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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Jul 31. 2019

Dear Mr. Jack Black

미스터 블랙에게로, 첫 번째 편지 episode no.1

잭 블랙님에게, 


안녕하세요.
편지를 드리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저는 한국의 문화예술계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며, 가끔은 미술 전시를 기획하는 쥬니어(jr)라고 합니다. 새로운 일의 조건과 영역을 즐겁게 탐색하고 즐기는, 당신의 오랜, 열렬한 팬입니다. 이미 여러 SNS 플랫폼을 통해 배우로서 잭님의 최근 활동상과 카일 씨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밴드 Tenacious D의 음반 및 콘서트 활동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주로 혼자만의 염탐이겠지만, 극장용 영화 외에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잊지않고 올려주시는 생생한 근황 사진과 새 앨범 포스트 아포칼립토(Post- Apocalypto)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쟈블린스키 계정에 올라오는 게임리뷰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틈틈이 새로운 소식들을 팬들과 공유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실은 잭님에게 직접 연락하여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 고민을 거듭하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바로 전달이 가능한 당신의 메일주소를 알 도리가 없어, 구글에서 알아낸 공식 메일(이메일이 아닌 스네일 메일!) 주소로 편지를 부칩니다. 캘리포니아주의 산타 모니카에 위치한 잭님의 홍보사무소는 제가 사는 곳인 서울시의 북한산 인근으로부터 대략 스무 시간이상 떨어져 있어 직접 찾아 뵐 수도 없고, 우편으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 미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지만,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 뿐입니다.


소공동 우체국에서, 5월


서설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말았군요. 본론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지난 몇 달간 잭 블랙 당신, 특히 뮤지션으로서의 당신과 잭 & 카일님 두 분의 밴드인 Tenacious D를 주제로 한 일종의 트리뷰트 전시와 출판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눈에 띄게 진행 된 것은 없지만, 머리속으로는 제법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트리뷰트 전시를 만들기 위해, 올 초부터 저 스스로를 포함하여, 잭 블랙과 잭 블랙의 음악, 그 외에 당신의 전방위적인 문화 생산과 활동을 지지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현대미술 작가, 뮤지션, 연구자, 그리고 제 주변친구들을 모았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누군가의 생애를 빠짐없이 조사하여 연대기를 구성하고, 그림과 조각으로 소환되는 방식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저희가 바라는 것이 그러한 영웅주의적 접근이나 재현술을 통해 기념 하려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당신은 생생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고, 매해 다른 시도들을 향해 어디론가 나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당신의 가진 삶의 기지와 배포, 그리고 한편으로 당신이 연기해 온 영화 속 캐릭터와 밴드 Tenacious D의 음악이 표상해내는 불가해한 끈기와 변화, 열성적 태도와 불량한 유머같은 요소들을 우리의 작업 안으로 흡수하고, 매 과정 속에 용해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제목을 <끈질기게, 끈질긴 (Tenaciously, tenacious)>이라고 지어 보았습니다. 당신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잭 블랙이라는 이름이 직접 거론되지 않는 방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한편, 전시와 함께 저는 한권의 작은 책 <The Tribute, 2019>도 구상 중에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음악 이야기를 담아내고, 1986년과 1994년, 그리고 2019년을 잇는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저자들과 접촉해 왔습니다. 낙원과 운명의 피크,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피어날 것 같습니다. 그 사이, 전시 장소와 날짜도 정해 보았습니다. 이 전시를 한국 음악 산업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 낙원악기상가에서 열려고 합니다. 당신이 와 본다면 아마도 홀딱 반할만한 그런 멋진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의 독립기념일인 8월 15일에 오프닝 파티를 열어, 소박하게나마 트리뷰트 연주도 할 계획입니다.  미술전시 공간인 d/p에서 약 4주간 전시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을 지원해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저희는 정말이지 운이 좋은 편입니다.


헌정서, <The Tribute, 2019>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등의 영역에서 활동 중인, 매우 개성 강하고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들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들 각각의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비공식 팬클럽이자, 시각 예술가들의 개그 동호회같은 것을 꿈끄며 출범한 우리는 이번 전시에서 각자의 작업을 소개하는 데 치중하기 보다,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일을 감행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손을 놓았거나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악기 연주와 밴드 합주, 작곡을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인데요! 


우선은 이름이 하나 필요할 것 같아,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곳인 마포구의 486-1번지를 떠올리며, 늘 먼나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역이라는 밴드명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지난 몇 달간 각자의 바쁜 일상을 쪼개 조금씩 작업들을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Tenacious D의 음악을 비롯해 예전의 우리가 열광했던 하드 록, 80년대 한국의 헤비메탈 음악을 오랜 만에 들으며 한 동안-연주의 부담을 느끼기 전까지- 우리는 정말이지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멋들어진 연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는 아닙니다. 어쩌면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한심하고 따분한 연주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해보려고 합니다. 지루한 과정이나 위대한 성취를 위한 준비물로서의 끈질김이 아닌 그저, 매일매일 무언가를 쌓아나가고, 문득 한 순간 즐거운 도약을 이루어내는 그런 경험을 기대하니까요.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웃음과 뻔뻔함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당신의 오랜 팬이었던 저는 언젠가부터 당신을 오프닝에 초청하는 일이 매우 적절하며, 썩 자연스럽기까지 한 작은 전시와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을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를 먼저 정하고, 역순으로 무언가를 수습해 나가는 그런 기획이었던 셈입니다. 우선은 사람을 모으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제목을 먼저 정해 버렸습니다. 전시 오픈 일까지 약 석 달이 남은 오늘, 첫 번째 초청 편지를 띄우게 되어 마음이 무척 설렙니다.

다가오는 8월 15일을 기억해 두세요. 우리는 서울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낙원악기상가 꼭대기 층에서 당신과 당시의 음악, 삶의 철학을 담은 트리뷰트 쇼를 열 겁니다. 특별히 부탁드릴 일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그 자리에 당신을 정중하게 초대하고자 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앙망합니다.

긴 편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애정과 기대를 담아, 쥬니어 드림 


2019년 5월 어느 날



-JR 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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