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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Oct 02. 2020

최가영: 풍경다리, 그림꼬리

최가영 작가 전시 해설


풍경다리, 그림꼬리

 



해설 조주리

 


FOOT NOTES(각주)  


no.1-10


 1. 풍경, 화

 

회화의 역사에서 풍경은 언제나 나무와 숲, 산과 돌, 물과 바다로 존재해왔고, 아주 조금씩만 그 위상과 다름을 생성시켜왔다. 다소 관습적인 자태로 자연의 모습이나 마을 정경이 도상적 인물이나 사건의 후경으로써 멀치감치 물러나 있었던 시간이 그렇지 않았던 때 보다 비할 수 없이 길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공기처럼 편재하거나 무대의 백 드롭처럼 서있던 자연에 ‘풍경’(Landscape) 이라는 이름을 덧붙인 것은, 그러니까 상당히 근대적 명명이며, ‘풍경화’를 프론트 장르로써 독립시킨 것 또한 서구적 기획의 일환이다.

긴 시간 동안 중국회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 회화사에서의 사의(寫意)적 풍경 전통과 실경 산수로의 점진적 이행,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 발달한 고전주의적 화풍과 이상주의적 풍경 설계, 오늘날 회화에서 소비되고 있는 풍경 개념의 변화상을 예리하게 변별하거나 시대사적으로 추적하는 일은 그러나,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오늘날 회화 속의 자연은 풍경은 내용적으로는 정치적이며, 시각적으로는 모조模造적이지만, 넒은 관점에서 본다면 여전히 인본주의적 틀 안에 놓인 개인의 편집술이며, 내면이 투영된 장막이다.  

풍경이 풍경화로 이행된 것, 즉 그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점을 거꾸로 되새길 필요가 있다. 가령 18세기 영국인들은 이탈리아풍 풍경화가 유행하면서 자국의 시골 모습도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하게 되었다. 클로드 푸생 스타일의 전원 풍경화를 정전 삼아 영국의 기후와 풍토, 사회에 적합한 풍경화 스타일을 만든 과정을 떠올려본다면, 자연을 캔버스에 옮겨온 것이 매우 인위적인 가공이자, 당대의 건축과 조경, 문학과 연결되는 문화적 산물, 제도화의 과정이었음을 이해 할 수 있다. 통신, 디지털 기술, 세계에 대한 물리적 경험과 가상적 체험의 총량 또한 오늘날 자연과 도시 풍경을 이미지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변별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풍경이 풍경화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매개항은 작가라는 점. 그것만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2. Jpeg

-joint photographic coding experts group

 

JPEG 위원회에 의해 개발되었다. 사진 등의 정지화상을 통신에 사용하기 위해서 압축하는 기술의 표준이다.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 이미지의 화질과 파일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JPEG는 풀 컬러(full-color)와 그레이 스케일(gray-scale)의 압축을 위하여 고안되었으며, 사진이나 예술분야의 작업에서 장점을 나타낸다. GIF와 함께 인터넷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다. GIF에 비해 데이터의 압축 효율이 더 좋다. 또한 GIF는 256색을 표시할 수 있는데 반해 JPEG는 1,600만 색상을 표시할 수 있어 고해상도 표시 장치에 적합하다.

또 한 가지 JPEG의 유용한 점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 이미지의 질과 파일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지가 큰 파일을 아주 작은 크기의 파일로 압축하려 하면 이미지의 질이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JPEG 압축 기술을 이용하면 이를 적절히 조절하여 이미지에 손상에 가지 않도록 이미지를 압축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원전: 두산백과), 검색어: JPEG


최가영, <세르비아의 산, 채석장, 벤챠스> Installation View, 공간 형, 2020

 


3. 돌,석

 

지방에서 신도시로, 이곳 저곳 빈번하게 삶의 거처를 옮겨온 나에게는(필자를 지칭함) 돌은 지질학적 분류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 북한산의 독바위와 같은 ‘자연물’이기도 하고 현대적 건물의 파사드를 이루는 대리암과 같은 번쩍이는 건축적 ‘재료’이기도 하고, 변두리 주택가 특유의 회색조 경관을 이루는 시멘트나 벽돌과 같은 ‘자재’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집도 길도 산도 모두 돌인 셈이다. 그러니까 돌은 어떤 물성의 교집합이기 보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경고하고 거대한 합집합 덩어리다.

자연물/인공물로서의 돌은 무의식, 그것이 전달하는 미묘한 시그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 때 옹골찬 밀도로 우뚝 솟았던 돌은 도시문명을 일으키고 들과 강을 지지하는 쐐기 였지만 부단히 패이고 깎이고 갈려져, 이내 돌 그 자체의 오롯한 총체성이나 그것이 뿌리박혀 있던 장소성을 상실하여 우리 앞에 처리해야 할 도시의 잔여물로, 산업 폐기물로 남겨졌다.


*출처: <강홍구의 사진과 돌의 무의식>, 『리서치, 리:리서치』, 조주리 저, 2016, 서울:물질과비물질



4. 세르비아


오늘은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여행지, 발칸반도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발칸반도란 유럽 남부에 위치한 반도로, 이에 속하는 국가로는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마케도니아가 있답니다.

세르비아의 대표적 관광지는 공화국 광장, 스카다리야 시장,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있는 스카다리야 거리입니다. 스카다리야 거리는 #베오그라드의 예술의 거리로, 흔히 말하는 보헤미안들의 주요 무대라고 합니다. 예쁜 카페와 음식점은 물론이고, 다양한 꽃들과 건물들의 페인팅이 조화로운 곳이라고 하니 사진찍기 좋을 것 같네요~


*출처: 네이버 블로그 ‘매일 25분 엔구 화상영어’- 현지인 도움 받기, 발칸반도 여행정보, 작성자: Andoo님



 

 



5. 채석,장

 

“용마폭포공원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1961년부터다. 일제강점기 종로구 창신동 채석장에서 건설공사에 쓸 돌들을 채취했는데 해방 이후 모자라는 골재를 충당하기 위해 이곳 용마산이 서울시의 새로운 골재 채취장이 되었다. 1988년까지 약 27년간 채석장으로 이용된 이 자리는 이후 1993년 용마돌산공원으로 문을 열었고, 1997년 용마폭포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그렇게 한때 골재 채취장이었던 용마산 암절벽이 지금은 동양 최대의 인공폭포로 변모해 있다. 51.4m의 거대한 용마폭포를 양옆에서 호위하듯 좌로는 청룡폭포, 우로는 백마폭포가 감싸 돌며 독특한 지형과 함께 청량한 비경을 보여준다. 폭포수의 장관과 함께 그 밑에는 약 700평의 연못이 펼쳐져 있다.”


*출처: “동양 최대 폭포로 변신한 옛 채석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 취재팀, 김원정 중랑구청 홍보담당관 주무관


6. 여행,기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중세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동방견문록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인상적인 장면을 위주로 기록한 여행기라는 느낌을 준다. 실상은 다르다. 원제는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이다. 폴로는 유럽인들이 가보지 않은 지역에 대한 총체적 정보를 담으려고 했다. 지리적 위치, 주민들의 종교 및 생활습관, 언어, 정치적 상황 등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낯선 괴담의 창작’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구술의 목표였다는 뜻이다.

폴로는 구술 당시부터 자신의 책이 황당무계한 이야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듯하다. 그래서 책 곳곳에 ‘보지 않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들어도 믿기 힘들 정도다’ ‘여러분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는 문구를 여러 차례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 증언은 아무런 거짓이 없는 올바르고 참된 것’이며 ‘직접 보거나 진실이라고 들은 갖가지 경이를 (내가 구술하고 루스티첼로가) 받아 적도록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도 커다란 죄악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출처: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한국경제신문』,

2017.4.17

 

 

7. 하얀


오래 전, 하얀 눈에 관한 셀 수 없이 많은 표현을 갖고 있다 했던 이누이트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특정한 자연환경과 소수민족의 언어가 조응하며 만들어 내는 풍부하고도 섬세한 빛의 이미저리에 대해 감흥과 동경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실상 교착어 성격의 에스키모 언어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서구 인류학자의 몰이해로 벌어진 과잉 해석으로, 눈에 둘러 쌓여 살아간다고 해도 이누이트족이 흰색에 관한 수백 개가 넘는 단어를 구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출처: 『백색 광시곡』, 조주리 저, 2017



8. 기하학,적

 

기하학: 도형 및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부문. 고대 오리엔트에서 시작하여, 초등 기하학은 그리스의 유클리드에 의해 집대성되었음. 현재는 이것을 더 발전시켜 해석 기하학·미분 기하학·사영 기하학(射影幾何學)·위상 기하학(位相幾何學) 등 다양한 내용·방법을 가지고 있음.

기하학적: 기하학에 관련이 있거나 바탕을 두고 있는. 또는 그런 것.


*출처: 구글 딕셔너리, 검색일: 2020. 6.7

 


9. 유원지

 

도시 공간이 커져가고 보다 밀집해 지면서 자연환경에 대한 요구는 증가되었다. 16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은 공공공지, 녹지, 광장, 퍼레이드 광장, 프로미나드, 퍼블릭 가든 등을 조성하여 도시환경을 개선하였다. 19세기 무렵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규모가 커졌으며 산업화되었다. 인구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산업도시에 살았으며 비도시 지역의 대부분은 농촌이었고 원생자연은 드물게 되었다. 도시 내에서 자연의 공간은 원생자연의 문명화된 재생이었으며 이로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나라는 1888년에 인천의 각국 거류지 내에 각국공원(各國公園)이 조성된 이래 일본공원[東公園, 1890], 독립공원(1897년), 화성대공원(和城臺公園), 탑골공원, 부산 용두산공원, 대구 달성공원 등이 뒤를 이어 조성되었으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체계적인 도시공원의 조성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하여 깨끗하고 푸른 휴식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국민소득 및 여가시간의 증대와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인해 공원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출처: 온라인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키워드: 유원지, 공원,  집필자: 이자원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과), 2009



10. 사생 (寫生)

 

스케치의 번역어. 대상을 신속히 묘사하는 현장에서의 습작을 뜻한다. 원래 중국에 있어서 사생(xiesheng)은 화조화(더러는 산수화)로, 상상에 의지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미술대사전 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사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비교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 조각과 로마 조각의 차이이다. 그리스 조각은 시각화된 현상을 이상화(理想化)한 모습으로 나타내었으나, 로마 조각은 사물을 현상적(現象的)으로 파악하였으며, 이것이 발달하여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오면 시각화된 것을 묘사하기 위한 과학적 고찰에 의해 사생에서의 원근법명암법이라는 화법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화법을 기초로 사생의 내용도 객관이 주관에 지각되어 마음 속에 비친 것을 파악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말하자면 사생(寫生)에서 사심(寫心)으로 인간적인 발전을 한 셈이다. 그래서 오늘날 화가가 사생한다는 것은 회화화하기 위한 사상(事象)의 구조적인 이해에 그치지 않고, 가장 인간적인 내용이 담긴 것으로까지 확대시켜서 파악하는 행위로서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생’에 해당하는 영어인 ‘drawing from life’는 사생의 말뜻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출처:온라인 두산백과




ENDNOTES(미주)

no.1-2


1. 최가영

 

작가의 이전 전시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그림자>, <한 조각의 무지개를 찾아서> 그리고 <쉽게 찾은 풍경>등이다. 보이지 않는 것, 가려지고 버려진 것, 재현 불가능의 것들을 찾아 나서는 작가적 여정은 일차적으로는 역사화 된 말과 이미지에 대한 권태로움 때문일테고, 한 켠에서는 여행과 통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가본 적 없는, 혹은 가보기에 사나운 곳들을 향한 동경, 그리움,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많은 질량으로 두텁게 분포해 있는 오늘날. 일상으로부터 엑소더스란 그와 반대로 희박하고 희미한 풍경을 정성스레 찾아나서는 일이자, 부러 성가신 룰과 창작 프로세스를 고안해 내는 일을 수반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예술가의 미션이자, 시각 이미지를 창안하는 직군의 전문인들이 수행하는 방식이다.

욕망하는 것들을 선명하게 오려내고, 테두리 바깥의 풍경을 삭제하거나 또 다른 것으로 채워넣기.  작가의 편집술은 대체로 캔버스의 화면을 비어 있는 정전으로 놓고,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을 모터로 삼는 채워 나가는 고독한 행위이다. 모두, 시지각적 사고에 기반한 실험들이다.


작가의 그림 그리기는 다른 것일까? 대체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고, 국부적으로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동양화에서 출발한 기초적인 ‘사생’의 습관과 그와는 무관한 개인의 풍성한 감각 사이의 배치, 충돌 때문일 것이다. 최가영의 풍경 그림의 과정은 정보 기반의 대화와 서신 송수신 행위, 개인의 적극적 상상이 강력하게 개입된 시간 선상의 일에 가깝다. 기다림과 소통의 과정을 풍성하게 늘려 놓고, 상상과 최면의 심리적 상태를 투영함으로써 그리기 이전과 화면 바깥에서 흐르는 시간들을 중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직접 본 적 없는 것을 그려내는 작업'으로만 압축되고 만다면 필시 누락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이야기를 압축한 회화적 생성과 그 결과값들은 JPEG처럼 소실없이 압축되지 못하며, 폴로의 여행기처럼 미지-과잉 상태를 견딜 수 없을 것이며, 백과사전처럼 정확하지도, 여행 블로그의 후기처럼 산뜻하지도 않을 것이다.  


전시는 빛나는 수정처럼 결정화된 풍경이어서 더 없이 아름답고 평온하다. 상상과 재현을 오가며 화면을 채워나가는 화가로서의 기법과 전시 공간 전체를 구축해나가는 시도들은 이미 벌써 완숙하다. 전시장에서 평면과 입체적인 설치 물을 통해 어쩌면 작가가 재현하고, 중계한 것들은 풍경자체라기 보다 그리는 행위의 다변적 과정들, 장소 뒤로 증발된 이야기, 정당한 오해들, 붓질로 입혀진 이야기, 필연적으로 꾸며낸 감상과 같은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작가에게 트로피처럼 반짝거리는 말을 건네는 대신, 의구심 어린 순진한 질문과 오해 범벅의 감상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2. 해설노트 : 풍경다리, 그림꼬리

 

직업적으로 한 해에 서너 편의 전시 서문, 예닐곱 편의 작가론, 스무 개 이상의 작품 설명을 쓴다. 작가론의 경우 얼마간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로부터 의뢰 받은 글 하나 둘, 미술 기관에서 의뢰 받은 글 서넛, 이따금 생면부지인 이를 위한 글을 하나 정도 쓰는 수순이다. 특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면 전시의 주기에 너무 뒤쳐지지 않을 속도로 글을 쓰는 편이다. 소통의 방식과 순서는 이렇다. 창작 노트나 그간의 작업 포트폴리오에 드러난 작가의 생각, 그 사람의 언어와 사고의 특성, 시각화된 방식의 방법론을 확인하는 것, 한 두차례 만나서 궁금한 것들에 대한 확인과 새로운 발견을 토대로 대화 나누기, 가능한 첫 만남에서 직관적으로 받은 인상과 정제되지 않은 상태의 생각들로부터 글 제목과 쓰기의 전략을 대략적으로 정해두는 것, 이삼 주 간 상대의 상황과 호흡에 맞추어 글을 써서 상대의 동의와 의견을 구하는 일.

 

최가영의 개인전<세르비아의 산, 채석장, Венчац>( 2020.05.07-05.26 공간형) 도록제작을 위해 의뢰 받은 글은 각주와 미주를 본 따 구성된 일종의 해설서이며, 앞서의 판단과 구상 과정을 거쳐 집필되었다. 아마도 도록의 서문 자리에는 드러나지 않을 표제 <풍경다리, 그림꼬리>는도록 편집상의 페이지네이션을 확인하고 이리저리 조합해 본 말들의 덩어리다. 


다리는 각주(footnote), 꼬리는 미주(endnote)에 각각 대응되는 우리말인데, 이를 다시 풍경-그림에 접합시킨 그런 말장난이다. 


서문이나 발문의 형태보다는 응당 최가영의 글과 그림을 보완 설명해주는 그런 말들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작가 자신과 메일로 이국의 사진을 보내온 M과의 관계로부터 그와 유사한 거리를 전제한 또 하나의 레이어를 쌓아나가는 엉뚱한 해설봇bot 같은 글쓰기 상태를 떠올렸던 것이다. 


짤막한 글에 나오는 열 개의 단어는 다시 이전에 썼던 글들로부터 찾아낸 동일한 단어 파편들과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관한 야트막한 깊이의 인터넷 기사들, 채석장과 유원지 같은 특정한 단어들, 즉 온 세계 모든 도시에 있을 법한 폐허와 낭만의 장소성을 박제한 듯한 박물지적 문장들을 끌어오게 되었다.  


어쩌면 최가영과 M 사이에 이루어진 소통의 총량과 우정의 밀도에 비해 나와 작가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의 질과 상호 이해란 그보다 훨씬 부박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림이, 글이, 그려지고 써지는 것은 이 세계의 일이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가 실증적인 기록이었는지 의심할 필요없이 즐길 수 있는 문학이 된 것처럼 말이다. 


세르비아의 채석장 작업은 그 자체로, 이전 작업의 시퀄이자 다음에 등장할 어떤 시리즈의 프리퀄이 될 텐데, 궁금하다. ‘없는 곳’과 ‘없어진 곳’의 의미 용례가 살짝 다른 것처럼, 다음 번 작업에서 ‘있는 곳’과 ‘있게 된 곳’의 풍경과 풍경의 간극이. 그리고, 겪어본 적 없는 시공에 대한 애달픈 노스탤지어가.



 


* 최가영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각예술가다. 

2020년 ‘공간 형’에서 열린 <세르비아의 산, 채석장, Венчац>를 포함하여

7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통해 작업을 발표했다. 

아이슬란드, 일본, 중국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World Art Museum(중국)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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