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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Aug 23. 2019

철(이)의 시간들

Too Fast! Too Loud! Too Heavy!

철(이)의 시간들 : Too Fast! Too Loud! Too Heavy!

 

 


예전 학교에는 유독 철이가 흔했다.

상철이, 기철이, 형철이, 윤철이.. 아니면 철이. 그냥 철. 鐵 .

건너 편에 영이와 순이로 호명되던 순한 소녀들이 있었을 것이다. 철이는 씩씩하고 똘똘한 남아에 걸맞는 그런 이름이다. 작명만 놓고 보자면, 그 이름에는 그 어떤 불순함의 기색도 없다. 시대를 거스르는 특출난 지성과 남다른 서정 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 골상학적으로 단단한 외양과 평균 이상의 골격, 맡은 바를 꼭 수행해내는 우직한 성정이 담긴 그런 이름인 것이다. 칠,팔십년대 국부를 끌어올린 기간산업이었던 중공업을 지탱했던 사람들, 그들이 살아냈던 시대의 주형, 질감과 온도를 담아낸 그런 남성적 명명.


1979년에 처음 제작되어, 국내에는 80년대에 방영되었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이름이 철이었던 것이 우연만은 아니다. 원작에서도 철이의 이름은 철이다. 일본 이름, 호시노 테츠로(星野郞). 즉 “별의 바다를 철길로 가는 소년”이라는 의미다. 영원히 죽지 않는 철인의 몸을 얻고자 안드로메다를 방랑했던 철이와 기계인간이었던 메텔의 기묘한 어울림,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우주공간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덩어리, 은하 철도가 전하는 촉감과 속도감은 시종일관 메탈 그 자체이다. 차갑고, 샤이니하고, 옹골차고, 비정하다.


우주항공과 조선해양, 토목건설 산업이 세계적으로 활황기를 맞았던 1980년대는 그야말로 철의 시대였다. 도시 안에 사회 기간시설의 골조가 잡히고, 대규모 주거기계 아파트 블록화가 완성된 시기이다. 개인의 기억 안에서도 그리 다른 풍경은 아니었다. 텔레비전만 틀면 등장하던 군부정권 출신 국가 원수의 반짝이는 골상은 날아오는 총알도 튕겨 낼 것 같은 단단함이 있었고, 광장이라 부를만한 곳마다 여지없이 커다란 철골 기념비와 꾸물꾸물하거나 동그란 모양의 조각들이 꼭 자리잡고 있었다. 제조업이나 건설업과는 무관한 일을 하셨던 부모님이 가져오신 돈봉투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쇠 냄새가 배어 있는 듯 했다. 그 즈음, 지금의 나보다도 젊었을 아버지가 몰고 다니던 대우차 르망과 아침 등굣길에 태워주셨던 은색 오토바이도 기억 한 켠에 남아있다. 자고 나면 솟아나 있던 철근 콘트리트 범벅의 멋-대가리 없는 건물들과 아스팔트 신작로들, 그리고 골드스타 혹은 삼성의 기업광고에서 본 듯한 금속 인간과 반도체의 추상적 이미지들.


여러 조각들이 모여, 유년기에 대한 편집된 기억은 대체로 차갑거나 지나치게 뜨거운 것들이다. 젊었던 부모에 대한 기억마저.  


돌이켜보면 엄혹한 검열과 감시 시스템이 잔존했던 80년대 말 90년대 초 대중문화 안에도 차가운 섹시함과 뜨거운 정동들이 서로 얽혀 꿈틀댔다. 80년대에도 이전의 유신 정권 시기의 민중가요에서 뻗어 나온 여러 지류의 포크 음악과 미국 팝음악의 번안가요, 엔카풍의 트롯트 음악들이 여전히 인기를 끌었다. 본디 록 지향성이 강했던 조용필을 필두로 한 크로스 오버적인 한국 가요와 TV 쇼에 적합한 비주얼 음악도 본격적으로 생산되던 시기다. 이 시기의 대중문화는 그야말로 만화경과 같은 어지러운 열기를 지펴낸다.


경제 발전과 문화적 팽창, 민주화 운동의 시기를 동시에 관통하며, 우리가 목도했던 정치와 사회, 정권과 민중, 전통과 현대성, 신문과 티브이 사이의 간극과 엇갈림들은 이내 현기증과 같은 문화적 징후들로 드러난다.


80년대에 매스 미디어에 처음 노출되었던 (TV와 라디오를 늘상 끼고 살았던) 나에게 자극적인 기억의 버튼은 1986년을 전후로 한 음악 씬의 대폭발 시기다. 1985년에 들국화가 출범했고, 뮤즈에로스의 심상욱을 중심으로 “메탈 프로젝트” 와 신대철이 속했던 “메탈 체인”과 같은 음악인들의 연대가 형성되었다. 이듬 해인 1986년 한 해동안 시나위와 백두산을 필두로 많은 록 밴드들이 일제히 메탈 음악을 표방하는 앨범들이 발표되었다. 1986년의 앨범 표지에 공식적으로 헤비메탈이라는 표현을 내건 시나위는 ‘크게 라디오를 켜고’라는 명곡을 남겼고, 1986년과 87년 두 해 동안 헤비메탈 밴드로서의 여러 가능성을 시도했던 백두산이 있었다. 검은 가죽 바지와 메탈 액세서리와 같은 요란한 코스튬과 과장된 무대 매너, 쇳소리같은 거친 샤우팅 창법과 상대적으로 순박한 노랫말은 일종의 헤비메탈 음악의 클리셰가 되어 종종 희화화 되기도 하지만, 후속 세대를 견인해 나갈 (임재범과 김종서, 심지어 달파란과 서태지까지를 포함한) 핵심적 작곡가와 보컬리스트들이 두루 거쳐간, 이례적인 황금기이다.


60년대 미 8군이 배출해낸 세션들의 연주 역량의 발전과 영미 음악의 카피와 번안의 시대를 지나, 자체적인 메탈 씬을 형성하고 고유한 음악을 생산해 내고자 했던 일련의 움직임은 상당히 흥미로운 궤적이다. 실제로는 닿아본 적 없는 영미권의 음악적 유산에서 출발했지만 개인의 고유한 정서와 한국적 특질을 담아내고자 멜로디와 곡 구성, 우리말로 된 노랫말을 창작해 내고자 한 노력들은 멀리는 미국이라는 대 타자, 가까이는 일본의 음악 씬과의 비교를 통해 비상과 하강의 좌표를 가늠케 한다. 내적 고뇌와 외적 발산, 열등감과 자신감은 그렇게 각각의 짝패로 움직이며, 시대의 음악을 쏟아냈다.


과격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한국형 메탈 음악의 실험과 대중의 호응은 그때는 몰라서 지나쳐 버렸던, 그리고 지금은 애써 알게 되었지만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잃어버린 철의 시간들이다. 단 한번도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주류였던 적이 없었던 헤비메탈은 80년대가 저물면서 자연스럽게 도태 혹은 명멸해버린 장르이다. 여전히 헤비 메탈을 표방하는 밴드들이 남아 있지만, 일종의 컬트적 장르가 되어 버렸다. 창작 주체, 음악 시장, 팬덤의 상호 지지 구조와 지속성은 미약했다.


누군가 헤비메탈을 80년대에 도래한 신자유주의적 음악이라고 말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하드 록에서 펑크와 디스코를 거치고 다시 하드 록을 계승한 시기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대처 수상 집권시기이기 때문일까. 60년대 히피들이 80년대에 전혀 다른 스타일로 귀환했다는 음악사관이, 글쎄 한국의 60년대와 80년대 상황으로 일반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의 80년대 전반에 깔린 문화적 자신감과 외부로의 팽창, 미국 문화의 한국적 수용과변용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잠시 타올랐던 시도로서 그 어떤 역설과 비범함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백두산의 1집 앨범명 <Too Fast! Too Loud! Too Heavy!>가 발산하는 의미는 음악의 장르적 특징만은 아니다. 너무 빠르고, 시끄럽고, 무겁게 내뿜는 시대의 공기에 대한 비유이기도, 온 몸과 정신을 다해 그들이 대면한 청춘의 시간을 돌파해 나가는 자신에 대한 수사이자 선언이기도 할 것이다. 이듬 해 발매된 2집 <King Of Rock'N Roll>은 ‘주연배우’라는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애초부터 세계 진출을 목표로 하여 영어 가사로 제작되었다. 이들의 전무후무한, 글로벌한 시도는 당시 대중문화 정책에 위반된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앨범 발표 이후 즉각적으로 공연 금지에 이어 앨범 판매마저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대단히 비극적이고 황당한 사건이다.


그러나 놀람의 포인트는 정부의 압제적 문화 정책과 급속한 밴드 해체 소식보다, 처음부터 국제무대를 염두하여 앨범을 제작했다고 하는 자신감의 실체와 해체 이후 멤버들의 행보에 있다. 홧김에 영국으로 떠나버렸던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이후 남다른 행보를 걸어 온 유현상의 소식을 듣는 일은 언제나 알 수 없는 회환과 호기심을 갖게 한다.


산업 역군, 중공업, 공장 제조… 이런 말들은 이제 옛 말들이 되어 버렸다. 을지로와 청계천, 낙원상가, 세운상가 이런 말들도 입 밖으로 꺼내어 발음하는 순간 언젠가는 소멸될 사어가 될 것 같아 기분이 별스럽다.


그 시절 그 많던 철이는 다들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회사의 중역으로, 대학의 교수로, 남다르게 성실한 뮤직 블로거나 LP판 수집가로,  색소폰 동호회 회원으로, 그리고 우리들의 아버지로 흩어져 그들의 지금을 살아 가고 있을 것이다.


너무 빠르고, 너무 소란스럽고, 너무 무거웠던 철의 시간들을 통과하며 그들에게 부과되었던 어떤 남성적 형질과 단단한 촉각들이 부드럽게 우아하게 마모되었기를, 더욱 가벼워졌기를.


우주를 달리는 철도에서도 도통 쉬는 법 없이 늘 이리저리 움직이던 청년 철이가 육십 개의 행성을 여행하며 영생을 사는 철인이 아닌, 평범하게 늙어가는 보통의 사람이 되기를 이윽고 소망하게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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