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랩소디 (WHITE RHAPSODY)>는 동명의 전시와 목표점과 과정을 공유하는 연구 모음집이다. 즉, 오랫동안 민족 색채로 작동해 온 백색의 면모들을 다양한 입장과 각도에서 살피고, 이를 통해 백색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감상을 열어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백색에 딸린 이미지와 말의 역사를 고쳐 읽고 새롭게 표현하는 일과 나란하게, 그러나 다른 호흡으로 누군가가 한참 전의 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어제오늘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몫이 있다면, 응당 그 역할을 하고 싶었다. ‘들여다본다’는 다소 미온적인 표현에는 범위를 미처 헤아리기 힘든 먼 시공,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만들어온 백색의 문화사를 별안간 해체하거나, 고착된 담론을 수긍하지도 않겠다는 두 의도가 투영되어 있다. 수긍과 수정은 동일한 무게의 깨달음, 그리고 즐거움이었다.
작년 가을 깨부터 올봄까지. 우란문화재단 전시팀의 우산 안에서 각각의 조사 방식과 그에 적합한 글쓰기, 이미지 수집이 진행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외부입력의 필자들에게 주어졌고, 백색을 생각하고, 자신의 언어로 쓰고, 다듬는 일에 작은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전문적인 학술 연구물들과 다소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다섯 글들이 어떻게 읽힐지 여전히 모르겠다. 버거움을 떨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로부터의 의견을 청취했고, 글쓰기를 완수하는 일보다 의견과 자료를 나누는 데 시간을 할애하였다. 정해진 시간의 끝자락에서 글의 마침표를 쉽게 찍을 수 없었던 심정은 더 풍성한 리서치, 우수한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남아서라기보다 여러 갈래의 서술이 지금의 시공에 적합한가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이러한 글쓰기가 연결되는 다음 지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백색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색채론이 아닌 역동적인 삶의 변화들을 담아 온 원경이자 지금 마주한 생생한 근경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오늘날의 세대가 대면하는 일상의 풍경과 물질적 세계, 추상적 미감이 육화된 시각 예술과 문화유산 모두를 포함한다. 또한 우리의 몸에 축적되어 특정한 반응과 기억을 이끌어내는 감촉이자 온도.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기억들, 역사가 개입된 무거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엇을 특정하여 살펴볼 것인가를 정하기에 앞서, 수많은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사람과 인공물, 건축, 도시로 백색의 반경을 확장하고 다시 좁혀가는 과정에서 물질태로 존재하는 백색들과 보이지는 않지만 백색으로 인지되거나 매개되는 어떤 감각들을 통과하는 미시적 소재, 삶의 정경, 세계의 모습이 재빨리 그려지는 듯했다.
시각적 계보들을 거슬러가는 일, 백색에 덧입혀진 말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속도가 나는 듯했지만 이내 지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실체적 본질을 증명하거나, 물질과 정신의 내·외피를 짝지으려는 일, 그것의 오류를 찾아내는 일, 아무것도 없다고 외치는 일 모두 이미 백색의 본질이 있다고 가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시간을 흘려보낸 끝에, 공동의 연구는 좀 더 개별화되었다. 각자의 ‘흰’들을 가까이에서 찾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도출된 다섯 갈래의 이야기들은 백색의 표면과 말단으로부터 시작해 점차 내부로 파고들거나 신체와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공동의 태도이자 접근법이었다. 안면, 직물, 가정의 실내, 도시 풍경, 문학적 언어와 같은 연구의 출발점은 결국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 내기 위해 채택된 장치일 뿐이다.
박탈당한 백색을 복원하고자 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리서치/픽션의 방식으로 기술한 이야호의 <모두의 일>은 그것의 결핍을 가정하면서 출발한 이야기다. 소설적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의 구체성은 하나의 쌍이 되어 설득력 있는 백색 일대기를 향해 나아간다. 백색의 생성과 소거, 집단의 기획과 개인의 대응을 구조적으로 독해하게 만든다.
르포적 속성을 부분적으로 포함하는 이정은의 <화이트 인사이드>는 미백과 미백의 수행, 초월적인 아름다움과 이를 위한 그림자 노동의 굴레를 문화사적으로 살피는 과정을 포함한다. 광대한 시간성의 단층들을 통속적 이미지를 통해 예시하고, 디지털 시대의 담론으로 옮겨옴으로써 뷰티와 뷰티산업에 깃든 복합적 인종/민족 담론을 건드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둘러싼 건축 환경과 백색 인공물들을 살펴본 최호랑의 연구 <올림픽 시공간의 백색>은 국가라는 큰 주체에 의해 기획되고 연출된 삶의 풍경과 그 안에 담긴 군상을 포착해 낸다. 80년대 말은 도시의 흰색이라는 주제가 구체화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로서 도출되었다. 30년 단위의 긴 시차를 두고, 개인의 기억과 공식 기록을 연결하고 보완하는 일은 젊은 연구자들의 필연적 몫이 되곤 한다.
한편 유일하게 문학의 영역에서 백색에 접근한 김보배의 <희디흰, 휘어진>은 그가 선택적으로 바라본 백색의 언어를 문학비평의 언어로 분석한 것이다. 백석과 허수경, 김승옥과 김혜순으로 연결되는 비선형적 계보 설정과 네 명의 문학가가 남긴 특수한 서사 안에서 현대문학이 취하는 매끈하고 중립적인 언어 대신 불투명하고 휘어진 흔적들을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조주리의 <스와치/리서치>는 단문들이 쌓여, 전체의 이야기로 통합되는 앤솔러지 구성을 취한다. 오늘날 직물 산업과 의류시장에서 통용되는 스와치 개념에는 적합하지 않을 주변부적 감상과 파편적 정보들을 이어 붙이고, 글쓰기 방식을 변주함으로써 흰색 직물에 얽힌 문화사적 변동과 미시적 이야기를 읽어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독자적 영토 안에서 전문적 연구활동을 전개해 오신 구진경, 이영준 두 분께서 연구서에 새로운 시선과 통찰을 더해 주셨다.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 운동과 국제화 양상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미술사학자 구진경 님의 저술은 후속 세대에게 여전히 넘기 어려운 주제인 단색화, 특히 백색 회화를 규정하는 주체들과 시선에 관한 미술사적 정보와 문맥을 정교한 문장으로 제공한다.
특정한 사례들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골라 말하려면 세상 만물에 대한 박물지적인 감각이 밑받침되어야 하는데, 이영준 님의 흰색/검은색 사물에 관한 이야기가 꼭 그렇다. 나로우주센터의 흰 로켓 이야기는 색채와 사물 사이의 비합리적 연합들에 대한 차가운 관조로부터 출발해 점차 개인의 경험적 이해가 개입된 글쓴이의 온도를 전한다. 로켓이 반드시 흰색이어야 함에 기꺼이 동조하게 된다. 두 연구자께서 외부입력의 또 다른 외부적 시선이 되어 주심에 감사드린다.
더불어, 더딘 과정을 묵묵히 지나온 각 연구자분들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원해 주시고, 같은 호흡으로 고민해 온 우란문화재단의 장윤주 큐레이터와 김제희 PM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연구의 목적과 방향성을 검토하고 살펴 주신 자문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만만치 않은 분량의 글과 이미지를 조직화하고 다듬어 주신 디자인 팀에도 다시 한번 마음의 빚을 전한다.
여러 사람을 대신하여,
조주리
* 자유연구모임: 외부입력(Ex/In, 이하 외부입력으로 약칭)은 직업적 연구 수행과 취미로써의 연구
사이를 오가며 활동하는 연구자들의 소모임이다. 출발 선에서 누구든 그리고 언제든, 문제가 아니었던-어떤 문제들을 문제”화”시킬 수 있는 연구집단으로 그 성격을 규정한 바 있다.
대체로 학술적 결실에 목표점을 두기보다는 연구의 주체와 방법론, 주제와 소재에 대한 탐구, 텍스트와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에 있어서의 관성적 결정들을 조금씩 바꾸어 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글쓰기와 아카이브 수집을 연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문화적 이론과 예술적 창작이 연결되는 가능성과 동시대적 방식을 고민한다.
2018년, 의류사에 얽힌 사회문화적 쟁점을 다룬 베틀북(Loom-Book) 시리즈(vol.1-7) 출간 과정에 일곱 연구자들이 참여했고, 2019년 다섯 연구자들이 우란문화재단의 협력 하에 White Rhapsody(백색광시곡)의 사전 연구를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는 주로 일상시각문화의 자장 안에서 미술, 디자인, 공예, 건축, 문학을 경유하는 이미지 분석과 글쓰기에 집중해 왔다.
외부입력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며, 미정 상태의 다음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이끌어갈 이들을 기다린다.
Research Book WHITE RHAPSODY
Introduction
From the outside to the inside, times spent searching for different whites
WHITE RHAPSODY as a research book that shares the aim and process with the eponymous exhibition. This book seeks to examine the color white which has been the people’s color for a long time, from different perspectives and angles and through this, unveil new thoughts and reflections on the color white. In parallel with re-reading and re-expressing the history of images and words associated with the color white, but at a different rhythm, we hoped to take up the role of closely examining events that happened long ago, and to talk about yesterday and today, if there were things to be done. Two intensions are reflected in the lukewarm expression “examining”, to not suddenly deconstruct, first, the time-space that is too far away to fathom, and second, the cultural history of the color white that countless agents have established. Equal amounts of enlightenment and delight were involved in acceptance and modification.
From last autumn till this spring. Under the Wooran Foundation exhibition team umbrella, different research methodologies, writing, and image collection have been underway. This not-quite-short timeframe has been offered to the writers of Ex/In, who spared no effort in spending this time thinking, and in each of their language, writing and refining. It is still unknown how the five prose that may seem different from professional academic research papers are to be received. Many experts were consulted to unburden ourselves of being overwhelmed and more time was spent sharing ideas and data than putting pen to paper. We struggled to type in the final period when our given time was almost up, not because of wanting to do better research, or write better. Rather, it was probably because of the suspicions of whether this many-tiered narrative is indeed appropriate in this time-space, and wanting to know where this type of writing would lead us to.
To all of us, the color white is not intuitive color theory, but a distant view that holds the dynamic changes in lives and the clear close-up view we are faced with today. This includes not only our daily lives and material world, the embodiment of abstract visual art and cultural heritage that are embodiments of abstract aesthetic sense. It is also a tactility and temperature that brings forth certain reactions and memories that are amassed in our bodies. It is the unbearable story involving ungraspable faraway memories, and history.
Before deciding what to take a look at in particular, too many ideas came to mind. In the process of expanding and narrowing down the boundary of the color white to people, man-made objects, architecture, cities, white that existed as physical material, micro material that is invisible but is perceived as white as it passes through certain senses, everyday scenery, and the world quickly unraveled in my imagination.
The work of tracing up the visual genealogy, and taking a look at the history of words layered onto white seemed to accelerate, but soon became exhausting. Proving the true essence or coupling the inner and outer cover of the material and spiritual, searching for the error in this endeavor, crying out that there is nothing. All of this is derived from hypothesizing that there is indeed an essence to white. After letting time flow by for a while, a co-research became individual researches, and thus we started searching for individual whites from somewhere close. Consequentially, the five strains of stories started from the surfaces and extremities that slowly dug further and further inward, closer to the corporeality as the narrative progresses. This was the common attitude and approach. Visage, textile, home interior, civil landscape, literary language, and themes were all devices selected to each tell the story of choice.
Yiyaho’s research/fiction, Work of All that follows an individual’s efforts to restore the lost color white starts by imagining its deficit. Fictional imagination and the specificity of the foundational data are the two pillars that prop up a persuasive white biography. It invites the reader to structurally comprehend the birth and demise of white, and the collective plan and individual response.
Lee Jung-eun’s White Inside that partially takes on the form of a report, includes exploring whitening, the act of whitening, transcendent beauty, and the wheel of shadow labor for the upkeep of this beauty in the perspective of cultural history. The layers of extensive temporality are demonstrated through popular images and are transferred into the discourse of the digital age to examine the complex discourse of race interwoven in beauty and the beauty industry.
Choi Horang’s research on the architectural environment and white man-made objects related to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White of the Olympic Time-Space, captures the life curated and designed by large agents the national level and the people in it. The late 80s was set forth as a suitable age for the theme of the color white in the city to be made concrete. The task of linking individual memories with official records, and supplementing them after a long time gap of 30 years inevitably goes to young researchers.
The member who worked in the field of literature, Keem Bobae’s White as White, Bent is an analysis of the language of white that she selectively observed, written in the language of literary criticism. The non-linear genealogy that is made up of Baek Seok, Heo Su-gyeong, Kim Seung-ok, and Kim Hye-soon, and in the unique narrative left by these four writers, Keem searches for the opaque and bent traces instead of using the sleek and neutral language of contemporary literature.
Cho Juri’s Swatch/Research is a compilation of short essays that take the form of an anthology. The concept of the swatch that are customarily accepted in today’s textile industry and apparel market, are accompanied by peripheral observations and fragmentary information, and written in variation to point towards the changes in cultural history and up-close stories.
Lastly, Koo Jin-kyung and Lee Young-jun who have been carrying out research in their respective fields contributed new perspectives and insights into this research. Koo, an art historian who studies the Korean dansaekhwa movement in the 70s and its internationalization trend, provides art historical information and context on dansaekhwa (which is difficult for the following generation to undertake), especially white paintings, the agents that define them and their views in refined sentences.
In order to pick out certain cases, one needs an encyclopedic sense about everything in the world, and Lee’s take on white and black objects is just that—encyclopedic. The story about the white rocket at the Naro Space Center starts from cold contemplation on the irrational connection between color and object, and slowly reveals the writer’s personal opinion formed from personal experience. You cannot help but agree that rockets must be white. I extend my gratitude to these two researchers who have been the external eyes of Ex/In.
I would also like to thank Wooran Foundation Curator Jang Yoon-joo, and PM Kim Jae-hee for supporting and working with the researchers, throughout the long and slow process. I also would like to thank the advisory committee for reviewing the aim and direction of the research.
Lastly, we are indebted to the design team who put together and gave structure to our long texts and countless images, so thank you.
In the stead of many,
Cho Juri
* Independent Research Collective: External/ Input (or Ex/In for short) is made up of a handful of researchers who swing between researching for work and for pleasure. It has been defined as a research group that anyone can make issues out of issues that were not issues at any time at its initial launch.
Rather than aiming for academic results, it focuses on the agent and methodology of research, exploration of the theme and material, and changing the customary way texts and images are consumed. The members are in the process of searching for new ways of writing and archiving and are exploring potential and contemporary methods for linking theory with artistic creation.
In 2018, seven researchers participated in publishing the Loom-Book Series (vol.1 to 7) which examines the socio-cultural issues surrounding the history of fashion, and in 2019, in cooperation with Wooran Foundation, five researchers have carried out preliminary research for the exhibition White Rhapsody. Until now, it has largely focused on image analysis and writing on the field of art, design, craft, architecture, and literature within the realm of visual culture.
Members can join and leave freely, and the Ex/In welcomes members to propose and carry out new proj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