, 획득한 시점이 어떻게 세계를 재-획득해 나가는지를 추적하는 익스플로러(explorer)다. 이를테면 탐사기기의 탐사가인 셈이다.       


결국 신체의 한 부속으로 귀착歸着되는 인간의 눈과 달리, 오직 시선만이 박리된 카메라는 사각지대에 숨어cctv로 잠입했다, 질주하는 자동차 내부의 블랙박스로 화했다, 사람의 위장 깊숙한 곳까지 꿰뚫는 내시경이 된다. 최신소재의 외피를 두른 카메라는 수륙양용의 무시무시한 생존력과 분신술을 갖춘 유령과도 같다. 따라서 이번 전시 <유령의 높이>에서 팬텀이라는 제품명을 딴 드론은 이번 작업의 대상이자 주체이며, 의미론이자 방법론이다.  



 Virtual Vertigo Game, 스크롤 다운 저니


장충동의 작업실. 모니터를 통해 <Scroll Down Journey>를 처음 봤을 때 이내, 그의 전작 <Operation Mole>(2012)이 떠올랐다. 무려 8채널로, 가로 방향으로 애니메이션을 이어 붙인 이 작업은 제목 그대로 두더지처럼 지하세계를 파고들며 전개되는 가상의 여행기다. 주제의식과 내러티브를 조직하는 방식이 동일하진 않지만, 독특한 시점과 방향성의 토포그래피(Topography)를 통해 익숙한 시공간을 사뭇 다른 각도에서 탐사해나가는 여행(Journey)의 추진력이  비슷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작가의 설명을 빌자면, "스크롤다운 저니"는 디지털 스크린 안에 구축된 이차원 세계 속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기계의 시점으로 바라다본 땅 위 풍경을 정사영법에 근거하여 디지털 페인팅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업이다. 회화적 손맛이 녹아든 독특한 디지털 페인팅 앞에서, 몸은 정지해있고 화면은 자동차의 속도감을 매개로 하강운동을 계속한다. 그리고 여러 단계의 풍경 사이클을 따라 ‘스크롤다운’ 되던 화면은 어느 틈에 툭 끊긴다. 화면의 하강운동과 전방을 향하는 시선이 교직하며 만들어 내는 역치 수준의 현기증(vertigo)을 채 극복하기 전, 다시 스크린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와 재생된다. 도시문명사의 질곡도 일상의 구체성도 휘발된, 마치 게임음악처럼 만들어진 사운드를 들으며 화면을 응시하던 두 눈은 어느새 구글 뷰어가 된 듯 작가가 재편한 도시의 지형지물을 바지런히 훑는다. 익숙한 이 도시의 기호들로 배치된 화면임에도, 아래로 내려다 본 도시의 풍경은 처음 본 문명게임처럼 생경하기만 하다.  



 A Man with a Flying Camera  HD Video, 07:00mins, 2015



A Man with a Flying Camera, 세계를 ‘드론’하다


올 여름 최성록은 새로 구입한 그의 유령, 팬텀과 함께 촬영이 가능한 서울 근교의 다양한 장소로 출사(出寫)를 다녔다. 작업실에서 드론의 시점으로 내려다 본 도시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후반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작업실 바깥에서 작가는 ‘Flying Camera’, 즉 드론을 조정하는 사나이가 되어 촬영법을 익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영상 작업을 내놓았다. 따라서 <A Man with a Flying Camera>라는 제목은 작가 자신에 대한 뚜렷한 묘사다.


동시에 이는 1920년대 소비에트 몽타주 학파의 대표적 아이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Man with a Movie Camera)’에서 차용한 제목이기도 하다.  베르토프는 20세기에 출현한카메라를 ‘키노 –아이”(Kino- Eye), 즉 물질의 속성과 각 사물의 내적인 리듬에 부응하는 새로운 시각 기관으로 보고 인간의 눈으로보지 못하는 순간들을 카메라의 시선과 몽타주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드론을 활용해 새로운 시각을 획득하고 한 최성록의 작업은 이러한 고전적 키노 아이 이론과 맞닿아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화면 속에 등장한 <A Man with a flying Camera>나 드론 촬영을 바탕으로 한 작업 <I’ll Drone You>시리즈를 보면, 그것이 단순히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론을 가르치는 계몽주의적 관점이나 수퍼 아이(super-oeil)로서의 카메라의 감각 기능을 신화화 하려는 충동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화면 구성 역시 영화적 몽타주와 거리가 있다.


비교적 근거리에서 내려다보며 촬영된 지표면의 풍경과 그 안을 횡단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질감은 어찌된 일인지 휑댕그래하며, 심지어 조작된 화면인가 싶게 회화적으로 다가온다. 숨가쁘게 ‘드론’ 당하는 느낌은 온데간데 없이 나른하다. 실제 자신이 조종하는 드론의 카메라 아래 퍼포머로 등장한 최성록은 드론의 주인이자 모델로서 이중적 역할을 수행하여,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를 왕복한다. Point of Interest 기법, 즉 카메라가 자신을 표적으로 삼아 촬영하도록 설정함으로써, 대상을 집요하게 좇는 기계시선의 방향성과 대상과의 거리감을 스스로 연출한 움직임과 포즈를 통해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작은 유닛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어쩐지 생명력이 거세된 듯한 모습이 기묘하다.


우리는 이미 기계적 시선과 시점에 인간의 눈을 동기화하여 보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학습해왔을 것이다. 베르토프가 선언한 것처럼 우리는 이미 눈(eye), 기계적 눈(mechanicaleye)이다.[2] 그러나 세계와 세계의 운동을 ‘보도록 도와주는’ 카메라의 눈을 끝없이 의심하고 경계한다는 점에서 1920년대와는 먼 세계에 와 있다. 게다가 카메라를 든 사람은 정말이지 너무도 많아졌다.


부지런한 탐사가, 최성록은 인간의 눈보다 더 멀리, 더 정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계의 도움을 받는 동시에 그 시선의 높이와 시점의 방향을 도해해 볼 것을 제안한다. 스쳐 지나가는 삶을 좀 더 예리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면밀하게 들여다 보던 일상을 좀 더 뭉툭하게 관조할수 있도록.


유령의 높이에서 내려다 본 최성록의 탐사록은 방향을 틀어 계속 될 것이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o_cdhpfEmLM

[2] I’m an eye. A mechanical eye. I, the machine, showyou a world the way only I can see it. I free myself for today and forever fromhuman immobility. I’m in constant movement. I approach and pull away fromobjects. ― Dziga Vertov, “ Extraits de l’histoiredes kinoks” (1929),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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